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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

오수영 지음
별빛들 펴냄

거리를 걷다 우연히 들른 독립서점에서 여러 책들 중 작가의 감성과 표현이 마음에 들어 집어든 책이다.
작가의 섬세한 표현 속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깨달음이 깊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작품 속 발췌-

사랑하는 사람들의 우산 속에는 거리가 없다.

언젠가 비가 데려오는 냄새를 좋아한다고 쓴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빗물을 머금고 올라오는' 흙냄새를 좋아한다고, 그녀가 내게 해준 말이었다. 세상에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구나, 라고 마음에 메모를 남긴 날이었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계절마다 비는 내렸고, 여전히 이곳에서 거리를 내려다본다. 비는 세상을 슬로우 모션처럼 만드는 것인지, 바쁜 세상이 비를 가져서 여유를 되찾은 건지. 가끔은 이 높은 곳까지 '빗물을 머금은 흙냄새'가 전해지기도 한다.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 말하던 사람도 있었고, 나는 조금 더 비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꽃향기에 취해있을 때 방심이 날아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남들보다 가깝게 밀착되어 있다는 믿음이, 서로에게 노력을 조금 덜 해도 된다는 오만이 되었다.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계절은 없다...사람의 마음이 바람의 방향이나 속도에 관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계절에 불어오는 바람도 금세 흘러갈 흐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초연함이, 사람을 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한다.

변화는 설렘이자 두려움이지만, 반복되는 변화는 감각을 무뎌지게 한다. 사실 계절이 바뀌는 것만큼 거대하고 신비로운 일도 없는데, 나는 창문 한번 닫는 일로 무심하게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대수로운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심코 스쳐보내기에는 너무나 세심한 변화들로 가득한 환절기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처럼 세심한 마음으로, 상대방이 이 선물을 받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그렇게 단어를 고르고, 말투를 골라서, 정성껏 건넨다면, 우리의 말에서 향기로운 꽃이 만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풍수지리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가구배치는 현실이잖아요. 눈에 보이는 믿음을 따르려 당장의 현실을 희생하는 것도 좀 그렇구요.

우리는 낯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녹초가 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심함을 베풀며 위안을 삼는다.
👍 고민이 있을 때 추천!
2020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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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마음가짐이 어느새 흐지부지 해졌는데, 이렇게나 부지런히 사는 사람을 보니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김유진 지음
토네이도 펴냄

👍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추천!
2022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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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이지만 읽는 데 시간이 꽤나 오래걸렸다.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글이 나를 생각하게 만들고, 정성스러운 문장 하나하나를 서두르게 넘어가고 싶지 않아서다. 글을 쓰면서 작가는 얼마나 무수한 생각과 고민을 지나쳤을까 생각이 든다.

11 (31p) 성당이라는 건축물이 갖는 특유의 포용력과 질량감을 좋아하고 가끔 그리워한다. 허공을 찌르는 첨탑의 모양을 보고 있으면 조용히 마음이 차오른다. (중락) 내가 믿어본 적 없는 믿음의 존재를 감각하고자 애쓰며 주변을 맴돌다 보니 어쩌면 이곳이서는 아무도 쉽게 무너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5 (39p) 우리는 책장을 한 장씩 넘기듯이 순간을, 매일을 포갠다.

20 (49p) 기록은 스러져 가는 마음을 되살리는 일이다. 순간의 물결을 고이 간직하는 일이다.

21 (50p) 당신과 나를 비롯한 모두는 대답 없는 3자다.

48 (94p) 낡은 책을 펼치면 책 냄새부터 맡는다. (중략)...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행취가 깊숙이 배어있다. 마치 시간의 연기에 종이가 훈연된 것처럼.

너는 불투명한 문

최유수 지음
별빛들 펴냄

👍 고민이 있을 때 추천!
2022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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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과 실패를 따뜻하게 안은 소설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25p 나는 삶의 어느 모서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어쩌면 그런 감정의 분화는 오직 생장의 시절에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157p 나는 저 몸에 무엇이 찾아들면 강선이 되나, 하고 생각했다. 창호를 바른 문으로 어느 순간 들어선 빛에 아침이 시작되듯, 찬 공기에 콧속이 열리고 창공이 높아지면 불현듯 여름이 종료되듯 사람에게도 그가 사람이게 하는 시작점이 있을까.
172p 어디에서 왔는지고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 시절을 통과했다는 것. 그렇게 좌절을 좌절로 얘기할 수 있고 더이상 부인하지 않게 돠는 것이 우리에게는 성장이었다.

<깊이와 기울기> 248p "여기 사는 거 쉽지 않죠?" "서울에서 사는 건 어때요?" "쉽지 않죠." "그러는데 뭘요."

<초아> 305p 초아와 엄마와 함께 도로를 달리던 밤의 시간들은 이후에도 무언가를 기념하들 선연히 눈앞에 떠올랐다. 정말 호랑이를 맞닥뜨려본 사람처럼 엄마는 무거운 피로감에 취해 깊고 깊게 잠이 들고 초라는 무심하게 창에 기재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는 시간들이. 인터체인지들은 내비게이션이 아니라면 길을 잃을 것처럼 복잡하게 얽혔고, 그 순간 나는 만월의 여름밤을 달려 여전히 상경 중이었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은이) 지음
창비 펴냄

👍 힐링이 필요할 때 추천!
2022년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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