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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김혜진 소설)의 표지 이미지

불과 나의 자서전

김혜진 (지은이) 지음
현대문학 펴냄

<불과 나의 자서전>은 남일동에서 나고 자란 홍이의 시선으로 공고해지기만 하는 남일동과 중앙동의 격차를, 그 격차가 스며든 사람들의 마음을 짚어보는 작품이다. 중앙동이 남일동을, 남일동 주민들은 그들 중에 못한 사람을 구분 짓고 따돌린다. 구분의 선 하나를 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여도 실패만이 거듭된다. 주해의 실패를 지켜보며 홍이는 비로소 제 곁에 늘 그어져 있던 구분의 선을 실감한다.

소설에서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주해가 제 딸 수아를 길 건너 중앙동 초등학교로 입학시키려다 빚어지는 일이다. 학교는 석연찮은 이유를 들어 수아의 입학을 막지만 거세게 항의하는 주해에 밀려 입학을 허락하게 된다. 그러나 더 참담한 건 그 다음이다. 중앙동 아이들은 수아를 남일동 아이라 구분짓고 따돌리기 시작한다. 어른에게 깃든 차별이 아이라 해도 없을리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수아를 남일동 주민이란 뜻으로 남민이라 부른다. 그저 말만 줄인 게 아닌 것이 남민은 발음이 비슷한 난민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주해와 수아 모녀를 지켜보는 홍이는 과거 남일동 토박이란 뜻에서 남토라 불렸던 제 과거를 떠올린다. 어디 이런 일이 소설 속에만 있을까. 남일동 주민들이 스스로 말하던 '남일도'란 말은 수십년 만에 환골탈태한 내가 살던 동네에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얼마 전 '한남더힐 아무개', '트라마제 홍길동' 따위의 이름으로 SNS 프로필을 만든다는 갓 열두 살 난 초등학생들이 뉴스에 나왔었다.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휴먼시아 거지'라고 부른다는 뉴스가 채 잊히기도 전이었다. 사는 집이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를 두고서, 부모 월급이 200만 원이냐 300만 원이냐를 두고도 전세충이니 이백충이니 하는 멸칭이 쓰인다고 하였다.

생각해보면 그리 충격적인 일도 아니다. 수아를 구분지은 중앙동 아이들의 차별은 홍이가 살아온 시대와 내가 자란 시대에도 언제나 있었다.

수아가 떠난 뒤 제가 겪어온 과거를 떠올린 홍이를 보며, 차별이 차별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나를 반성한다. 어제 끊지 못한 구분과 차별의 장벽이 내일 더 심한 차별의 이유가 된다는 걸 <불과 나의 자서전>이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4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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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네필, 나아가 영화를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피녜이로의 입문서로 유일하다 해도 좋을 선택지를 제공한다. 최대한 충실하려 한 마음이 그대로 깃들어 책의 가치를 잃지 않게 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영화예술에 진지하게 임하는 한 작가의 목소리를, 그의 실험과 도전의 성패를 생생히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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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프키노 펴냄

1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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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쓴 내 글 한 편이 실려 있다. 그럼에도 차마 내 책이라 부르고 싶지 않은 것은 이 책이 얼마나 대강대강 만들어졌는지를 알고 있는 때문이다. 누구도 마음을 부었다 할 수 없는 이 실망스런 책에 그래도 가치가 있다면, 적어도 인터뷰에 응한 공복들, 그 공직자들의 진심이 이따금은 읽히는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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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신문> '간병 가족' 기획보도를 그대로 따라한 <서울신문> 탐사보도.

접촉이 어려운 때문인지, 책 가운데 생생한 이야기가 충분히 담겨 있진 못하다. 그럼에도 담은 사례가 전하는 경향성만큼은 선명하고 뚜렷하다. 개인과 가정의 붕괴 가운데 사회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단 것, 고립되고 피로가 누적된 이들이 마침내 극단적 선택에 이른단 것이 하나하나 그렇다. 경향과 그 원인이 나왔으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단 건 참담한 일이다. 한국의 오늘이 꼭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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