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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품 이야기 (재난 수습 전문가가 목격한 삶의 마지막 기록)의 표지 이미지

유류품 이야기

로버트 젠슨 지음
한빛비즈 펴냄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전장에 쓰러진 전우의 시신을 수습해오겠다는 결의가 있다. 죽은 사람일지언정 뒤에 남겨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에 몸을 내던지는 사람은 행여 자신이 궁극의 대가를 치르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유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으리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족들도 사랑하는 이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p.81)

이름을 찾아주는 것을 빼면, 존엄성이야말로 우리가 죽은 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미 빼앗기고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슬퍼한다고 뭐 하나 바뀌는 것은 없다. 우리가 슬픈 이유는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p.35)


원래도 간이 작은 나는, 공포영화나 잔혹한 범죄 배경의 영화 자체를 못 본다. 아동성범죄를 주제로 한 영화를 배우 '공유' 때문에 봤던 나는 영화 중간에 오열하며 뛰어나와 속을 게워내야 했다. 엄마가 되면 어른이 된다더니, 나의 간은 더욱 작아져 모성을 자극하는 것이나 재난에 관련된 것도 쉬이 보지 못한다.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매일 깨닫는 까닭에 심장이 저밋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한빛비즈의 신간, <유류품 이야기>를 놓고도 많이 망설였다. 내가 이 책을 잘 읽어낼 수 있을까, 감정을 섞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솔직히 말하면 프롤로그 첫 문단부터 울지 않을 자신감 따윈 없었다. “신발은 항상 나온다. 지진, 홍수, 사고, 화재, 폭발 등 사건의 종류와 상관없이 신발은 어디에서나 보인다. 가끔은 발, 혹은 발의 일부가 그 안에 들어있기도 한다. (p.6)”로 시작한 책을 내가 어떻게 울지 않고 읽는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재난에 대해 감정만이 뒤범벅이 된 상태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읽고 난 후에도 며칠은 마음을 수습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이 책 덕분에 비로소 사건을 바라보는 눈을, 사건 후에 눈물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육군 장교일 때도 전사자 예우 담당을 해왔던 그는 '재난수습가'라는 다소 낯선 직업으로 살고 있다. 아이티 대지진부터 911테러, 카트리나 허리케인 등 수많은 재난의 현장에서 시신과 유류품을 수습한 기록을 담은 이 책에서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회복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시신과 유류품을 수습하지만, 자신의 진짜 목표는 산 사람을 돕는 것이라는 그의 글을 읽으며 참사현장에서도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에 급급한 '높으신 분들'의 모습을 여러 번 떠올려야 했고, 죽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죽어서도 부당한 혹은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이들 이야기에 분노해야 했다.

물론 작가가 미국인이다 보니 우리와 다소 다른 견해를 가질 수는 있지만, 그의 책에서 우리는 분명 재난에 대해 국가적 책임감을 가지는 것, 유족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 등은 반드시 배워야 하지 않나 생각해보게 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어버리고 세상까지 무너져버린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일인데, 우리는 여전히 그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에 비유하자면, 이 책은 외양간을 고치는 이야기다. 혹자는 소 잃고 나서 외양간은 고치면 뭘 하냐겠지만, 소도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아 다음에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소도 잃는 경우를 수없이 보지 않았나. 부디 우리도 무너진 세상 앞에서 자신의 잇속을 채우고자 하는 대신에, 모든 걸 잃은 이들이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성숙한 재난방지책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023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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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 것은 사라지지만 긁는 것은 흔적으로 남습니다. 그리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그리움은 마치 책에 글자처럼 여러 의미로 가슴 속에 긁혀져 있죠.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글은 말과 달리 흔적을 남깁니다. (p.48, 흔적)

우리가 무엇을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생각을 캐낸다는 뜻이다. 깊이 생각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심사숙고라는 말에도 깊을 심자가 들어있다. (p.40, 심사숙고)

문화는 현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려 할 때 꽃핀다. (p.126, 넘어서다)



언제인가 이어령의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다가 한 문장에서 울컥 메어 한참이나 멈추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어령의 말2』이 출시된다는 말에 괜히 설렘과 시큰함이 동시에 들더라. 당신의 말을 이내 지워버리고 자기 생각으로 가슴을 채우라는 그의 말 앞에서 나는 괜히 울상이 되어 책장을 펼쳤다. 아무래도 내 이야기로 나를 채우기엔 나는 여전히 작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를 떠난 글이 당신 안에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그의 말이 마법이라도 건 걸까. 그의 문장을 읽으며 나는 자꾸만 나를 곱씹었다. 그가 청춘을 이야기할 때는 나의 청춘을 떠올리고, 주저앉고 싶을 땐 그가 선물해준다는 바람개비를 떠올렸다.

