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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왕

정보라 지음
아작 펴냄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공유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 육신의 얼굴은 타인의 손으로 근육을 주물러 표정을 바꿀 수 있지만 그 안의 존재가 무엇을 느끼는지는 확인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고통을 느낄 육신을 잃어버리고 할머니가 자유로워졌을지, 고통을 치유할 신체를 영원히 잃고 단지 그 고통만이 영속되는지, 종교나 무속에 의지하지 않고 경험적 사실로서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할머니의 피와 살로서, 나는 그 절대적 단절이 너무나 억울했다.
철학자들은 여기에 관하여 여러 가지 책을 썼다. 도서관의 서가에는 그런 책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나는 단지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런 단절의 밤에 나는 오래전 잊혀버린 언어로 기록된 누군가의 잃어버린 이야기들을 읽었다. 조각난 시간의 연대기를 한 단어씩 나의 언어로 바꾸었다.
죽음과 시간과 망각 앞에서도 어떤 이야기들은 살아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죽어 잊힐 인간에게, 그것은 커다란 위로가 된다.
2024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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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전략 수업

폴 포돌스키 지음
필름(Feelm) 펴냄

읽었어요
53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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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슴, 가족 한 명 한 명의 가슴,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 가슴을 가리키며 내가 모르는 말로 뭔가를 말했어. 하지만 분명 이런 뜻이었을 거야. '우리 아들은 아직 살아 있어'."
흔히 듣는 말이다. 기억에서 살아질 때야말로 사람은 진정한 죽음을 맞이한다고.
"아야나 씨는 아직 에구치 형의 마음속에 살아 있어. 그런 그녀를 데리고 함께 죽어서는 안 돼."
"아야나를 만난 적도 없는 네가 그런 허울 좋은 말을 할 필요는 없어."
"그럼 나를 위해 살아줄 순 없어?"
"널 위해서?"
"나는 친구가 많지 않아."
에리사와는 그렇게 말하며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었다.
"스무 살 때 기숙사생이던 나를 기억하는 건 형뿐이야. 형의 기억 안에서만 그 시절의 내가 살아 있어."
농담 섞인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네가 무정하게 살아온 대가일 뿐이지."
"형이 죽으면 내 일부도 사라져. 그 시절의 나를, 그 시절의 우리를...... 함부로 죽이지 마."
"너......"
"허울뿐인 말 한마디라도 하지 않으면, 이런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잖아."
에리사와가 입술을 깨물었다.
방 안에 커피 향이 다시 돌아왔다.

매미 돌아오다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내친구의서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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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돌아오다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내친구의서재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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