밤을 채우는 감각들 (세계시인선 필사책)
⁣ 나는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으면서 취미 칸에 독서를 적는 는 '가짜 독서가'들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부리는 오기같은 것. 그러나 글씨를 읽을 수 있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취미가 독서고, 글씨를 쓰는 까닭도 책의 구절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밤을 채우는 감각들>의 시를 따라쓰며 내가 밤을 채우는 것인지 감각을 채우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더라. 오롯이 나만 깨어 책을 읽고 쓰는 밤의 식탁에 시를 수놓으며, 눈오는 밤을 감각으로 채웠다. ⁣ ⁣ 나의 책장에는 대물림한 나보다 나이 많은 낡은 전집이 몇 질 있는데, (한자와 병행 표기되어있어 옥편이나 아빠를 괴롭히며 읽어야 했다.) 그중 하나였던 '세계시인선'을 다시 여는 기분으로, 조지 고든 바이런을, 페르난두 페소아를 만났다. 그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을 이제는 조금 더 가까이 느끼며 한글자 한글자 눌러쓰는데, 괜히 찡했다. 역시, 손으로 적는 일은 그저 눈으로만 보는 것과 다른 깊이가 있다. ⁣ ⁣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필사책이 존재하지만 <밤을 채우는 감각들>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평소 자주 접하지 않는 세계적인 시인들의 시를 만날 수 있음이다. 에밀리 디킨슨, 페르난두 페소아, 마르셀 프루스트, 조지 고든 바이런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시인들의 문장을 따라 쓰며 그들의 생각을 떠올려보는 것, 그들이 어떤 상황이나 날에 이런 글을 썼을까-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많은 감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 필사는 책을 깊이 읽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방패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상념이 드는 날, 마음이 슬픈 날, 혹은 오롯이 나에게 귀 기울이고 싶은 날. 가만히 앉아 한 줄씩 따라 쓰다 보면 어느새 온 마음으로 문장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더이상 상념이나 슬픔이 나를 집어삼키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 ⁣ 오늘도 <밤을채우는감각들> 덕분에 나는 조용하고 깊이 나를 만났다.⁣
3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