『이어령의 말2』는 그렇게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통해 독자에게 자기 생각을, 경험을 꺼내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어떤 문장은 두어줄, 어떤 문장은 한 장을 꽉 채웠다. 또 사이사이 그의 글씨나 그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을 만나며, 그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읽게 되기도 했다. 또 그의 사유를 따라가며, '기다림'이라 불리는 사람의 생을 더듬어보기도 했다. 세상도 마음도 시끄러웠던 한여름의 끝자락에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위안을 얻기도 하고, 쉼을 얻기도 했다. 감히 질투도 내지 못할 만큼 강한 울림을 주는 그의 문장 앞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길게 진동하는 커다란 종처럼, 오래도록 내 마음을 둥둥 울린 문장들을 천천히 옮겨적으며 음미했다. 그래, 이 책은 꼭 그렇게 읽어야 할 책이다. 구하기 힘든 쿠키 상자를 열듯, 사랑하는 이가 선물한 사탕 상자를 열듯- 천천히 곱씹으며, 천천히 거듭나며.

불확실한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청춘이라는 그의 말이 비로소 끄덕여지는 것은 아마, 내가 이제 그 불확실성에서 조금은 벗어나 땅이 되었든 부표가 되었든 어디든 발을 디뎠단 이야기겠지. 나의 시간들이,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인 덕분에 그의 말들이 더 깊이 닿을 수 있었다 느끼는 나를 보며 그래도 헛살지는 않았다고, 별 것 없는 삶이라도 별 것 없는 하루하루는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의 문장들은 나를 긁어 흔적을 남긴다. 자, 이제 당신들에게 그의 말을 흘려보낸다. 부디, 그의 문장이 당신 안에서 거듭날 수 있기를. 당신의 이야기들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이어령의 말 2

이어령 지음
세계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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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_jin

잘 모르면 욕하기는 쉬워도, 제대로 비판하긴 어려운 법이지. 아 물론, 가까워지면 비판하기 어러울 때도 있어.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해. 그거 못하는 순간 기자 아니고 업자 되는 거야.

그때는 당연하게 들렸던 이 말이, 지금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오래도록 본분을 지키는 것, 당연한 일을 당연한 일로 유지하는 데는 생각보다 더 큰 의지가 필요하다. (p.83)


“그 어느 때보다 뉴스가 필요한 시기에 여러분 앞에 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배부른 앵커를 향해 보내주신 큰 응원과 격려도 감사합니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나이지만, 그녀가 전했던 강력한 문장들을 몇몇 알고 있다. 특히 그녀의 마지막 문장은 괜히 코가 시큰해지더라. 어느 때보다 뉴스가 필요한 시기라니. 이 얼마나 시기적절하고, 얼마나 서글픈 멘트인가. 사실 배부른 앵커가 전하기에 험한 뉴스가 많았을 터다. 나 역시 보수집단에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견뎌(?)낸 탓인가, 그녀가 견뎌냈을 무게가 감히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는 무용담 같았고, 눈물 줄줄 흐르는 수기 같았고, 응원편지 같았다.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는 대한민국 뉴스 역사상 최연소 여성 메인앵커라는 타이틀의 한민용 아나운서 이야기이지만, 스스로의 자리에서 당당히 서있는 모두의 이야기다. 평소에도 '이야기장수'의 책을 좋아해왔지만, 이 책으로 인해 나는 이 출판사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학비를 걱정하던 알바생은 기사지망생을 거쳐, “뉴스룸”최초의 여성 메인앵커가 된다. 사실 나도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녀의 배경 중 어딘가는 그녀를 더 반짝이게 해줄 뭔가가 있었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언론고시를 줄줄 떨어지고, 인턴이 되고자 정규직을 내던지고, 조금 일찍 전화했다고 욕먹고, 인사하가도 쫓겨나고,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며 커간다. 그래, 그녀에게는 이게 딱 맞는 표현이다. “커간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혜성처럼 반짝 등장하기에 남일같이 느껴지지만, 겉보이겐 그저 볕같은 그녀의 고군분투 스토리는 점점 짙어져 내 이야기같기도 하고, 또 누구의 성장기같기도 하며 점점 마음을 싣게 되더라. 점점 반짝여지는 그녀의 스토리라서, 그 빛이 더욱 강하게 발하고 있음을 매순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를 다 읽어갈 즈음에는 나의 인턴시절을, 내가 가장 왕성히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을, 또 아이를 갖고 낳고 하던 시절을, 아이를 키우며 직장이라는 전쟁의 후방으로 나앉은 나를 계속 생각하게 하더라. 그리고 비로소, 며칠간 마음에 가득했던 근심들 역시 곧 사라지리라고, 그동안 잘해오지 않았냐며 나를 응원하게 된다. 당신 만은 당신 편이 되어주라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툭, 하고 떨어지며 묵직한 힘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수고한 모두가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르 만나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라는 그녀의 응원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차곡 차곡 쌓아온 하루는 절대 배신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싶어서. 나는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덕분에 개미처럼 성실히 보낸 나의 오늘이 반짝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흔들리는 나지만, 또 마음을 다잡고 살아봐야지. 나처럼 흔들리고 깨닫고를 반복하는 모든 이들에게,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속 진심을 전해본다. 부디 당신도, 당신의 가장 좋은 편이 되기를 바라며.

