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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조종하는 언어시스템을 익힌 달변가들이 나온다. 이들은 스스로를 '시인'이라 부른다. 언어라는것은 누군가를 살게도 죽게도 만드니 잘 생각해보면 실제로 마법같은 것이다. 이 마법같은것을 더욱 마법스럽게 꾸며냈다.
처음엔 성인용 해리포터 같다고 느꼈다. 잘 짜여진 세계관과 비밀스러운 조직의 특별한 능력. 좀 더 많이 죽고, 좀 더 야하고, 좀 더 현실적인 세계관이 다를 뿐이다. 나는 피자와 치킨처럼 맛을 위한 책도 좋아하므로 이야 재밌다를 연발하며 보았다.
그러다 작가가 끼워놓은 묵직한 메시지를 만났다. 우리가 이미 맞이한 빅브라더 사회를 말하고 있었다.
초등학교때 미래의 모습을 그리라고 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 해저도시, 우주복 입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인터넷에 남긴 내 개인정보로 날 파악해서 조종하려 드는 세상은 떠올리지 못했다.
'대지의 슬픔'을 먼저 읽은 덕분에 이해가 좀 더 깊었다. 대지의 슬픔이 스펙터클의 개념서라면 렉시콘은 스펙터클의 응용서다. 대지의 슬픔은 스펙터클의 피동, 렉시콘은 스펙터클의 사동이다.
스펙터클은 마침내 인터넷으로 진화했다. 이제 우리를 현혹하는 스펙터클이 공기처럼 존재하는 세상속에 산다. 나를 속속들이 파악한 정보를 이용해서 달콤하게 나를 이끈다.
내 삶이 누군가가 조종하는대로 이끌려간다면 그건 정말 나 자신의 삶일까? 내가 원한것이 모두 진짜 내가 원한것일까? 주의를 기울여도 피할수 없게 된 세상속에서 어떻게 할것인지 묻는다.
깊은 사랑과 같은 범지구적이고 근원적인 인간본능은 강력해서 주인공들처럼 조종의 손길을 이겨낼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을 조종하고 싶어하는 세력은 근면하다. 로웰이라는 시인의 보고서는 인간본능마저 조종 가능한 세상을 원한다.
이 책은 대중적인 포장 안에 담긴 내용물에 가치가 있다. 판타지로만 본다면 끝이 싱거운 소설이다.
예스24의 페이백 이벤트로 대지의 슬픔과 렉시콘 두권이 나란히 있었기에 나란히 구매했고 나란히 읽었다. 의도적으로 함께 내놓은거라면 따봉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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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콘 中
“사이트가 사람마다 다르게 보인다는 거예요. 가령 당신이 세금 감면에 찬성하는 쪽을 클릭했다고 해봐요. 그러면 이제 당신 컴퓨터에 쿠키가 남고, 그 사이트에 다시 접속하게 되면 정부가 당신 돈을 어떻게 낭비하는가에 대한 기사들이 뜨죠. 그 사이트는 당신이 원하는 것에 기반해 역동적으로 내용을 고르는 거예요. 아니, 당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화나게 할 것에 기반해서요. 당신의 주의를 끌고, 믿음을 강화하고, 사이트를 신뢰하게 할 내용들을 보여 주는 거죠. 만약 세금 감면에 반대하는 쪽을 클릭하면, 공화당이 복지 정책들에 반대한다거나 하는 그런 글을 보여 주는 거예요. 어느 쪽이든 간에 먹혀 들어가죠. 당신 사이트는 거울이고, 각자의 생각을 다시 비춰 주는 거예요. 꽤 멋지지 않아요?
(...)
