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 팔로우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이꽃님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이꽃님 지음
문학동네 펴냄

풋풋한 성장소설이다. 주인공 지오와 유찬 모두가 저마다 원치 않는 변화 앞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간다. 제 멋대로 닥쳐오는 불행은 어찌할 수 없다지만, 대응만큼은 내 몫이란 걸 이해하게 된다. 그 또한 성장이다.

기억은 편의적이다. 한때는 간절했던 순간조차 지나치고 나면 흐릿해진다. 오늘의 내가 어느 순간 뚝 떨어진 것이 아닐 텐데도,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지난 시간을 충실히 기억하지 못한다. 소설이 우리가 지나온 그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단 건 분명한 매력이다.

지오와 유찬의 앞길에 다시는 고통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또 다른 상실이, 아픔과 좌절이 닥쳐올지 모른다. 여전히 제 의사 따윈 고려하지 않고서 삶 전체를 망가뜨릴 듯 달려들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앞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용서하고 응원하며 지지하려는 마음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으리라고 이 착한 소설이 이야기한다.
0

김성호님의 다른 게시물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기계가 인간보다 땅을 잘 파게 되었을 때, 인간은 인간다움이 정신에 있다 말했다. 기계가 인간보다 체스를 잘 두게 되었을 때, 인간은 인간다움이 예술에 있다고 하였다. 이제와 기계가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소설까지 쓰는데, 인간은 인간다움이 무언지 찾으려 들지도 않는다.

에르베 르 텔리에가 AI와 소설 쓰기 대결을 벌여 간신히 승리한 사실을 처음 한국에 전했다. 흥미로운 건 르 텔리에와 같은 탁월한 작가가 한국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단 것. 놀랄 일도 아닌 것이 AI가 당장이라도 써낼 수 있는 졸작이 베스트셀러로 군림하고, 대단히 훌륭한 저술도 수백권을 팔지 못하고 절판되는 게 현실인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진실로 인간이 이룰 수 있는 탁월함을 추앙하는지를 의심한다.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시시각각 닥쳐온다. 떠밀려 익사하지 않기 위해 무얼 하긴 해야 할 텐데. 늦된 데다 어설픈 이 책은 한숨만 깊게 할 뿐.

먼저 온 미래

장강명 지음
동아시아 펴냄

1일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매달이었으면 좋겠지만 어쩌다 한 번씩 열리는 독립영화 상영회가 있다. 서울 홍대입구역 인디스페이스에서 평일 저녁 진행되는 독립영화 쇼케이스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회원이 만든 작품을 정식 개봉에 앞서 선보이는 행사로, 따로 만나보기 쉽지 않은 독립영화를 극장서 접할 수 있단 점에서 유익한 자리다.

책은 2024년 독립영화 쇼케이스의 기록이다. 상영된 작품 모두의 출발부터 제작과정, 비평과 상영 뒤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까지를 글로 정리해 묶어냈다. 개중엔 <해야 할 일>처럼 나름 주목할 만한 작품도 있고, 다분히 실험적이고 대중성을 아예 상실한 듯한 영화도 있다.

영화에 따른 기록인지라 영화의 가치가 곧 책으로 이어진단 건 어찌할 수 없는 일. 한국 독립영화가 아직은 갈 길이 구만리란 걸 이 책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는 건 언제고 훌륭한 작품을 이 행사를 통해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겠다.

2024 독립영화 쇼케이스

한국독립영화협회 편집부 지음
한국독립영화협회 펴냄

2일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연봉 3500루블일 때 불행했던 것이 5000루블일 때 즐거워지는 모습이 이반 일리치의 온 생애 동안 계속된다. 가만 보면 죄다 허상이다. 주변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 가치 하나를 그의 삶 가운데 찾아볼 수가 없다.

무엇이 중한가. 책은 삶 가운데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묻도록 한다. 이반 일리치의 온 생애에 걸쳐 그 허망하고 괴로운 죽음을 목도한 뒤 독자는 그의 삶과 제 삶을 관통하는 진짜로 중한 것, 삶의 의미를 직시한다. 비교하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것이 존재하는지를, 온 생을 바쳐 살아낼 삶이란 것이 있는가를 묻도록 한다.

책은 끝내 그를 언어로 포착해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돌아보도록 이끈다. 이반 일리치가 그러했듯,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깨닫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위대한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일 테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창비 펴냄

4일 전
0

김성호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