그러니 나는 계속해서 나의 답을 찾아나야겠다. 앞으로 세상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는 결코 알 수 없겠지만, 나 자신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잇는 유일한 것이니까. 내가 뭘 해야하는 사람인지, 뭘 할 줄아는 사람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방패삼으며 최대한 유연하게 이 거친 시대를 살아내고 싶다. (p.196)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

한민용 지음
이야기장수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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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큼 우리집에서 야구가 “전세역전”인 경우가 있었을까. 삼성 라이온즈팬인 경상도 여자와 한화 이글스 팬인 충청도 남자가 만나 10년을 사는 동안, 처음으로 한화팬의 어깨가 하늘을 찌르는 2025년. 역시 야구는 '9회말2아웃'이라는 말이 있을만큼 반전의 반전이 있는 스릴 넘치는 스포츠임을 인증이라도 하는 해 인것 같다.

그러던 중, 무척이나 반가운 책이 출간되어 발빠르게 데리고 왔다. 8월 25일, 아직 태어난지 이틀밖에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책, 『야구만화도감2』다! 이 책은 앞서 출간된 『야구만화도감』의 심화버전으로, 더욱 깊은 야구상식과 재미를 가득 느낄 수 있으니 꼭 한번 만나보시길 추천드린다. (자매품으로는 축구만화도감도 있다. https://blog.naver.com/renai_jin/222942080007)

자 그러면 『야구만화도감2』을 자세히 소개해볼까?
『야구만화도감2』는 KBO공식추천 도서로 『야구만화도감』이 야구의 기본규칙을 알려줬다면, 『야구만화도감2』에서는 전략이나 데이터, 포지션별 특징까지를 배울 수있다. 또 전문용어도 자세히 소개되다 보니 야구의 재미에 빠진 초보팬부터 열혈야구초딩이들까지 풍덩 빠져 즐길 수 있을 터!

특히 『야구만화도감2』가 매력적으로 느껴진 까닭은 요즈음의 야구 정세까지를 모두 다루고 있다는 것. 수비 시프트의 정리,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변수들 등 무척이나 다양한 지식을 다루고 있어 재미와 유익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도 부족해, 2번에 강한 선수들을 배치하는 전략의 변화나 세이버메트릭스 등까지를 폭넓게 다루어, 야구의 흐름까지 느끼게 만들어주더라.

또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선수 VS 선수”코너! 다양한 선수들의 특징이나 포지션에 따라 우리나라의 선수들과 외국의 선수들을 비교 분석해놓은 이야기들이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다. 우리 아이는 야구를 보며 어렵게 느껴졌던 것들을 『야구만화도감2』을 통해 배울 수 있어서, 야구경기가 한층 재미있게 느껴질 것 같다고 하더라. 나 역시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용어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어 야구가 한층 더 재미있어지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야구 입문을 넘어서 야구의 전략이나 데이터, 포지션 등 야구심화학습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야구만화도감2』야 말로, 풍부한 야구상식을 익살넘치는 카툰으로 담아낸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야구백과사전이 아닐까 싶다. 야구를 더욱 재미있게, 야구를 더 자세히 알게 만들어주는 『야구만화도감2』! 강력추천! 아! 초판 한정으로 KBO선수띠부씰도 만나볼 수 있으니 서두르라구! (우리집에는 김원중 선수가 왔습니당~)

어려울 줄 알았는데 재밌어! 야구 만화 도감 2

익뚜 지음
후즈갓마이테일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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