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 팔로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의 표지 이미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지음
생각의길 펴냄

저자가 학생운동에 매진하던 시절 함께 일하던 여성 활동가 A의 일화가 각별히 인상적이어서 옮겨 적는다. 집회 유인물에 대한 이야기지만 대중과 소통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읽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큰 집회에 가면 여러 단체와 조직이 유인물 수십 종을 배포합니다. 집회에 오는 사람들은 입구에서 유인물을 한 무더기 받지요. 적합한 자리를 찾으면 그 유인물을 대충 살펴보고 어떤 것은 깔고 앉아요. 어떤 건 흘낏 보고 버립니다. 몇 줄만 읽고는 얼른 접어서 가방이나 주머니에 집어넣기도 하고, 차분히 다 읽은 다음에 접어서 넣기도 해요.
나는 우리가 만든 유인물을 받은 사람을 몰래 따라가서 헤아립니다. 내가 관찰한 사람 중에 몇 명이 우리 것을 다 읽은 다음에 접어서 넣느냐? 그걸 보는 겁니다. 그게 많을수록 잘 쓴 겁니다. 대충 보고 나서 깔고 앉는 건 야당에서 만든 두꺼운 아트지 홍보물인 경우가 많아요. 흘낏 보고 버리는 것은 상투적이라 그래요. 제목만 보고 접어서 넣는 건 무서워서 그런 겁니다. 나중에 사람 없는 데에서 보려는 거죠. 무섭지 않고 공감이 가는 유인물은 그 자리에서 다 읽어요. 그리고 아는 사람한테 보여주어야겠다 생각하면 접어서 넣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유인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어제 열 사람을 추적 조사했는데, 우리 것이 빈도가 제일 높았어요. 계속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제목에 '애국 시민 여러분'이라고 쓴 것을 두고 프티부르주아 냄새가 난다고 위에서 비판했는데, 그럼 애국 민중이라고 해야 하나요? '애국'이란 말이 부르주아 냄새가 난다고 해서 쓰지 말아야 하나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버리고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말로 우리 주장을 하면 그게 잘 먹히겠어요? (90-91p)

이 부분을 읽을 때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대체 어떤 글을 쓰고 있었던가. 소통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그저 쏟아내기만 한 건 아니었을까. 옳다. 글은 읽는 사람이 있을 때에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누누이 말한다. 글쓰기는 소통이며 공감이라고. 그것이 글이 가진 힘이라고. 이게 바로 우리가 더 좋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며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나는 더 좋은 글을 쓸 것이다.
0

김성호님의 다른 게시물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 빤스 내리고 뛰어다니는 이를 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빤스 내리고 뛰는 이에게 고맙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내게 빤스를 내리고 달릴 용기가 없다 해서 그가 대단하다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튼 즐겁게 본 건 사실이다. 작가 포함 모든 바바리러너들의 안녕을 기원하겠다. 더 참신한 후속작도 기다...

역행자

자청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일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하루키 소설의 장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감각과 그 감각이 불러오는 이미지를 생생히 펼쳐내는 문장이 두드러진다. 소설을 읽고 있자면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풍경이며 떠오르고 가라앉는 여러 순간들, 환상의 도시와 울렁이는 벽과 메마른 개울, 낡은 다리가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그가 자주 불러와 활용하는 음악과 술과 음식 또한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를 좋아하는 독자를 만족으로 이끈다.

다만 명확하고 뜨거우며 박동하는 무엇을 찾는 독자는 길을 잃기 쉽다. 흩어지고 기능하지 못하는 인물과 사건, 장치들, 분위기를 제하면 좀처럼 멋을 찾기 어려운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말 그대로 취향을 많이 타는 소설로, 삼십대 초반에 쓴 작품이 아주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새로 나온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동네 펴냄

2일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역사의 표면에 가려진 이면, 즉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옳은 길로 가면 부러지고 부서져서 끝끝내 목표에 이를 수 없다고 여겨지는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누구보다 험난한 상황 가운데서 정도로 지극한 지점에 이른 사내가 먼저 살아갔던 것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역사로 남아 있는 것이, 또 전 국민이 그의 이름 석 자를 알고, 광화문 복판에서 그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 희망이라 믿는다. 그로부터 나는 결심한다. 남은 생 가운데 부끄러움은 허락하지 않겠다고, 운이 좋아 쓰임을 얻는다면 장군이 그러했듯 죽을힘을 다해 정성스럽게 살고 싶다고 말이다.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김종대 (지은이) 지음
가디언 펴냄

5일 전
0

김성호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