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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락된 도시의 여자
익명의 여인 지음
마티 펴냄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억/작자 미상
2차 세계 대전이 끝을 향해가던 1945년 봄, ‘여자만 남은 도시’가 된 베를린에서 한 여자가 이때 발생했던 생생한 기억을 일기로 남기며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이야기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상에 치우지 않고 건조한 말투로 하루하루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익명의 이 여성은 폭격으로 집을 잃고 동베를린에 있는 지인의 다락방으로 온 후부터 이 일기를 쓰기 시작됩니다.
그녀의 정보라곤 러시아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것뿐 이 책의 어디에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녀는 러시아군의 곁을 맴돌면서 러시아 병사에게 사랑의 고백도 받고 러시아 통역 일도 맡으며 가혹한 시간들을 견뎌내면서 지냅니다.
약탈하고 강간하는 러시아 병사의 모습과 폭격, 경보, 강제 노역, 강간, 날씨 등 모든 기억나는 것들을 일기에 기록하고 적어나갑니다. 이 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여성과 베를린을 점령했던 러시아 군인들입니다.
이 일기에는 전쟁 내내 러시아군에 의한 독일 여성들의 강간 당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70세 노파가 능욕을 당하고 수녀가 24회나 되는 강간을 당하는 등 연합군에 의한 독일인 집단 강간 학살의 참상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기를 쓴 날 만큼 강간도 계속된다'
작가는 공포와 두려움의 기억을 넘어서 반복되고 지속되는 이런 행위들에서 점점 무감각해짐을 느낍니다.
'감각이 없는 인형이 된 나,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쳐지고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
'지금 내가 이토록 비참해진 것은 그 짓 때문이 아니다. 내 의지에 반해 내 몸이 능욕당하고 있는데도 살기 위해 묵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현실 속에서는 누구나 피해자가 되고 참혹함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세계 2차대전 가해자는 독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히려 독일인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쓴 책이므로 이 책이 출판될 때 문제가 될 수 있었기에 저자도 작자 미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전쟁에서는 모든 사람이 피해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침략국 독일이 차마 꺼내놓을 수 없었던 아픔을 딛고 세상에 나온 한 여성의 회고록이며 전쟁 참상의 비극을 알리는 기록물로 가치를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 시절 위안부로 수많은 여성들이 무참히 짓밟힌 것처럼 강간은 전쟁 중에 일어나는 대표적인 잔악 행위이며 민간인을 상대로 하는 국가적 폭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전쟁이라 하더라도 여성의 신체는 국가가 속박할 수 없고 침범되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 아픈 문구가 있습니다. 여자들끼리 하루의 대화를 나누면서 하는 첫 마디가
'당신은 몇 번이나?'
자신의 몸이 전쟁터가 되어야 했던 전쟁 속의 여성들, 그 시대의 증인으로 오늘날까지 살아왔던 건 한마디 사과였을 그 한마디 들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스러운 외침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따뜻한 남쪽나라 통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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