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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아버지 상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열린책들 펴냄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소설에서 창의적 소재 이외에 어떠한 주목할 만한 장점도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소설이라기엔 두루뭉실하고 비전문적이며 추리소설이라기엔 구조가 허술하고 흡인력이 떨어진다. 서사의 깊이도 부족해 그저 공상소설 쯤으로 불리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는 큰 아이디어와 기본적인 소재마저 그의 다른 소설들과 돌려쓰고 있는 것이다.

다분히 신비화된 비현실적 캐릭터 이지도르 카첸버그를 포함해도 등장인물들은 그닥 깊이 있게 표현되지 않는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 아쉽다. 공상에 집중했으나 그 공상 자체도 설정이 주는 원초적 흥미 이상의 것은 이끌어내지 못하니 내게 이 소설이 전혀 매력 없게 다가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첨단을 달리는 현대과학도 답을 내리지 못하는 분야를 다루고 있기에 십중팔구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겠으나 그렇다곤 해도 소설이 내린 답은 어설프고 허무하기 짝이 없다. 비록 소설의 의도가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해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이런 단점을 완전히 상쇄하진 못할 것이다.
2024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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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인간보다 땅을 잘 파게 되었을 때, 인간은 인간다움이 정신에 있다 말했다. 기계가 인간보다 체스를 잘 두게 되었을 때, 인간은 인간다움이 예술에 있다고 하였다. 이제와 기계가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소설까지 쓰는데, 인간은 인간다움이 무언지 찾으려 들지도 않는다.

에르베 르 텔리에가 AI와 소설 쓰기 대결을 벌여 간신히 승리한 사실을 처음 한국에 전했다. 흥미로운 건 르 텔리에와 같은 탁월한 작가가 한국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단 것. 놀랄 일도 아닌 것이 AI가 당장이라도 써낼 수 있는 졸작이 베스트셀러로 군림하고, 대단히 훌륭한 저술도 수백권을 팔지 못하고 절판되는 게 현실인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진실로 인간이 이룰 수 있는 탁월함을 추앙하는지를 의심한다.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시시각각 닥쳐온다. 떠밀려 익사하지 않기 위해 무얼 하긴 해야 할 텐데. 늦된 데다 어설픈 이 책은 한숨만 깊게 할 뿐.

먼저 온 미래

장강명 지음
동아시아 펴냄

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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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이었으면 좋겠지만 어쩌다 한 번씩 열리는 독립영화 상영회가 있다. 서울 홍대입구역 인디스페이스에서 평일 저녁 진행되는 독립영화 쇼케이스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회원이 만든 작품을 정식 개봉에 앞서 선보이는 행사로, 따로 만나보기 쉽지 않은 독립영화를 극장서 접할 수 있단 점에서 유익한 자리다.

책은 2024년 독립영화 쇼케이스의 기록이다. 상영된 작품 모두의 출발부터 제작과정, 비평과 상영 뒤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까지를 글로 정리해 묶어냈다. 개중엔 <해야 할 일>처럼 나름 주목할 만한 작품도 있고, 다분히 실험적이고 대중성을 아예 상실한 듯한 영화도 있다.

영화에 따른 기록인지라 영화의 가치가 곧 책으로 이어진단 건 어찌할 수 없는 일. 한국 독립영화가 아직은 갈 길이 구만리란 걸 이 책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는 건 언제고 훌륭한 작품을 이 행사를 통해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겠다.

2024 독립영화 쇼케이스

한국독립영화협회 편집부 지음
한국독립영화협회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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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500루블일 때 불행했던 것이 5000루블일 때 즐거워지는 모습이 이반 일리치의 온 생애 동안 계속된다. 가만 보면 죄다 허상이다. 주변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 가치 하나를 그의 삶 가운데 찾아볼 수가 없다.

무엇이 중한가. 책은 삶 가운데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묻도록 한다. 이반 일리치의 온 생애에 걸쳐 그 허망하고 괴로운 죽음을 목도한 뒤 독자는 그의 삶과 제 삶을 관통하는 진짜로 중한 것, 삶의 의미를 직시한다. 비교하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것이 존재하는지를, 온 생을 바쳐 살아낼 삶이란 것이 있는가를 묻도록 한다.

책은 끝내 그를 언어로 포착해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돌아보도록 이끈다. 이반 일리치가 그러했듯,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깨닫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위대한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일 테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창비 펴냄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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