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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세계사 펴냄

낭만과 현실이 수시로 엇갈리는 가운데 변치 않는 순수를 간직한 현보가 어느 순간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게 되기까지 나는 봄 같은 소녀에서 여름 같은 처녀를 지나 깊은 가을 낙엽 떨어지는 시절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제가 자리를 마련해준 옆집 아이는 미군 병사들의 애를 여러 차례 뗀 양공주가 되어버리고, 가혹한 시선을 견디다가 마침내는 미국으로 훌쩍 떠난 뒤 또 악착같이 제 조카들을 한국인과만 결혼시켜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소설 속 집은 사대문 안 기풍 있는 기와집과 신발을 벗지 않고 부엌으로 갈 수 있는 일본식 적산가옥, 공간이 비할 바 없이 넓게 빠진 신형 양옥들로 변화한다. 재산은 막힘없이 불어나고 돈보다도 다른 무엇들이 훨씬 빨리 몸집을 불리는 풍요의 시대가 이어진다. 급변하는 시대상 가운데 사람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며 마음가짐 또한 변해간다. 보는 위치가, 관점이 달라지고 그로부터 태도며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녀의 작품이 인간과 삶의 본질을 슬며시 건든다고 이야기한다. 본질이란 시간이 지난다 해도 변치 않는 무엇이고, 바로 그것이 이 소설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 가운데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를 특별하게 담아낸 이유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한다 해도 결코 변치 않는 것이 몇 개쯤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 그에 대한 답을 독자들은 이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2024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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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거나, 또 그를 다룬 다른 작품을 접한 적 있는 이에겐 새로운 내용이 많은 책이 아니다. 책이 담고 있는 많은 부분을 이미 다른 작품, 이를테면 극영화와 다큐, 소설들이 수차례에 걸쳐 더 직접적이며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요한 특징인 다양한 입장에 놓인 이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작업 또한 새롭다 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지극히 일반적인 설정이며 작업이기 때문이다.

공들여 다시 읽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강의 작품에 깊이 공명했다 말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새로이 보이는 건, 또 <소년이 온다>를 건너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비극이며 국가적 폭력이 남긴 파장에 대하여 외곽부터 섬세하게 다가서는 민감한 감수성이 한국 문단에 필요했단 점일 테다. 그 이상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펴냄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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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이 거세된 공정에 집착하고, 경쟁에 따른 성과에 호의적이며, 페미니즘에 발작적으로 대응하는 집단이 이대남의 정체성으로 제시된다. 그 원인으로 지목된 건 '남성 마이너리티', 사상 최초로 젊은 남성 집단이 스스로를 차별받는 약자로 여긴다는 진단이다. 살피자니 과연 그럴 법도 하단 생각이 절로 드는 가운데, 이대남을 한심하게 여기는 저자들의 오만한 태도와 해석이 은근히 비어져나와 마음을 불편케 한다.

생각할수록 이대남의 피해의식을 마땅한 결과라 여기게 된다. 그러나 어느 세대라고 스스로가 사회적 과실을 누렸다며 감격해할까. 전쟁을 겪은 이들과 전후세대, 독재와 투쟁한 586, 지난 시대 불평등을 감내해온 여성들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짐을 지고서 버텨온 것이 바로 이 세상이다. 사회적 자산은 유한하고 성장동력은 꺾여버린 암울한 환경 가운데 시시한 문제에 분노하는 여유없는 세대의 등장이 꼭 한국의 미래인 것만 같아 한숨만 난다.

20대 남자

정한울 외 1명 지음
시사IN북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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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의 이십대는 우울과 슬픔과 분노로 가득했다고 전한다. 심리상담을 받고 병원을 다니기도 했으나 꾸준하진 않았다. 서른이 넘고 삶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야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안정감이며 무덤덤한 마음을 얻는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가사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창작 활동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 창작자의 삶이라 해도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 삶 가운데서 곡이 태어나는 것이다.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는 곡이.

책은 매 장마다 애리의 노래가 태어난 배경을 적는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이르러 곡의 가사와 함께 곡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QR코드까지 삽입해 놓았다. 말하자면 곡과 에세이의 기묘한 결합이다.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닌 음악가의 글인지라 조금 정돈되지 않고 감성에 따라 마구 나아가는 듯한 인상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특정한 곡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만큼, 읽는 이는 음악과 삶이 관계를 맺는 방식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겠다.

수많은 내가 다른 곳에 살고

애리 지음
편않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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