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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래빗홀 펴냄

[ 여행의 끝 ]

105. 그래도 녀석은 별것도 아닌 나의 설명을 무척 신기해했고, 🌱아무런 비판도 반박도 없이 귀를 기울였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녀석이 그런대로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분위기에 지쳐 있던 나는 적잖이 위안을 받았다.

녀석도 아마 언제나 다른 기술자들의 구박에만 시달리다가 자기보다 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가 잘 아는 분야를 설명해줄 기회가 생겨서 조금은 신이 났을 것이다. 그렇게 나와 녀석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우주선 구석에 나란히 앉아서 (녀석은 이런 '죽은 공간'을 찾아내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했다) 🌱서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또 그 알아듣지 못할 말을 무조건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들어주었다. 사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법이다.

106.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녀석의 인생은 나로서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녀석에게는 아마 내 인생도 비슷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인지, 녀석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이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이것이 나와 녀석의 대화 중에서 유일하게 마찰 이 있다면 있었던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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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e More Kiss, Dear ]

228. 나는 계속 물었다.
- 인간은 어째서 노화하고 어째서 죽어야만 합니까?
인간은 어째서 기계가 아닙니까?

-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물의 둥지가 대답했다.

- 그렇다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어떤 것입니까?

- 기계와 사물에 관한 질문은 대답할 수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 자연 현상에 관한 질문에도 90퍼센트 이상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유한함과 죽음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 어째서입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물의 둥지가 대답했다.

- 인간 스스로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래빗홀 펴냄

1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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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당선소감 | 강정아

삼십 년이면 길이 들기만 했겠나요, 깍이고 파인 자리가 맨들 맨들하게 다듬어져 제법 견딜만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받은 당선 소식이 🌱아주 많이 좋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장용돈 외 21명 지음
한국소설가협회 펴냄

1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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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iju4k

[ 그녀를 만나다 ]

259. "바흐친은 인간이 주관적인 시선으로 객관적인 외부 세계를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을 대할 때에 자 신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모습, 즉 거울상의 모습과 타인 이 나를 볼 때에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는 모습,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타인의 모습, 이렇게 세 가지 시선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화면에 바흐친의 얼굴이 나타난다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인공지능 거울상이라면 내 얼굴에 바흐친 얼굴이 덧씌워진다는 얘기일까? 바흐친은 별로 잘생기지 않았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사회자는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인간은 타인이 자신을 볼 때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 자신이 되돌아보는 자신의 모습에 맞추어 자신을 계속해서 변화시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타인을 바라볼 때 그 시선 안에는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타인이 나를 볼 것이라고 상정하는 시선들이 함께 들어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래빗홀 펴냄

1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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