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문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서문

@yiseomoon

+ 팔로우
밤이 오면 우리는 (정보라 소설)의 표지 이미지

밤이 오면 우리는

정보라 지음
현대문학 펴냄

내가 사라지면 여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남지 않을 것이다. 여자의 마지막 순간을, 여자가 존재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아이들과 함께 지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버려진 분수대가 있는, 물 냄새가 나는 공원을 헤매다녔다는 사실을 세상 그누구도 알지 못하고 상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울고 싶었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게 된 후로 나는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나는 빌리가 질문했던 인간의 조건을 생각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액체가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인간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눈물, 땀, 피. 혹은 진물이나 오물.
나에게는 없다. 피도 눈물도 땀도 체온도. 생명도.
여자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는 살아 있었다.
0

이서문님의 다른 게시물

이서문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서문

@yiseomoon

"인간은 참 별로에요. 그릇은 깨끗하게 씻으면 되는데, 옷은 잘 빨아서 말리면 새것처럼 되는데, 사람은...... 그게 안 돼요. 한번 부서지고 망기지면 되돌릴 수 없어요."
"하영아, 살아가면서 어느 한구석 망가지고 부서지지 않은 사람은 없어. 구멍난 곳은 꿰매고 금이 간 곳은 테이프로 붙이고, 그렇게 살아. 그런 게 사는 거야."
희주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하영은 이럴 때 거리감을 느낀다.
희주가 말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일상의 자잘한 흠집 정도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아빠가 건넨 독약으로 엄마를 죽여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런 아빠라도 함께 살고 싶어서 외조부모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고, 지붕까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군가 짜증나게 해도 상대의 목이 꺾이도록 계단으로 밀어버리는 짓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신들은 누군가를 죽이는 게 얼마나 짜릿한 경험이었는지 말하는 목소리를 머리에 집어넣고 살지 않는다.

나에게 없는 것

서미애 지음
엘릭시르 펴냄

1주 전
0
이서문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서문

@yiseomoon

인간은 선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선해 보이는 건, 단지 악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수연은 완다의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상상을 하든 뱀파이어의 존재를 알게 된 세상은 참혹했다. 분명 그들을 떠받드는 종교도 생겨날 것이고, 그들과 손잡고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건 수연이 형사 생활을 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천선란 (지은이) 지음
안전가옥 펴냄

3주 전
0
이서문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서문

@yiseomoon

우리는 2020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아니,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 전염병의 위협 속에서 꼬박 1년 넘게 보내고 있다. 영화에서나 봤던 일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모두 마음에 이 질문을 품었으리라. 올해 마흔이 된 선배는 이번에 직장을 잃었다. 첫째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막내는 이제 곧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40대에 훨씬 치열하다고 한다. 결국 그런 거구나 싶다. 무언가가 되어도 또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끊임없는 과정이 결국 인생인 거다. 아빠가 되었어도, 작가가 되었어도 마찬가지다. 또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나는 그냥 오늘을 살아내는 것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겠다. 그 이상은 생각도 안 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정도의 고민만 하련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큰 보폭을 만들어 뒷걸음을 걷겠다(뒷걸음을 치겠다는 문장이 읽기에 더 익숙하지만, '뒤로 걷는다'라는 감각을 표현하고 싶어서 이렇게 쓴다). 후퇴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내 미래를 그려본다. 좀 더 못한 삶, 나는 그 삶을 기꺼이 선택하겠다.

나는 알람없이 산다

수수진 (지은이) 지음
마로니에북스 펴냄

1개월 전
0

이서문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