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로우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지음
동아시아 펴냄
읽고있어요
저자 자신도 우울증을 앓아고 그 시기를 거쳐가면서 스스로가 자신과 같은 우울증이라는 질환을 앓고 있는 같은 20,30대의 인터뷰이들을 만나서 나눈 취재한 내용이다.
단순히 인터뷰집 이상의 사유와 성찰의 깊이가 느껴졌다. 우울증이라는 범주화나 시스템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이 우울증에 빠져든 것이고 자신이나 자신과 같은 범주에 묶여 분류되는 여성들의 실제적 모습에 대해서 탐구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다독이면서 지나온 기록으로 무겁지만 암울하기만 한 모습으로 읽지는 않았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근원이 무엇인지 찾아서 헤쳐 나가고, 자신의 연대의 경험과 홀로서기의 과정, 인터뷰집 작업을 하면서 느끼던 감정과 사회에 대한 느낌이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담담히 밝히면서 인터뷰이들과의 만남과 취재의 대화들은, 당사자이면서도 관찰자라는 이중의 시점이 더 글을 읽어나가게 한 것 같다. 고통의 수기로서만이 아닌 사실과 경험을 알려, 사람들의 인식에 대한 재고를 마련하는 글의 확장성으로 읽었다.
📝
우울증이라는 질병 개념과 우울증을 진단하고 우울감을 측정하는 기준에는 이렇듯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우울증 진단은 당사자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나의 고통을 설명해 주고, 나의 지난 기억을 재해석할 수 있는 자원이 되어주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진단은 가장 힘이 센 지식이다.
- 우울증 자가검사 테스트: 21점 이상은 우울증?
해석할 수 없는 고통의 경험보다는 해석할 수 있는 고통의 경험이 훨씬 견딜 만한 법이다.
-병명의 힘은 크다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들이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는 과정을 ‘의료화medicalization’라고 부른다. 우울증은 알코올의존증, ADHD, 출산, 비만과 더불어 대표적인 의료화 사례이다.
-의료화? 약료화? 그게 뭐든 고통의 인정이라면
당사자에게 진단이란 나의 우울이 병이냐, 병이 아니냐 하는 문제라기보다 누군가 나의 고통을 알아주는가, 알아주지 않는가의 문제이다. 고통을 계속해서 호소하는데도 반응하지 않는 사회에서 오래 홀로 버티던 사람에게 누군가의 ‘알아줌’은, 그것이 설령 신자유주의 시대 감정 관리의 결과이며 다국적 제약 회사의 자본주의적 책략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것이다. 증상만 나아진다면, 고통만 경감된다면 무엇인들 못 할까?
‘알아줌’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다. 어쩌면 전부이다. 누군가를 죽고 살게 한다.
- 해방과 억압, 우리의 진단 이야기
사람들은 질병과 그 치료법을 순수한 과학의 산물로 여기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질병은 어느 정도는 사회적 구성물이며, 약도 마찬가지이다. 약을 먹으려면 우리는 특정 상태를 병리적인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 하나의 약이 우리 삶에 들어오는 것은 고통을 이해하는 문화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 우당탕탕의 약의 역사
한 사람의 고통을 정신분석학 전통으로 보든 생물정신의학 전통으로 보든, 고통을 개인화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나의 우울을 어린 시절 겪은 좌절된 욕망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든, 망가진 뇌의 결과로 보든 치료는 개인의 몫이 된다. 아픈 사람은 주로 여성이며, 치료하는 사람은 주로 남성이라는 점도 똑같다. 정신의학 지식을 만들고 구축해 온 사람들은 대체로 남성이다. 그들이 만든 지식 안에서 제정신인 사람의 기준 역시 남성이다. 이러한 지식과 치료법을 참고는 하되,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여성이 홀로 고통을 감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바꾸고 치료하는 주체가 환자 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되도록 말이다.
- 정신의학의 두 흐름: 역동정신의학과 생물정신의학
우리는 자살로 삶을 끝맺은 사람들을 자주 그 순간을 통해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죽음의 순간만을 통해 봄으로써, 삶에서 복잡성을 박탈해버림으로써 단지 그렇게 할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삶과 죽음 모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자기 돌봄이든, 서로 돌봄이든, 함께 돌봄이든, 또 의료 제도 안의 돌봄이든 바깥의 돌봄이든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돌봄의 관계적, 맥락적 속성을 치열하게 사유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돌봄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를 구체화하고, 돌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끊임없이 다시 시도하고 실험하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한다. 질병, 아픔, 고통을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으로 다시 받아들이는 것처럼, 돌봄의 과정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갈등과 미움, 질투와 억울함 등을 지우고 부정하기보다는 함께 머무르며 나아가야 한다. 돌봄은 언제나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 돌봄 공동체로서의 페미당당
젊은 여성들의 우울증을 탐색하는 것은 고통에 대처하는 새로운 문화를 찾아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기 상황에서 새롭고 자발적인 연대가 이루어지고, 타인의 고통을 폄훼하거나 섣불리 지워버리지 않고, 취약함을 공유하고 내보이는 것. 상실한 것을 충분히 애도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고통이 그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했다면, 고통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제야 나의 고통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 상처는 자긍심이 될 수 있을까
1
이주연님의 인생책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