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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OUTLIERS)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의 표지 이미지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영사 펴냄

두 권의 자서전을 비롯해 박지성의 성공을 다룬 여러 매체에서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축구에 대한 열정을 집중적으로 언급해왔다. 이는 특유의 헌신적인 플레이스타일과 맞물려 박지성의 성공을 오직 노력을 통해 고난을 극복한 하나의 신화처럼 만드는데 일조했는데, 이에 대한 글이나 방송을 감명 깊게 본 사람이라면 '박지성과 같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끈질기게 노력하면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믿음이 사실일까?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변이다. 그는 다양한 통계적, 인류학적 자료를 들어가며 '아웃라이어'라 불리는 똑똑하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모두 성공을 거머쥐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성공이 스스로의 노력과 선택의 산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책이 다른 성공에 대한 책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는 빌 게이츠와 빌 조이, 비틀즈, 유태인 변호사들의 예를 통해, 가장 똑똑한 사람이 최선을 다했기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유산과 행운에서 비롯된 특별한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들이 성공하게 된다고 말한다. 성공한 아웃라이어들에겐 그들의 가정환경, 시대적·문화적 배경 등이 불러온 아주 특별한 기회가 공통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 기회를 움켜잡을 힘과 의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1만 시간에 가까운 집중적인 훈련의 시간이 있었고 이런 노력이 무르익었을 즈음 행운이라 불려야 마땅할 만한 매우 특별한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박지성에게 적용해보면 어떨까? 아버지의 사업관계로 축구부가 있는 수원으로 이사를 온 것이나 생업을 그만두면서까지 아들을 지원한 아버지의 선택, K리그에서 불러주는 팀이 없어 대학교를 거쳐 다시 J리그로 진출한 유명한 일화들을 굳이 풀어놓지 않더라도 그에게 찾아온 기회는 두드러져 보인다.

우선 1981년생인 박지성은 2002년 당시 21살의 나이로 국내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맞이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은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로 기존의 선수들이 아닌 새로운 얼굴을 발굴해 경쟁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축구팬들조차 잘 알지 못했던 박지성은 그렇게 국가대표에 발탁되었고 심지어는 주전선수가 될 수 있었다.

또 히딩크는 좋은 감독이었고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충분한 준비시간을 보장받았기에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대회가 끝나고 아인트호벤으로 가게 된 히딩크의 추천으로 박지성이 유럽무대에 진출하게 되었고 부상과 부진에도 그를 기다려준 감독 덕분에 성공적인 활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선수로서의 전성기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팀의 관심을 받는다.

만약 그가 10년 일찍, 혹은 늦게 태어났다면 2002년 월드컵에서 활약하지 못했거나 활약했더라도 유럽진출을 꿈꾸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당시 대표팀 감독이 히딩크가 아니었다면 국가대표에 발탁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 유럽리그에 진출하지 못했거나 하였더라도 다른 선수들처럼 슬럼프를 극복할 충분한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과연 박지성의 성공이 오직 그의 노력으로만 이뤄진 결과라 할 수 있을까?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될 아이가 1950년대 중반에 미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최고 로펌들의 변호사가 1930년대에 유태인으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나라의 축구선수에게 있어서 2002년 월드컵 때 이십대 초반을 보냈다는 것은 마법의 시간대를 등에 업고 있었다는 말과 다름없다.

물론 그들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은 저자의 의도가 아니다. 다만 개인의 성공엔 그 자신의 재능이나 노력보다 더 결정적일 수 있는 무엇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가 이를 이해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면 언젠가 우리는 경기장에서 더욱 많은 박지성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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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힘겨운 순간을 지낸 뒤 마음에 남았던 한 가지는, 충실히 대하지 못하고 지나친 감사의 순간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소한 소음처럼 지나보냈던 그 귀한 마음이 위기의 때마다 다가와 저를 일으키는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제 때에 제대로 된 감사를 했어야만 했다는 깊은 인식에 가닿는 그 마음이 장하게까지 읽힌다. 정말이지 사소하게만 느껴지는 무엇들이 실은 더없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인간은 어떤 순간에도 생을 이어가고자 한다는 걸 알게 만든다는 점이다. 고통스러워 포기하고픈 순간에도 생은 살아있음 그 자체를 지켜내려고 발버둥친다. 때로는 그와 같은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고 사소한 사건들에 마땅한 답을 내어놓는 일,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지켜내는 방법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책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한 두려움 앞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한 인간의 여러 순간을 진솔하게 그린다. 비록 스물다섯 편의 글이 하나의 주제로 꿰어지지 않고, 중반부 이후부턴 여기저기 쓰인 글을 억지로 끌어다 묶어낸 것처럼 느껴지지만, 몇 편의 글에서 묻어나는 진솔함만큼은 적잖은 독자를 움직여 내리라고 나는 그렇게 여긴다.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지은이)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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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몇 개의 차이만으로 <애린 왕자>의 독자는 <어린 왕자>와는 전혀 다른 감흥을 받는다. 심지어는 주인공과 그가 만난 어린 왕자의 성격이며 분위기, 인상까지가 전혀 다르게 그려지는 것이다. 이를 보다보면 아마도 프랑스와 한국, 미국과 일본, 독일과 체코에서 소설 속 인물을 전혀 다른 성격으로 상상할 수 있겠구나, 아마도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언어란 그만큼 힘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애린 왕자>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같은 작품임에도 전혀 다른 감상을 느끼게 하고, 나아가 언어가 가진 힘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읽기 전엔 다다르지 못했던 감상을 겪는다는 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는 뜻이니, 이 짧은 소설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그저 생텍쥐페리가 의도한 것 그 이상이라 해도 좋겠다.

애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은이), 최현애 (옮긴이) 지음
이팝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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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흥미로운 건 의외의 자살과 이를 둘러싼 이야기 자체보다는 소설이 반영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있다. 원룸이며 고시원 같은 단칸방에 살며 수년씩의 노력을 들인 끝에 공무원이나 사기업 취업을 이루는 세대의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가. 그렇게 얻어낸 일자리가 제 정체성이며 적성과는 전혀 맞지 않아 실망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또 얼마나 흔하게 보았던가.

평등과 평화, 독립과 민주 같은 온갖 대단한 구호들은 이미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오로지 나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갖는 것이 삶의 격인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심지어 세상은 이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기까지 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서 남보다 조금 안정된 직장을 얻고, 조금 더 나은 수입을 얻는 것으로 삶을 소모해도 좋은가를 소설은 거듭하여 묻는다. 온갖 굉장한 것들의 상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꿈을 저도 모르는 새 작게 만든다는 문제의식도 분명한 생명력이 있다.

그리하여 대단함을 이룰 수 없는 청년의 삶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게 아니냐는 소설 속 물음을 되묻게 한다. 누구도 가치를 말하지 않는 이 세상 안에서 가치를 잃어버린 세상이야말로 무가치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건 얼마나 놀라운 자세인가. 여러모로 완성도 높은 작품은 못되지만 <표백>이 여태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분류되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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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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