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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세요, 미래를 바꿔주는 택시입니다

기타가와 야스시 지음
북폴리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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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손끝에 굳은살이 잡혀야 제대로 칠 수 있어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대단하다고요?”
“네.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기타를 칠 수 있도록 저절로 몸이 맞춰지거든요. 물론 기타만 그런 게 아니죠. 피아노든 운동이든 사람 몸은 한 가지 행동을 꾸준히 지속하면 거기에 맞춰지잖아요. 무척 신기한 일 아닌가요?”
슈이치는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후지카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볼 때 사람의 몸은 어떤 것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부드럽고 유연하게 태어난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하나에 흥미를 갖고 몸을 쓰다 보면 특정 부위가 단단해지기도 하고 성장하면서 새로운 자기 몸에 적응하죠.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거쳐야 할 단계가 있지만요.”
“거쳐야 할 단계....”
슈이치는 벌겋게 부어오른 손가락 끝을 쳐다봤다.
“맞아요. 저는 그 단계가 아픔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손끝이 찌릿찌릿하고 아프시죠? 그래도 그 통증이 있어야만 손이 기타에 적합한 상태가 돼요. 부드럽고 유연한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증거인 셈이죠. 아픔 없이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동물은 신발을 신지 않고도 산속을 뛰어다니는데 왜 사람은 신발을 신어야 할까 궁금한 적 없으세요? 사람의 발은 신발 안에 둘러싸여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단단해질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우리 발이 부드러워서 산속을 뛰어다니지 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과보호를 한 거죠.”
슈이치는 과보호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해서 피식 웃었다.
“아픔에서 도망치려 줄곧 신발을 신은 게 맞잖아요. 신발을 계속 신고 있는 한 신발 없이는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발이 될 거예요. 만약 산속에서 신발을 과감히 벗으면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는 아파서 펄쩍펄쩍 뛰겠지만 시간과 과정을 꾸준히 쌓다 보면 발바닥에 굳은살이 생겨서 신발이 필요 없는 단단하 발이 되지 않을까요?”
“신발이 필요 없는 발이라고요?”
후지카미가 호탕하게 웃는다.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아,네...”
슈이치는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 세상은 누군가가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얻은 에너지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어요. 결과에서 얻은 에너지가 아니라 노력하는 모습 그 자체로요. 예를 들면 딸이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도 각자 처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를 받죠. 삶의 원동력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얻는 거예요.실제로 누군가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다독이고 힘을 얻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막상 자신의 일이 되면 아주 좁은 시야에 갇혀 스스로에게 가혹해지죠. 노력의 결과를 지켜보지 못하고 짧은 시간의 경험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바람에, ‘나는 역시 운이 없어. 노력해도 안 되잖아. 잘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거야’ 이렇게 극단적인 결론을 내려요. 노력의 결과나 보상이 빠르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 이해해야 해요. 오래 걸리면 10년, 어쩌면 100년이 될 수도 있죠.”
“그렇게나 오래 말입니까?”
“심지어 노력의 성과가 꼭 본인에게 돌아온다고 장담하지도 못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고 한참 후에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지금 당장 자기한테 생기지 않으면 운이 나쁘네, 노력해도 소용없네 하며 실망하는 겁니다. 자신의 인생이 지금이라는 단편이 아니라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 가운데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 가운데 일부.”
슈이치는 운전사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인간의 일생이 자신만의 스토리로 완결되는 것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기 욕망을 채우는 게 멋진 인생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간의 일생은 이와 달리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의 스토리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에요. 실제로 오카다 씨의 생명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이어져왔고 따님인 유메카 양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그렇게 이어지는 것은 생명뿐만이 아닙니다. 오카다 씨는 본인이 아닌 누군가가 만든 세상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 또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더 먼저 살아간 사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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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선 기세가 팔 할이야. 실령 승부에선 지더라도 기세에서 밀리면 안 돼. 차라리 감춰. 니 생가, 감정, 숨소리까지,,,, 그 어떤 것도 상대에게 드러내지 마."

"모든 것은 체력이다... 불쑥 손이 나가는 경솔함, 대충 타협하려는 안일함, 조급히 승부를 보려는 오만함... 모두 체력이 무너지며 나오는 패배의 수순이다. 실력도 집중력도, 심지어 정신력조차도 종국에 체력에서 나온다. 이기고 싶다면 마지막 한 수까지 버텨낼 체력부터 길러."

"그렇게 견디다가 이기는 거요. 쓰라린 상처에 진물이 나고, 딱지가 내려앉고, 새살이 돋고! 그렇게 참다 보면 한 번쯤은 기회가 오거든.... 조국수. 바둑판 위에선, 한 번 피하기 시작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승부 각본집

윤종빈 외 1명 지음
스튜디오오드리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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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계속 살게 도와주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종교가 있으면 자살이 ‘그릇된 짓’이라는 생각이 윤리적 저지책 역할을 한다. 물론 죽음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칠 영향이나 모방 자살 염려도 자살을 저지한다. 또 앞에서 봤듯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진화적 항상성(내부와 외부의 자극에도 형태와 생리적 특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것 - 옮긴이)이라는 자기 보존 본능도 있다.
인지 붕괴에 빠지면 이런 장벽들이 하나씩 무너진다. 의미 있는 생각을 하는 사고력을 잃고,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만 몰두한다. 정상일 때는 고통의 숨은 의미를 찾는 생각이나 영적인 생각을 낳는 추상적인 사고를 한다. 그런데 자살 앞에서는 이런 사고가 놀랍도록 사라진다. 슈나이드먼은 "자살학에서 가장 위험한 어휘는 네 글자로 된 단어(욕설 fuck을 의미 - 옮긴이)뿐이다." 라고 말했다. 달리 말해 자살 의향자는 모아니면 도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젖는다. 상황이 흑백이 되었고, 은유적 미묘함 따윈 없이 오직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없다.

나는 죽으려고 했던 심리학자입니다

제시 베링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지음
더퀘스트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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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

@lucyuayt

"'인생은 게임'이라니,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간은 믿으면 안 돼."
신발장에서 로퍼를 꺼내는 마토는 웬일로 저기압이었다. 5교시 수학 시간에 하시모토 선생님이 잡담을 하다 꺼낸 한마디가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 대학 입시에 취업 준비에 육아. 앞으로 많은 시험대가 너희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뭐든지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인생은 게임 같은 법이니까.
"마토는 그런 사고방식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어? 내가? 에이, 무슨 소리야, 고다. 오히려 그런 사고방식은 싫어하는 편이랄까."
"왜?"
"인생은 무를 수 없잖아."

지뢰 글리코

아오사키 유고 지음
리드비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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