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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 지음
우리나비 펴냄

인간이 제가 선 곳으로부터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서 다른이를 판단하는 무지며 오만과 자주 마주한다. 살아온 삶의 궤적이 완전히 다른 개인이 웬만한 수련으로는 제 자리에서 남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인간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를 오판한다.

근래 벌어진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논란도, 최재형 선생에 대한 역사의 망실도 모두 이 같은 오만으로부터 출발한다. 러시아 국적을 갖거나 소련에 동조한 선택은 이들이 노비의 자식이며, 조국 강토를 잃고 터전이 없는 곳에서 조직과 과업을 이루기로 한 선택에 따른 것이다. 상하이파가 독립운동의 대세가 된 건 당시의 누구도 읽어낼 수 없는 급변하는 세계질서의 우연적 결과 때문이지 다른 무엇도 아니다. 대체 당시의 어느 누가 러시아와 일본을 동맹국으로 만든 1차대전 발발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최재형은 노비로 태어나 타지에서 맨주먹으로 성공을 일궜다. 그 모든 성공을 제 출신국의 인민과 나누려 했다. 교육사업과 실업진흥, 무장투쟁과 안중근의 의거를 모두 지원한 보기 드문 인물이기도 하다.

그 업적의 근간이 열두어살부터 유럽으로 떠난 항해들에 의지했단 건 다분히 인상적인 대목이다. 상하이파 집안 좋은 샌님들이나 조선 관료 출신 운동가들이 갖지 못한 세계관을 노비의 자식이고 러시아 선장에게 거둬진 최재형은 일찌감치 가졌던 것이다. 열두어살에 표트르 대제가 세운 유럽의 창을 보고,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의 서로 다른 발전을 목격하며, 무엇보다 그 험난한 항해로 얻을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한 최재형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어 열일곱에 배를 내렸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전에 읽은 소설보단 낫지만 전기가 아주 잘 쓰였다고는 못하겠다. 사료가 부족하여 몇몇 학술서에 크게 의지하는 탓이겠다. 그러나 최재형의 독특한 삶은 그 시대 보통의 삶과 크게 다른 것이었고, 나는 그 다름이 어디로부터 유래한 것인지에 큰 관심이 있다. 왜 누군가는 다른 이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가, 나의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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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오늘의 독자들에게 그리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건 카타리나 블룸이 잃어버린 것, 즉 명예가 오늘날엔 이미 너무나 쉽게 훼손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언론은 <차이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와 양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듯하다. 그 결과 회복되지 않는 피해들이 쌓여 오늘의 언론에게 기레기며 기더기라는 별칭까지 붙이기에 이른 것이다.

참담한 언론의 모습이야 잠시만 찾아봐도 그 사례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수많은 목소리를 듣다보면 사실이 전혀 아닌 내용이 사실처럼 둔갑하고 그 보도로부터 도저히 씻어낼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경우를 무척 흔하게 마주할 수 있다. 수많은 카타리나의 외로운 절망 뒤에 우리는 마침내 모두가 명예를 내어놓고 사는 세상을 맞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지음
민음사 펴냄

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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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역사와 지리가 별개의 영역이라 여긴다. 역사란 과거의 일과 그 의미를 배우는 학문이며, 지리는 인간이 살아가는 지표 위 공간을 이해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통시적인 것이고, 지리는 공간을 넘어 분석돼야 할 공시적인 것이어서, 둘은 서로 겹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역사는 지리 가운데서 태동하고, 지리는 역사 가운데서 의미를 가진다. 지리의 영향 없이 발전하는 역사는 없고, 역사와 따로 떨어진 지리는 생동감을 잃는다. 따라서 둘을 서로 결합해 이해하는 건 앎을 넓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역사 속에서 지리를 이해하는 것, 말하자면 역사지리는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박인호 교수가 지난 2021년 발표한 이 책은 저자가 과거 저술한 논문을 일반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게끔 정리한 교양도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조선 중후기 실학자들이 당대로서는 생소한 역사지리적 인식을 갖고 나름의 학문을 펼치는 과정을 정리해 나열했다. 16세기를 산 한백겸부터 대중에 널리 알려진 이익과 정약용을 거쳐 서구열강과 직접 맞닥뜨린 19세기 사람 이유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를 소환해 그들의 역사지리학적 성과를 풀어놓는다.

대중교양서로는 몹시 불친절하다 하겠으나 견뎌낼 수만 있다면 나름의 역할은 해낸다.

실학자들은 우리나라 역사지리를 어떻게 보았는가

박인호 지음
동북아역사재단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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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 이르는 칸트의 명저를 차근히 소개한다. 현대 독일어로 번역해도 난해한 이 엄청난 고전들을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설명하려 노력한다. 한국어 칸트전집 출간을 기념해 이뤄진 세 번의 특강을 정리해 보완한 것으로, 대중적으로 친근하게 칸트를 소개하려는 의지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칸트의 철학은 심오해 오늘의 평범한 지능으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평생에 걸쳐 칸트철학의 정수에 기꺼이 도전해온 이 노학자의 안내를 받는다면 셰르파와 함께 고봉에 오르는 산악인들이 그러하듯 한참 수월하게 그 경지를 맛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백종현 지음
아카넷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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