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빈농의 자식인 내 아버지가 그곳을 떠나 부산으로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그 지위를 갖게 되었으리라.
1950년생인 내 아버지가 어릴 적 며칠은 군인이 며칠은 빨갱이가 마을에 내려와 이 잡듯 모든 걸 쓸어갔다고 했다. 이미 전쟁이 끝나고서도 한참을 그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이야기였지만 그 시골동네에선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했다. 한편으론 우습기도 한편은론 수긍이 가기도 했다.
빨치산의 삶을 살다간 아버지가 죽고나서야 아버지의 행적을 좇아가는 하나뿐인 딸. 아버지의 손길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다정한 사람으로, 정의로운 사람으로, 멋드러진 사회주의자로 각기 기억에 남겼다.
그러나 아버지의 딸에게는 그저 아버지로 남을 것이다. 내 아버지 역시 각기 다른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기억되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내 아버지로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