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후치는 여행을 통해 여러 종족을 만나며, 불완전함과 혼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긍정하는 경험들을 쌓아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부조화를 모르는 엘프에게 불완전한 자로서 가능했던 포용력으로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유한을 모르는 드래곤 로드에게 필멸자만이 할 수 있는 멋진 일갈을 날리기도 했다. 그 지점까지는 이 이야기가 마치 혼돈과 함께 살아가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찬가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가자 소설은 얼굴을 바꿨다. 혼돈과 불완전함을 무기로 쥔 채 마구잡이로 만물을 인간화하고, 타자를 오염시키는 인간의 본성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인간 자신을 향해 닥쳐온다. 후치는 대마법사 핸드레이크와 루트에리노 대왕의 전설 뒷면에 숨겨진 비밀을 더듬으며 그 비극과 사유의 궤적을 현재와 함께 성찰해갔다.
이 여행이 지루하지 않고 이렇게 유쾌할 수 있었던 것은 후치의 재능이 크다는 것을 누구든 인정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과연, 후치의 마법의 가을은 마지막까지 위트를 잃지 않았다. 책 제목에 걸맞은 신비로운 시련을 인간에게 스스로에게 남기며 그 다운 겨울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후치가 남긴 이 시련이 다음 가을의 추수에 어떤 수확으로 돌아올지, 그 수확이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 어떤 겨울을 맞게 할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후속작들도 기대 된다. 아쉬웠던 점은 상대적으로 여성 캐릭터들의 개별성이 옅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게 대충 25년 된 작품인 걸 생각하면.. 당시엔 시대적으로 앞섰던 작품이라 감안하며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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