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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누아르

한정현 지음
북다 펴냄

일과 사랑이 양립하지 않는 여성의 칙릿

이것이 K-칙릿, 즉 한국형 여성 성장 서사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곧,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일과 사랑’을 동시에 품은 여성 서사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90년대, 2000년대는 물론이고 그 이전인 80년대에는 더욱더 그러했을 것이다.

1980년대는 우리 부모님, 특히 어머니 세대의 청춘이었다.
그 시절 여성들의 삶이 고단했음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러브누아르》 속 서사처럼, 직장 안에서 웃음을 흘리는 것조차 ‘임신 아니면 낙태’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현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조차도 ‘화이트컬러’ 직업군에서의 이야기였다면,
당시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위험한 시대였는지 절감하게 된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이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을 쌓고, 스스로의 욕망과 삶을 자각하며 ‘자유로운 개인’으로 성장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타인의 기대에 맞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운 좋게’ 잘 맞아떨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대. 어쩌면 그것이 여성의 삶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었던 게 아닐까.

이 작품을 읽으며, 문득 우리 세대가
왜 그토록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는지 떠올랐다.
공부 외의 경험은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엄마들은 항상 말했다.

“엄마처럼 살지 마.”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정작 딸들이 ‘엄마와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는’ 인생의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해준 흔적은 드물었다.

그게 그분들의 한계였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던 자유가, 자식에게만 간다는
사실은 얼마나 억울하고 두려웠을까.

질투와 분노, 자기연민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감정 속에서,
결국 딸에게도 온전한 주체로 사는 기회를 기꺼이 내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이렇게 사는 건 아니구나”를 알았을 뿐,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자신도 모르는 세계를 딸에게 허용해주는 일은 또 다른 용기였을 테니까.

세상이 조금 더 안전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체험했던 사회는 결코 무해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살아낸 기억은 지금에 와서 말로 꺼내기조차
애매할 만큼 복잡하고 아픈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엄마 역시 무서워서 하지 못한 일이 많았으리라,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낸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저 오늘 하루가
아니,엄마의 지난 청춘 전부가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밤이다.

그러니 나라도 인생 살아가며 운전대를 잡고 나아가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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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애정도, 의욕도, 뚜렷한 목표도 없던 모림에게 유일한 낙이라면 3개월에 한 번 책을 읽는 일, 그리고 최근에 추가된 ‘떡 먹기’였다. 그런데 바로 그 ‘떡’이 도화선이 되었던 걸까. 떡집 아들이자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찬영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모림의 동료 성아는 마치 자신의 사연 있는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려는 듯, 진심과는 별개로 모림의 남자관에 다소 참견을 한다. 그 모습은 때때로 주제넘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모림 역시 찬영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림은 어쩌면 대부분의 한국인, 아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정해진 방향도 없이,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일기예보를 빗나가는 날씨처럼 예상할 수 없이 변덕스럽고, 우리는 그렇게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찬영과 약밥이와 함께라면, 그 길이 가시밭이든 꽃길이든 상관없이 모림은 처음으로 인생이라는 승용차의 운전대를 스스로 잡게 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리드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첫 번째 방향 전환. 어쩌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출발이 아닐까.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김화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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