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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최인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광장은 문체가 매우 독특하다.

주인공의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이 왠지 모르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시대적 배경은 정치적 혼란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절정에 달했던 1940년대 후반에서 6.25전쟁을 끝맺는 시기 까지이다.

제목으로도 쓰인 ‘광장’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주로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의 측면에서 바라봤다.

주인공 이명준은 철학을 전공으로 하는 대학생으로 부유한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기거한다.

그러던 와중 북에서 대남방송을 주관하는 아버지로 인해 경찰서에 잡혀가 극심한 고충을 겪는다.

남한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광장에 대해 극심한 경멸을 토로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밀항선을 타고 아버지가 있는 북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북녘 땅에서 조차 그가 찾던 광장은 없었다.

자유는 매몰되고, 인민들은 무기력증에 빠졌으며, 오로지 당의 뜻대로를 외치는 꼭두각시가 지배하는 비상식적인 사회였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광장을 찾지 못해 괴로워 하던 그는 사랑에서 도피처를 찾지만, 그 사랑도 오래가지는 못 한다.

전쟁 중에 애인은 죽고 자신은 전쟁포로가 되어 종전을 맞게 된 것이다.

명준은 남과 북이 아닌 제 3국으로 향한다.

그곳엔 광장이 있을까?

3국으로 가는 배에서 극심한 혼란을 느끼던 그는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것은 광장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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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d

내용은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읽기는 힘들었다.

반복해서 읽은 문장들이 꽤 됐고, 의미 파악이 안 돼 그냥 건너 뛴 부분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글의 맥락을 파악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의 요지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는 그 특성상 개인의 자유를 박탈할 수 밖에 없고, 대다수의 국민을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주장의 근거로 공산주의 체제로 진입한 소련과 민족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전쟁을 일으킨 나치 독일의 사례를 드는데, 논리가 매우 탄탄하고 강력해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같이 복지가 잘 되어 있는 국가의 모델을 가장 이상적이라 여겨왔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마땅히 그 길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길이 그토록 어렵고 위험한 길인 줄은 몰랐다.

정부주도의 어쩌고 저쩌고…

뉴스를 보다보면 정말 많이 보게 되는 문구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말 속에 숨겨진 위험성을 경고하며 자유를 위해 경쟁은 필수라는 점을 강조한다.

계획경제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경제부분을 독식하려는 정부나 정치세력이 있다면 필히 경계해야겠다.

노예의 길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지음
자유기업원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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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길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지음
자유기업원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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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d

맙소사!!!

무슨 소린지도 모른 채 글씨만 읽어 내려갈 땐 마치 초등학생이 되어 양자역학 논문을 읽는 기분이었는데, 이 책을 끝까지 읽다니…

어떻게든 들뢰즈의 심오한 철학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버틴 듯싶다.

리좀, 기관없는 몸, 욕망, 생성, 내용과 표현, 기호, 탈영토화, 재영토화, 도주선, 코드화, 덧코드화, 홈 패인 공간, 매끈한 공간, 정주민, 유목민, -되기, 리코르넬라…

이처럼 낯선 개념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와 나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그저 묵묵히 시작도 끝도 없는 ‘천개의 고원’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갔다.

만약 동영상 강의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해내지 못 했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찾아낸 훌륭한 교수님들의 강의는 이 책을 읽어 나가는데 있어 이루 말 할 수 없이 소중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그렇담 내가 들뢰즈의 철학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단지 ‘세상을 이런식으로도 바라볼 수 있구나!’ 하는 정도로 겨우 냄새만 맡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책을 읽을 때 불현듯 이 책에서 배운 내용이 떠올라 해당 문장에 밑줄을 긋고 ‘탈영토화’, ‘재영토화’라고 끄적일 정도의 개념은 생겼다.

그러고 보면 책 읽는 시간이 무척 지루하고 고달팠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 하나를 더 얻게 된 데에는 결코 비할 바가 아닌 것 같다.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위계에 따라 구분지으며, 닮은 것 끼리 묶고 비교하는 수목형 눈만 가지고 있던 내게 세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알려준 들뢰즈와 가타리, 그리고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신 여러 교수님들께 한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읽는 도중 포기했던 들뢰즈, 가타리의 전작 ‘앙티 오이디푸스‘를 조만간 재도전해 볼 생각이다.

천개의 고원

질 들뢰즈 외 1명 지음
새물결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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