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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그리다
욘욘 외 19명 지음
폴앤니나 펴냄
책은 단지 텍스트의 집합이 아니다. 누군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든, 시간의 상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책을 산다. 읽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삶의 일부로 들이기 위해서. 책은 때로는 방을 채우는 오브제가 되고, 때로는 내 기분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서점은 나에게 쉼의 공간이고, 책은 그 안에서 건져 올리는 작은 조각들이다. 그렇게 오늘도 책을 사고, 책을 곁에 두며, 아주 조용하게 행복해진다. (p.115)
아이가 먼저 성당 교리에 들어가야 하기에 미사 시간이 한참 남았음에도 성당 마당에 들어섰다. 작고 호젓한 공간, 웃긴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성당 마당에서는 책도 쑥쑥 잘 읽히는 기분이 들어 거의 매주 가방에 책 한 권을 넣어 성당에 온다. 이번 주 들고나온 책은, 나의 애정하는 소설가, 김서령 작가님의 폴앤니나에서 출간된 『서점을 그리다』.
많은 분이 익히 아시겠지만, 김서령 작가님의 글은 소나기처럼 우리 삶을 스며놓은 문장이 많았는데, 그녀가 만드는 책도 신기하리만치 그녀를 닮아있다. 그래서 이번 책, 『서점을 그리다』을 통해서도 나는 우리가 심취하는 것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많이 느끼고, 생각했다. 또 무엇인가에 풍덩 빠져 살아갈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또 한 번 실감했다. 『서점을 그리다』는 소금이, 욘욘, 나예, 도담 작가님 등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동네서점을 그리고 기록한 책이다. 평소에도 책을 시공간을 초월하게 하는 “어디로든 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은 마치 전국의 서점을 직접 여행하게 만드는 기분의 책이었다. 거기에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가 더해져,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마음속으로 풍덩 빠지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서점을 그리다』가 더 좋았던 까닭은, 각 작가가 책이나 서점에 대해 느끼는 점을 기록한 문장들 때문이었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동지애와 공감까지 듬뿍 느끼며, 내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책이 가득 있는 공간들에서 얼마나 안정감과 평온을 느끼는지 새삼 깨닫게 되더라. 『서점을 그리다』는 분명 운전석에 앉은 채 읽었는데, 한 시간 남짓 동안 나는 '책방고즈넉'으로, '책방주의'로, '봄날의 책방' 등으로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책이 가지는 강력한 힘을 또 한 번 체험했다.
신기하게도 나랑 이름도 두 글자나 겹치는(!) 진킴 작가님의 문장을 읽다 눈물이 왈칵 났다. 책을 좋아하는 엄마가 만들어내던 집안의 풍경, 그리고 엄마와 나누던 책 이야기, 엄마가 나이를 먹고 바빠지며 엄마랑 책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점점 없어져서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바빠진다는 건 이렇게 아쉬운 일투성이인 것 같다(p. 135)”라는 말에 울음이 터진 건, 그런 시간들을 고스란히 겪어온 나의 유년기와 앞으로 그런 감정을 겪어갈 나의 아이가 겹쳐 보였기 때문. 지금의 내가 아빠와 책을 이야기하며 보내온 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듯, 우리 아이도 나와 보낸 시간들이 추억으로 촘촘히 남아있겠지.
진킴 작가님뿐 아니라 각각의 작가님마다 남기는 문장들이 다 있었다. 어떤 문장은 내 마음 같아서 공감을 했고, 어떤 문장은 생경하게 느껴져 '이렇게 책을, 책방을 바라볼 수 있구나'하고 느끼게 했다. 그래서 온 마음이 푸근해지고 부자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들의 문장을 여기에 옮겨놓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도 '아, 나도 이런 기분 알아'하는 연결고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책을 더 사랑하고, 책방을 더 사랑하면 좋겠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움직이는 일이었다. (p.15 기믕서 '세입오브타임')
이 모든 것이 나를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p.24 고래하 '메종인디아')
어떤 공간이 오래 남는다는 건 결국,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오래 살아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p.34, 소금이 '책보냥')
'독자의 태도가 공간을 완성한다.'는 “다다르다”의 철학처럼 이 서점은 방문하는 모든 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작품이다. (p.45, 노리다락 '다다르다')
같은 공간에서 책이 건네는 위로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교감이 이루어지리라. (p.56 욘욘 '경기서적')
서점에 들어가는 순간은 언제나 평화 그 자체였다. (p.82, 버드얀 '교보문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그 책을 바라보면 괜히 마음이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그저 거기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책. (p.114, 치유 '홀로상점')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내가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조용한 장소가 주는 감정은 고요함을 넘어 때로는 나 자신을 다시 정리해주는 힘이 되었다. (p.171, 무니 '숭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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