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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트위터 (그 애매한 마음들이 남겨놓는 넉넉한 거리가 좋아서)의 표지 이미지

아무튼, 트위터

정유민 지음
코난북스 펴냄

몇 번째인지 까먹은 아무튼 시리즈. 2009-12년쯤 한창 트위터 열심히 하다가 스르르 관심사가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갔었다. 왠지 모를 마이너스러움과 드립력에 밀려 똑 하고 떨어져나온 느낌도 조금은 들었다. 친했던 트친들이 페북으로 옮겨가며 타임라인이 심심해진 것도 컸다. 한때 잠깐 불처럼 즐겼던 썸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그래서 사실 아무튼 시리즈 중에 장바구니에 담아지지 않던 책 중 하나였다. 아무튼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듣던 아무튼 팟캐스트의 진행자 ‘오라질년’님이 이 책의 저자라는 것도 알았다. 알았지만 크게 관심은 생기지 않았다. 그저 저자의 말투와 목소리가 막내 시언니와 비슷하다는 생각만 했다. 진짜 소름 돋을 만큼 닮았다. 남편은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러다 하루는 오랜만에 트위터에 들어가 봤다. 뉴스 트위터나 봇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가 기억하는 네임드 트위터리안들은 조용해졌지만, 유독 한 명이 남아있었다. 한복을 입은 사람이 팔꿈치로 소주병을 치는 등의 짤로 유명한 자유부인 짤을 프로필에 해뒀던 트위터리안이었다. 오 오랜만이다~ 싶어서 프로필을 눌러 들어가 봤더니 웬걸, 계정 프로필 바이오에 ‘[아무튼, 트위터]를 썼습니다’라고 적혀있는 게 아닌가? 실제로 2011년인가 2012년쯤부터 재밌어서 팔로해놓고 보던 사람인데!! 그때부터 모든 게 짜 맞춰졌다. 아 그 자유부인 짤에 오라질년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아 그래서 팟캐스트 진행자 명칭이 오라질년이었구나! 아 세상에! 세상에!! 너무 신기해서 바로 그 순간에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때부터 열심히 트위터를 하시더니 결국 책까지 내셨다. 이야.. 역시 한 가지에 푹 빠지고 볼 일이다. 나처럼 유행에 민감하네 어쩌네 하며 이것저것 건드리는 사람으로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저 먼 정거장이다. 책 내용도 약간 트위터답게 정신이 없다. 이미 몇 번 작가님의 팟캐스트를 들어서 그런지 딱 본인 스타일이 드러나게끔 집필했다는 생각이 든다. 뭐라 할까, 조잡한 듯하면서 강력한 한두 방이라고 해야 하나? 이 모든 내용이 트윗 몇 개면 되레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는데, 책으로 쓰려고 열심히 늘린 느낌이었다. 얼마 전 페이스트리 과자를 만들었는데, 페이스트리를 만들려면 냉동고에 반죽을 휴지시켰다가 밀대로 몇 번이고 밀고 접고 밀고 접고를 반복해야 한다. 이미 땅땅하게 얼어버린 완고한 반죽놈을 얇게 밀어야 해서 땀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아니 얼리래놓고 왜 또 밀라는 거야 짜증 나게~라고 생각했었는데 만들어놓고 보니 그 모든 과정이 잊힐 만큼 만족스러웠다. (맞다. 엄마손파이 만들었다) 약간 그 느낌이다. 짧았어도 될 말을 구태여 늘려 말한 듯하지만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시리즈는, 내 기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취미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적었을 때 더 재밌다. 술과 양말처럼. 그게 아니라 집필한 주제와 관련된 분야에서 돈을 벌어 먹고사는 전문가라면 아무래도 재미보다는 전문성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요가와 서재처럼. 트위터는 조금 애매모호하다. 사실 살짝 배신감이 드는 부분도 있다. 트위터를 한창 할 때 나도 남들처럼 재밌는 드립을 치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드립가들이 전부 작가나 기자나 카피라이터처럼 글을 쓰는 전문가들이었단 말이야?? 와 배신감. 그러니 내가 끼지를 못하지! 라기엔 그저 그만큼 능력의 차이가 드러났던 것뿐이겠지만. 결국 이 책의 저자도 기자였고, 글쓰기의 달인이었고, 트위터까지 잘하는 글쟁이였던 것이다! ~책에 전문성이 가미되었습니다~

책에서 말하듯이 확실히 트위터는 온라인에서 혼잣말하는 느낌이다. 난 실친 몇 명과도 같이 했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솔직한 혼잣말보다는 드립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오랜만에 들어가 보니 확실히 트친도 실친도 많이 떠난 상태여서 조금은 마음 편하게 혼잣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몇 개 트윗을 올려봤다. 다시 매일같이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가끔 혼자 뻘짓하고 싶을 때면 트윗 하나씩 툭툭 던지고 싶은 마음은 크다. 그러니 트잉여가 아니어도 이 마음은 작가님과 동일하다. 항상 거기 있어 줘, 트위터야 아프지 마.

“공을 물고 달려와 던져달라는 시늉을 하면서도 정작 가져가진 말라며 공을 입에서 놓지 않는 개를 닮은 마음들이 가득한 곳.”
2019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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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5nme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을 읽으면 신비로운 감정에 휘말린다. 어딘가엔 있을 법한, 주변에 있을 법한, 혹은 나일 수도 있을 법한 한 사람의 마음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데비 챙, 숲의 끝, 저녁 산책, 호시절이 특히나 좋았다. 의도치 않은 오해, 사랑과 우정의 그 비슷하고도 애매한 감정, 자연스러움 속 의문을 품게 만드는 불편함 등이 너무 잘 표현되어 있다.

