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네버님의 프로필 이미지

에버네버

@yhkles

+ 팔로우
아무튼,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의 표지 이미지

아무튼, 메모

정혜윤 지음
위고 펴냄

정혜윤 PD의 책을 처음 만난 건 내가 30대일 때였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 비슷한 것을 겪으며 무언가 돌파구를 찾고 있을 때였다. 라디오 PD라는데 라디오는 잘 듣지 않는 사람이라 그녀의 책이 내게 잘 맞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가 나이를 먹고 그녀의 옛 책을 읽으니, 음~ 또 느낌이 다르다. 젊은 시절의 그녀는 젊은 시절의 내게 크게 다가왔는데 내가 나이를 먹으니 이제 더이상 감성적인 글은 잘 읽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중고서점에서 <아무튼, 메모>를 봤을 땐 반가웠다. 무엇보다 이제 함께 나이 든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과 평소 눈여겨보며 재밌게 읽던 "아무튼" 시리즈의 그것도 "메모"에 대한 글이라면 읽어야겠다 생각이 든 것.



메모 또한 내가 나이 들어가며 바꾼 습관 중 하나다. 젊을 적엔 딱히 메모를 하지 않고도 잊지 않고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떠오른 생각들 또한 머리 한구석에 잘 자리잡고 있다가 적재적소에 생각났다. 흠~ 하지만 이제 아니다. 40이 넘어가면서부터였나, 40대 중반부터였나~ 그때는 실수가 잦았다. 생각날 때마다, 무언가를 정할 때마다 열심히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



하지만 정혜윤 작가의 메모와 나의 메모는 무척 다르다. 나의 메모는 기능적 메모다. 살아남기 위해, 더이상의 실수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메모다. 하지만 정혜윤 작가의 메모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보고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양분 삼아 펼치기 위한 메모다. 그동안 작가는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 듯하다. <아무튼, 메모>를 읽다 보니 그의 라디오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까 싶어서.



앞으로도 나는 나의 생각, 감상을 적는 메모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들만 모아볼까 싶었지만 그 또한 잘 되지 않는다. 내게는 독후감 정도 쓰는 게 최선일 듯. 각자의 성격에, 일에, 취향에 맞춰 자신의 메모를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지.
2024년 4월 29일
0

에버네버님의 다른 게시물

에버네버님의 프로필 이미지

에버네버

@yhkles

  • 에버네버님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게시물 이미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5일 전
0
에버네버님의 프로필 이미지

에버네버

@yhkles

  • 에버네버님의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게시물 이미지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장폴 뒤부아 지음
밝은세상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0
에버네버님의 프로필 이미지

에버네버

@yhkles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가 각인된 건, <향수>를 통해서다. 너무나 강렬한 미스터리 소재에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묘사가 무척 마음을 끌었다. 그런데 작가가 더 좋아진 건, <좀머씨 이야기> 덕분이었다. <향수>와는 완전히 다른 소설이고 잔잔한 듯, 묵직한 소설이 왠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렇게나 다른 작품을 쓰는 작가라니 정말 궁금하다~ 생각했는데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어떤 상을 준다고 해도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신비함을 더해주는 작가.



최근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두 작품을 더 읽었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인 <콘트라베이스>와 세 번째 소설인 <비둘기>다. 이렇게 네 작품을 놓고 보니 <향수>만 좀 동떨어진 느낌이다. <향수>는 영화화되었을 만큼 대중적인 소설인 반면, 다른 세 작품은 매니아가 아니라면 읽기가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비둘기>는 느낌 상 <콘트라베이스>와 <좀머씨 이야기>의 중간 정도로 느껴진다.



<비둘기> 속 조나단 노엘은 오랜 기간 아무 걱정이나 큰 사건 없이 조용히 지내왔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너무나 큰 일을 겪었던 조나단에게 이 시간은 더없이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생활하려던 그때, 자신의 한 칸 방 방문 앞에 비둘기가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발견하다. 그는 이 비둘기를 본 후 패닉에 빠진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느껴지는 요의와 저 방문 앞 비둘기를 뚫고 과연 무사히 출근을 하고, 다시 이 안전한 방으로 귀가할 수 있을까.



조나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술은 마치 <콘트라베이스> 속 주인공의 혼잣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나단의 행동과 그 원인을 파헤쳐보면 마치 <좀머씨 이야기> 속 좀머씨와 비슷하다. 조나단은 유년기에 겪은 2차 세계 대전을 다 극복하지 못하고(누구라도 하루 아침에 부모가 사라지는 일을 겪는다면 그럴 것이다) 짜여진 일상 속 쳇바퀴같은 삶을 지향한다. 그 일상 속 "비둘기"는 그에게 침입자와 같을 것이고 오히려 이 비둘기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하나의 사건은 또다른 하나를 불러내고 이어 연속되는)로 패닉 상태가 지속되는 듯하지만 책의 처음, 어린 시절 아무 걱정없이 비 오는 날 물장구치며 걸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듯 철벅거리며 거리를 걷는 동안(좀머씨의 방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 조금씩 자신을 되찾아간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 누구라도 그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묘사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이제 <향수>도 한 집합으로 묶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를 왜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읽는 내내 궁금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나단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내면 세계를 심도 깊게 묘사한 쥐스킨트의 역작"이라는 설명이 아깝지 않은 소설이다.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열린책들 펴냄

1주 전
0

에버네버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