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싱숭생숭하다. 길가에 핀 민들레나 애기똥풀을 봐도 강동스럽고 아무것도 없던 가지 끝에 맺힌 새싹이 어느새 푸릇해진 것을 봐도 감격스럽다. 그쯤 되면 매년 화초를, 예쁜 꽃을 한두 개 사야 하나~ 고민한다. 그 고민은 길가에 핀 여러 식물들을 보고 아파트 화단이나 다른 집 화분 속 식물을 보는 것으로 곧 대체된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온 후 제대로 길러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올해는 작년에 이어 수업용이긴 하지만 강낭콩을 키우고 있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정원이 딸린 전원 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을 오래 꿔 왔다. 타샤 튜더처럼 몇 만 평까지야 불가능하겠지만 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그렇게 흙과 식물과 동물과 함께 살아가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말이다. <커다란 모과나무를 맨 처음 심은 이는 누구였을까>는 그런 나의 꿈을 조금이라도 잠재우는(싫어서가 아니다. 대리 만족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역할을 한 책이 되었다.
속초에서 자리를 잡고 10년 넘게 살아오며 생각한 것, 느낀 것, 정원 생활 속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번 책이 즐거웠던 건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 덕분이다. 다소 거친 듯 하지만 너무나 예쁜 일러스트를 통해 글을 읽고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것을 직접 들여다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계절 속에서 바라본 정원 이야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인위적인 무엇이 아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그런대로, 원래의 생태계가 나아가듯 그렇게 작가의 정원은 흘러간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치열한 잡초와의 전쟁이 있고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로 인한 갑작스런 온도 변화나 폭우, 건조함도 있으니 그런 것 앞에 인간은 초라하다. 그럼에도 자연 속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힐링이 되는지 모른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상하며 읽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커다란 모과나무를 맨 처음 심은 이는 누구였을까
오경아 지음
몽스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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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PD의 책을 처음 만난 건 내가 30대일 때였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 비슷한 것을 겪으며 무언가 돌파구를 찾고 있을 때였다. 라디오 PD라는데 라디오는 잘 듣지 않는 사람이라 그녀의 책이 내게 잘 맞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가 나이를 먹고 그녀의 옛 책을 읽으니, 음~ 또 느낌이 다르다. 젊은 시절의 그녀는 젊은 시절의 내게 크게 다가왔는데 내가 나이를 먹으니 이제 더이상 감성적인 글은 잘 읽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중고서점에서 <아무튼, 메모>를 봤을 땐 반가웠다. 무엇보다 이제 함께 나이 든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과 평소 눈여겨보며 재밌게 읽던 "아무튼" 시리즈의 그것도 "메모"에 대한 글이라면 읽어야겠다 생각이 든 것.
메모 또한 내가 나이 들어가며 바꾼 습관 중 하나다. 젊을 적엔 딱히 메모를 하지 않고도 잊지 않고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떠오른 생각들 또한 머리 한구석에 잘 자리잡고 있다가 적재적소에 생각났다. 흠~ 하지만 이제 아니다. 40이 넘어가면서부터였나, 40대 중반부터였나~ 그때는 실수가 잦았다. 생각날 때마다, 무언가를 정할 때마다 열심히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
하지만 정혜윤 작가의 메모와 나의 메모는 무척 다르다. 나의 메모는 기능적 메모다. 살아남기 위해, 더이상의 실수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메모다. 하지만 정혜윤 작가의 메모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보고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양분 삼아 펼치기 위한 메모다. 그동안 작가는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 듯하다. <아무튼, 메모>를 읽다 보니 그의 라디오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까 싶어서.
앞으로도 나는 나의 생각, 감상을 적는 메모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들만 모아볼까 싶었지만 그 또한 잘 되지 않는다. 내게는 독후감 정도 쓰는 게 최선일 듯. 각자의 성격에, 일에, 취향에 맞춰 자신의 메모를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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