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자 미션과 별도로 써보는 기록.
아마 고독자 1기가 아니었다면 평생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를 읽을 수 있었을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에 빠졌더라도 앞의 몇 페이지를 잠깐 들여다보고 아마 포기했을 듯. 그래서 이 고독자 미션이 정말 고마울 지경이다. 어떻게든 읽어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들 뿐 아니라 점점 좋아지기 때문이다. 왜 울프의 최고봉 작품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듯.
<파도>는 기존의 책을 읽듯 읽을 수가 없다. 특히 내 경우 어떤 책을 읽든 기록을 남길 마음으로 읽기 때문에 보통 전략적으로 읽는 편인데 <파도>는 불가능하다. 일단, 줄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다. 사실 잘 살펴보면 줄거리가 있기는 있다. 상징과 비유가 많아 그 줄거리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을 뿐. 또, 그 줄거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잘 모르겠는 줄거리를 파악하려고 읽다가는 멘붕에 빠지게 되고 결국 포기하기 직전까지 갈 수 있다는 것.
그러니 <파도>는 그냥 읽는다. 사실 원서로 읽을 수 있으면 훨씬 더 아름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울프가 시희곡이라고 불렀을 만큼 <파도>는 시적인 표현들의 향연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번에 책을 읽을 땐 줄거리보다는 그냥 문장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곳들을 필사해 나갔다. 보통 어려운 책들을 읽을 때는 마음에 드는 문장은 포스트잇으로, 전체적 줄거리나 중요 사항들은 마은드맵 식으로 적으면서 읽는다. <파도>는 그저 적어나갔다. 그리고 그 적은 것들을 모두 읽은 후, 다시 읽으면서 떠올려보니 전체적 윤곽을 잡을 수 있었고 그 문장들이 바로 마음에 들어온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이해했다고 위안을 삼는다.
몇 년에 한 번씩 읽어야 하는 책 리스트에 <파도>도 추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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