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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양장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펴냄
34p.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1999년에 내게는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과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44p.
그러므로 자연이 무섭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부에 두려움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지금 이 눈보라의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어둠이 내린 밤, 보이는 거라고는 그저 자신의 모습뿐인 칠흑 같은 창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아마도, 그 의미 없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의미 없는 것들의 무자비함을. 이 무자비함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면 사람은 자기 내면에 의미를 세워 자연을 해석해야만 한다.(…)아무런 의미가 없어 무자비할 수 밖에 없는 자연에 맞서기 위해 상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정현이 평생 몰두해온 일이었다.
45p.
세컨드 윈드
요약: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
제 2차 정상상태라고도 한다. 운동 초반에는 호흡곤란, 가슴 통증, 두통 등 고통으로 인해 운동을 중지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이 시점을 사점(dead point)이라고 한다. 이 사점이 지나면 고통이 줄어들고 호흡이 순조로우면 운동을 계속할 의욕이 생기는데, 이 상태를 세컨드 윈드라고 한다.
73p.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85p.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다는 선생님도 저를 이해하려고 애썼을 뿐이지 이해하진 못하셨잖아요.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그동안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를 ㄹ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면서 그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20p.
“글쎄. 난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해. 지금 슬퍼서 우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모든 걸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야기 덕분에 만물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어. 하지만 난 비관주의자야.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비관주의가 도움이 돼. 비관적이지 않으면 굳이 그걸 이야기로 남길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야. 이걸 다 우리가 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어. 그게 나의 믿음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거승ㄹ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 그건 그 책을 읽기 전부터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였어.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책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그분들은 왜 그렇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할까?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이유가 뭔데?”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181p.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켜볼 꽃잎이 많이 남아 있다. 나는 그 꽃잎 하나하나를 벌써부터 기억하고 있다는 걸 네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 뿐.”
187p.
애써.
사전에는 ‘몸과 마음이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무엇도 이룰 것이 없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다하지 않는 사이.
196p.
“언제나 마음이 유죄지.”
영원한 여름이란 환상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창 사랑할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마음이 점점 길어졌다. 실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말하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 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209p.
내 안에는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들, 아무런 쓸모도 없는 말들이 가득하네요. 끝내 부치지 못할 이 편지에 적힌 단어들처럼. 그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말은, 그때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던,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게된 그말, 한 때 나를 사랑했던 너에게는 말할 수 있었으나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는 말할 수 없는 그 말,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나를 사랑했던 너에게, 그리고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
부디 잘 지내고, 잘 지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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