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fahr님의 프로필 이미지

kafahr

@kafahr

+ 팔로우
정지용전집 1 (시)의 표지 이미지

정지용전집 1

정지용 지음
민음사 펴냄

당신은 내 맘에 꼭 맞는이.
잘난 남보다 조그만치만
어리둥절 어리석은척
옛사람 처럼 사람좋게 웃어좀 보시요.
이리좀 돌고 저리좀 돌아 보시요.
코 쥐고 뺑뺑이 치다 절한번만 합쇼.

호. 호. 호. 호. 내맘에 꼭 맞는이.

큰말 타신 당신이
쌍무지개 홍예문 틀어세운 벌로
내달리시면

나는 산날맹이 잔디밭에 앉어
기(口令)를 부르지요.

「앞으로 — 가. 요.」
「뒤로 — 가. 요.」

키는 후리후리. 어깨는 산ㅅ고개 같어요.
호. 호. 호. 호. 내맘에 맞는이

- ‘내 맘에 맞는 이’,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鄕愁’, 정지용



할머니
무엇이 그리 슬어 우십나?
울며 울며
鹿兒島로 간다.

해여진 왜포 수건에
눈물이 함촉,
영! 눈에 어른거려
기대도 기대도
내 잠못들겠소.

내도 이가 아퍼서
故鄕 찾어 가오.

배추꽃 노란 四月바람을
汽車는 간다고
악 물며 악물며 달린다.

- ‘汽車’, 정지용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 섰거니 하야
꼬리 치날리여 세우고,

죵죵 다리 깟칠한
山새 걸음거리.

여울 지여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듯
새삼 돋는 비ㅅ낯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

- ‘비’, 정지용



그리워 그리워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어디러뇨
동녘에 피어있는 들국화 웃어주는데
마음은 어디고 붙일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보노라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옛 추억
가슴아픈 그 추억 더듬지 말자
내 가슴엔 그리움이 있고
나의 웃음도 년륜에 사라졌나니
내 그것만 가지고 가노라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 찿아와도 고향은 없어
진종일 진종일 언덕길 헤메다 가네

- ‘그리워’, 정지용
2020년 1월 24일
0

kafahr님의 다른 게시물

kafahr님의 프로필 이미지

kafahr

@kafahr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1 Corinthians 13


말은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찬미할 수만 있을 뿐 재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느꼈다.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p. 285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지음
열린책들 펴냄

읽고있어요
2023년 6월 12일
0
kafahr님의 프로필 이미지

kafahr

@kafahr

인간은 모두 이렇게 은밀한 일을 벌이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래서 갑자기 죽어 버리면 그런 비밀이 전부 까발려져 마치 살아있던 것 자체가 커다란 음모였던 양 보이게 되는 걸까. - ‘음모’ - p. 171

인내상자

미야베 미유키 지음
북스피어 펴냄

2023년 6월 7일
0
kafahr님의 프로필 이미지

kafahr

@kafahr

프랜은 단지 말들을 떠돌게 하고 싶었다. 대단한 예술 작품, 베스트셀러, 히트작, 영원불멸의 클래식 따위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생각, 아이디어, 논평, 꿈, 일상, 작은 이야기, 소소한 논쟁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슬프게 스치고 사라졌으면 했다. - p. 71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선 약속과 의무라는 규약 너머의 행동이 필요하다. 이것을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폭력과 파괴, 선택과 충돌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을 극복할 수 있을까. - p. 115

…스크롤!

정지돈 (지은이) 지음
민음사 펴냄

2023년 6월 2일
0

kafahr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