애쓰지 않아도

최은영 (지은이), 김세희 (그림)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22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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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나님의 It Ends with Us 게시물 이미지
표지 속 파란 백합꽃 그림에 이끌렸다. 매일 한 권씩 공개한 시리즈물이라 짧게 짧게 27권까지나 있다고 하니, 가볍게 하루에 한두 권씩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렇게 네 시간 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고 심지어 우느라 막힌 코훌쩍이는 소리에 아기가 깨진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로맨스인 줄 알았다. 인터넷 로맨스 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이미 처음부터 상당히 재밌었고, 5권쯤 읽어갈 땐 너무 로맨틱 자극적이라 이 소설에 심취해 읽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읽는 내내 제목이 신경 쓰였다. It Ends With Us의 Us는 화자 릴리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아무래도 아틀라스일까? 이 사랑 이야기의 끝은 누구와 함께하는 걸로 끝날까? 그런데 왜 한국어 제목은 ‘우리가 끝이야’일까? 우리가? 우리로? 한 권 한 권 넘어갈 때마다 궁금했는데, 26권 마지막이나 되어서야 알았다. 로맨스의 끝을 뜻하는 게 아니었구나.



가정폭력을 당하고도 상대방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몰랐다. 나도 주인공 릴리처럼, 피해자들이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줄 몰라서 안 떠나는 거라고 생각해왔나보다. 그런데 이 책이 나를 완전히 납득시켰다. 폭력가정에서 자란 릴리가 또 자신의 가정 속에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도 나는 이 소설이 끝나기 직전까지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27권 중 26권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주인공이 딸에게 하는 말 ‘이 가정폭력의 대물림은 우리에서 끝내는 거야’에서 나온 It Ends With Us라는 걸 알았다.



제법이다. 나도 라일에게 꿈뻑 속아 넘어갔다. 아버지 장례식날 속이 답답해 올라간 고층 건물 옥상이라는 인소에나 나올법한 첫 만남, 갑자기 뚝딱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열었더니 대뜸 성격 좋고 예쁘고 착한 밀리어네어가 심심해서 일하겠다고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남주의 여동생이고, 남주는 큰 병원 의사에, 진지한 만남 싫어파인데 여주를 만나고서 사랑을 알게 되고, 어쩌다 여주에게 해를 가하지만 알고 보니 또 엄청난 일을 겪어서 트라우마로 인해 발현되는 행동이었다니 나 같아도 두 번 세 번 용서하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약자 폭행에 있어 이유가 되어줄 순 없다. 라일이 아무리 화나도 마동석 앞에서 퓨즈가 나가진 않을 것 아닌가? 감히 릴리를 힘으로 밀치고 이마를 꼬매야 할 만큼 세게 박치기를 하다니 빌어먹을 자식.



작가는 본인이 자라온 가정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와서 이야기를 적었다고 한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가정폭력을 당해온 피해자들을 위한 글을 적고 싶었다고. 다른 건 몰라도 피해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확실히 되었다.



찾아보니 올해 곧 아틀라스를 중점으로 한 소설 It Starts With Us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이건 확실히 로맨스 소설이겠다고 생각하는 건 또 나의 착각이려나. 아틀라스 너무 완벽한 캐릭터라 세상 제일로 오글거릴 것 같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다. 이왕이면 원서로.





“이 세상에 나쁜 사람 같은 건 없어요. 우리 모두 가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냥 헤엄치는 거야. 그냥 계속 헤엄쳐, 계속, 계속.”



나는 딸의 이마에 입 맞추고 약속했다. “여기에서 멈춰야 해. 나랑 네가 끝내는 거야. 우리가 끝내야 해.” - <우리가 끝이야> 중에서

It Ends with Us

콜린 후버 (지은이) 지음
Thorndike Press Large Print 펴냄

👍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추천!
2022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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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anna5nme

  • 안나님의 작별인사 게시물 이미지
김영하가 9년만에 내는 장편소설이 풀린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기대했다. 공개되는 날 바로 읽고 싶어서 읽던 책을 서둘러 후다닥 읽어버렸을 정도. 일부러 책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첫 장을 읽고나서도 이게 어떤 내용으로 흘러가게 될지 짐작도 못 했다.

얼마전 읽었던 김동식의 ‘아웃팅’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대신 훨씬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이고 잔잔하고 길게 풀어진 느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이 사라지자 끝내 인공지능도 사라지게 되는 내용이다.

나는 sci-fi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를 떠올렸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가 바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아일랜드’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바깥 세상이 오염되어 환상의 섬으로 가기 전의 격리시설에 발탁되어 온 선택된 사람들이라 믿고 지냈지만 알고보니 복제인간을 보관하는 시설이었다는 것. 이곳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간다는 건, 복제인간의 주인이 장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소설 ‘작별인사’ 속 선이가 스칼렛요한슨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평양 스칼렛 요한슨.

스토리 전개보다는 이 책에 몇 번이고 언급되는 오즈의 마법사와 빨간머리 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신선하지 않은 내용에 신선한 결말이어서일까, 흥미롭게 읽었다. 신기할 정도로 혼자 잘 놀아준 아기를 앞에 두고 읽어서 더 재밌었을수도.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작별인사

김영하 (지은이) 지음
복복서가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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