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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나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모른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하면서 그 자리에 함께 머물고 있었다."
1년 전, A를 만났을 때 '저 모습이 진짜가 아닌 것 같아'라고 느낀 적 있다. 그때 나는 A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전화도 하고, 만나도 보고, 인터뷰까지 했던 적 있다. 그래서 A의 진짜 모습을 보았는가? 아니다. 진짜 모습은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어쩌면 A 자신조차도.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면 자주 "나는 나를 모르겠어"라는 말이 나온다. 답변 모두 기록해야 하는 일의 입장에서 애매한 말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대답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질문에 있어서 나를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용기는 마치 진짜처럼 느껴져서.
우리는 서로를, 나를 다 안다고 착각한다. 내가 아는 나는 전부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진짜'는 진짜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일기에 쓰는 말이 다 진짜인가? 나를 꾸미고 정의내리고 쓰는 말들은 모두 진짜가 아니다. 어쩌면 그건 "내가 진짜라고 믿어온 것들"일 뿐이다. (드라마 <안나>의 유명한 문구,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유미의 행동 안에서 도덕과 외모로 운운하는 건 이 책 안에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다. 『친밀한 이방인』은 경찰이 유미의 범죄를 처벌하려는 내용도, 범죄의 허술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소설은 화자를 통해 유미의 행적을 쫓아가면서 지금까지 믿어온 것들이 진짜냐고 물음표를 던질 뿐이다. 나는 그 물음표만으로 읽을 이유가 충분했고, 충실히 이야기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었다.
내가 A의 진짜 삶을 알 수 없었듯, 인터뷰에 모르겠다고 답변을 하듯 나는 진짜 유미의 삶을 몰라도 될 것 같았다. 마침내 카페에서 서로의 삶을 모르는 것에 안도하는 화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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