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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 투 마우스

린다 티라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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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생리적 현상을 통제하는 것은 정신과 육체에 대한 통제를 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피고용인 또는 하급자가 압박을 느끼고 스스로 자기통제와 검열을 해야만 한다면 그런 일자리는 직접적인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던, 또는 은근하고 교묘한 업무 분위기와 눈초리로 간접적 압력을 행사하던 실질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직원의 기본욕구를 충족시키지도 못하면서 고객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말은 서비스직에서 자기기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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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 흥미진진한 첩보극을 읽고 싶은 사람
- 디스토피아물을 좋아하는 사람
- 사회가 개인과 내면을 어떻게 분열시키는지를 느끼고 싶은 사람

* 어쩌다 집어들었나
다른 독서모임에서 더글러스 케네디의 <원더풀 랜드>를 읽기로 했다.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미국의 현재 상황에 읽기 적절한 책이기도 했고 미국인 본인이 생각하는 그들의 미래라는 점에서 대다수 미국인들이 느끼는 현재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를 엿볼 수 있다.

* 무슨 얘기를 하는 책인가
미국의 혼란스러운 사회갈등에서 파생된 이 소설은 미합중국이 두 국가로 분열된 가까운 미래를 다루고 있다. 개신교에 기반을 둔 '공화국 연맹'은 종교적 이념과 계율을 어기는 이들을 색출하고 공개처형을 하는 공포정을 펼친다. 한편 공화국 연맹의 억압에 반발한 주들은 기업가를 중심으로 연맹에서 탈퇴하여 자신들만의 '연방 공화국'을 세워 독립한다.

공화국 연맹의 폭력이 강렬하여 연방 공화국이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국가처럼 보이지만 이쪽도 뜯어보면 숨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몸에 칩을 심어 전자결제, 의사소통, 정보검색을 몸짓 만으로 편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이동하는 모든 동선과 출입기록이 데이터로 저장된다. 연방 공화국 시민에게는 사생활이 없다. 공화국 연맹의 위협을 탐지한다는 안보와 기술의 편리함이 결합하여 구성원들에게 선택지가 없는 대안을 강요한다.

주인공 '나'는 연방 공화국의 첩보원으로 공화국 연맹의 위협을 막거나 제거하는 것이 임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직업이 요구하는 '사명'이 본인 인생의 '소명'인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성과와 재능을 상관에게 증명해보이고 그 대가로 더 나은 대접과 승진을 약속받는다. 하지만 완벽한 요원이 되기 위해 노력할수록 '나'는 자신의 감정을 감자 껍질 벗기듯 한 겹씩 도려내야 한다. 변장한 신분을 위해 누군가와 말을 깊게 나눠서는 안 된다. 약점이나 과거사를 들키지 않기 위해 기억 속 장소를 찾아가서는 안 된다. 감정을 누군가에게 말해서도, 주의깊게 들어서도 안 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의 인생보다 변장한 신분인 '에드나'의 삶에 더 집중하기 시작한다. 신분에 어울리는 행동과 생각까지 갖추고 남의 의심을 피한다는 명분으로 요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금기들을 체험한다. 정보국의 요원으로서의 '나'는 남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야 하지만 '에드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굴고, 필요한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주인공은 연방 공화국이 공화국 연맹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 나은 이유로 공화국 연맹처럼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지 않으며, 화형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밖에 대지 못한다. 과연 그녀가 공화국 연맹에서 태어났다면, 미국이 아닌 외부인의 입장이었어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주입받고 합리화 하려는 생각일 뿐일까?

작중의 미국인들은 선택의 자유가 있다. 연방 공화국과 공화국 연맹 중 어느 한 곳을 선택할 자유다. 하지만 단 두 가지의 대안만을 주는, 이미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고르는 자유가 과연 선택의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종교억압국가와 기술감시국가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를 줬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감내하라는 말은 또다른 억압처럼 보인다.

양자택일이 강요되는 구도는 '나'의 삶에도 반복된다. '나'는 연인도 가족도 없는 몸이다. 요원의 삶을 시작한 이상 행복이나 사생활, 안락한 가정은 이미 멀어졌다. 타인과의 교류는 차단당했으나 '나'는 아버지가 살아있을 적의 추억이 주는 인간적 접촉을 잊지 못하고 자꾸 되새김질 한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원해서 일에 더 매진하는 건지, 아니면 과거를 어떻게든 지우고자 고민하는 자신의 인간성을 없애는게 편해 더 무정한 인간이 되기를 선택한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임무를 위해 공화국 연맹에 잠입하는데 거기서 그녀가 본 건 체제에 맹목적이고 눈 먼 사람들이 아닌, 자신만의 삶이 있는 개인들이었다. 연맹의 경찰에게 잠시 잡혀 취조를 당하던 중 경찰관이 그녀가 가진 박하사탕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리는 대목이 있다. '나'는 의심을 피하고 상황을 모면하고자 호의의 표시로 사탕을 건네준다. 그 경찰관은 이제는 나라가 갈라져 구할 수 없는 사탕에서 정치와 이념갈등보다는 추억을 먼저 보았고 그 잠깐의 순간 동안 공화국 연맹의 보안경찰은 사탕이 그리운 남자로 바뀐다.

이념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을수록 정치와 국가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들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양한 개인들이 가진 사연과 주장과 가치관은 모두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에 묻혀 사라진다. '나'의 인생이 점점 감정도 기억도 제거하기를 강요받는 요원이 되어가는 것처럼.

'나'는 어떤 외부 요인도 없이,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사람들이 교류하며 필요하다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던 과거의 미국을 떠올리곤 한다. 분열된 미국은 공화국 연맹과 연방 공화국으로 쪼개져 미국의 정신도 둘로 찢어졌듯, 주인공을 포함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체제의 현실과 인간성이 조화되지 못한 채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분리 때문에 누구에게도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며, 근원적으로 고독하다고 느낀다.

미국이 갈라서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사탕에 얽힌 경찰관 아버지의 사연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을 테고, 그와 서로의 내밀한 인생사를 함께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에 남은 건 의심스러운 적대국 여행자를 검문하는 경찰관과 그를 어떻게든 속이고 목숨까지 버려서라도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요원만이 있을 뿐이다.

감정을 섞고 같이 경험하기에는 타인과의 접촉이 부담스럽고 위험한 시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세포들처럼 쪼개지고 쪼개지고 또 쪼개져 무수하게 분열하다 흩어져버린다. 너무나 파편화되어 다시 뭉치는 법을 잊은 '나'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원더풀 랜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밝은세상 펴냄

1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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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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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또는 더 깊이 빠지지 않도록 버티기 위해 일을 많이 할수록 역설적으로 더 많은 일을 놓치게 된다. 왜냐면 일은 단 한 번도 사람을 배려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누군가의 수고를 통해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방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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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티라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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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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