사람들이 이런 사이트에 접속하면 점차 그 의존도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돌연 사용자의 주요 신념에 맞춰 기사를 내지 않는 다른 모든 뉴스원들이 이 사용자에겐 혼란스럽고 낯설게 보이기 시작하죠. 그런 뉴스들은 사실 편파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해요. 웃기는 일이에요. 이제 당신은 당신을 신뢰할 뿐 아니라 당신을 이 세상의 주요 소식통으로 여기는 사람을 얻게 되는 거죠. 짠! 이제 그 사람은 당신 거예요. 당신은 그 사람에게 뭐든 원하는 걸 말하고, 누구도 당신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
앨리엇. 이게 미래라고요. 모두들 자신에 대한 웹 페이지를 만들고 있어요. 몇 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여론 조사에 클릭하고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TV쇼, 제품, 정치 성향을 날마다 입력하는 걸 상상해 봐요. 그건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큰 데이터 집합이 될 거예요. 그리고 자발적인 거고요. 그게 재밌는 부분이죠. 사람들은 인구 조사에 저항하지만 자신을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모든 것을 밝히죠. 그리고 자신들이 누구인가를 말하기 위해 하루 종일을 써요. 그건 좋은 거죠. 우리들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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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에 빠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랜드포크스에서 총을 쏜 사람 이야기 읽었어? 사람들 말이, 그 사람은 여자 친구와 싸웠다더군.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아, 그래서 그렇게 회까닥 한 거로군>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거기에 연관성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도 없었어. 그자들은 그냥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한 거야. 그렇지 않다면 뭐 하러 그 사실을 언급했겠어?
이 사건에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이런 경우를 <늘상> 봐. 가령 TV뉴스를 보면 모든 소식이 이런 식이야. <화재가 발생했고, 건물주에게는 경제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건물주가 자기 건물에 불을 질렀다고 말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 뉴스가 말하는 건 딱 그거야.
난 그게 맘에 걸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똑똑하며 여러 조각을 하나로 맞출 수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건 미리 짜인 판이거든. 우리는 한 방향으로만 맞아들어가는 조각들을 받고, 이 조각들로 만든 큰 그림이 결국엔 잘못된 거였다고 밝혀져도, 조각들을 준 쪽에선 애초에 그 그림이 옳았다고 말한 적이 없어.
전국적 규모의 이야기처럼 큰 사건이 아닌 이상, 모든 기사는 경찰들이 말하는 걸 받아 적은 기자 한 명으로부터 나와. 그게 AP 통신으로 가고, 모든 뉴스 제공자들이 그 기사를 공유하지. 그래서 마치 모든 제공자가 각자 조사를 해서 같은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개는 모두가 한 가지 정보원에게서 얻은 내용을 그대로 읊는 것뿐이야.
아마도 그랜드포크스의 그 남자는 여자 친구 때문에 정말 화가 났었던 게 맞을거야. 하지만 그게 그 남자가 총을 쏜 이유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만약 그게 수수께끼라고 말했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호기심이 일어 질문을 했겠지만, 입증되지 않은 한 가지 힌트만 흘렸을 뿐인데도 우리는 만족하고 있어. 그 이유를 알아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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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알았어. 이런 식이야. 거리에서 캠페인을 해 개별 방문을 하고. 노크를 하기 전에 서류를 보면 이런 식으로 적혀 있어. '마슬로프, 21세, 남자, 내년에 직장을 구할 수 있는지가 최대 관심사임.' 그래서 나는 노크를 하고 말하지. '안녕하세요, 마슬로프 씨. 저는 선거에 출마했고 제 주요 관심사는 일자리 창출입니다.'
<마슬로프> 그렇군.
<빅토르> 그러면 넌 생각하지 '우와, 이 친구가 진짜네. 이 친구를 찍어야지.' 그리고 다음 집에 가면 이번에는 이렇게 말해. '안녕하세요, 키티펜드래곤 양. 저는 선거에 출마했고 제 주요 관심사는 기후 변화와 싸우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 서류에 그게 키티펜드래곤의 관심사라고 적혀 있거든.
<마슬로프> 하지만 그건 좋은 거잖아.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지. 원하는 것도.
<빅토르> 흠, 내가 뽑혔다고 생각해 보자. 내 최고 관심사는 뭘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마슬로프> 알아. 하지만 최소한 사람들 말을 듣기는 하잖아.
<빅토르> 그건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거라고. 후보자들은 자신의 입장이 뭔지 밝혀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거잖아. 문제가 뭔지 모르겠어?
<마슬로프> 응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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