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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세계문학전집 150)의 표지 이미지

제5도살장

커트 보니것 지음
문학동네 펴냄

상략.

주인공 빌리 필그램은 '인간' 입장에서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이다. 트랄파마도어의 존재와 접촉한 빌리는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4차원 세계에서는 시간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는 죽는 순간과 태어나는 순간, 환희에 찬 순간과 절망스러운 순간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지만, 책을 읽은 후 내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는 아니다. 인간의 성이 일곱 가지이며, 인간의 모습이 실은 한쪽 끝에 아기 다리가, 한쪽 끝에 노인의 다리가 놓은 노래기 모양이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나.

그래서 또는 그렇게, 빌리는 '시간 여행'을 한다. 유쾌한 일이 아닌 이유는 그 여행이 자신의 의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년의 빌리가 밤에 일어나 잠시 화장실에 가면 청년기의 전쟁터에서 눈을 뜨고, 수용소의 추위에 떨다 잠이 들면 곧 추락할 비행기 안에서 깨어나고, 또 언젠가는 수백만 광년 떨어진 외계의 동물원에서 깨어나는 등. 그는 항상 존재하는 존재로서, 삶이라는 과정을 통째로 살아간다. 뭐, 그런 거지.

소설은 보니것의 개인사에 입각하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포로생활과 드레스덴 폭격 전후 상황에 꽤 많은 비중을 두었다. 세계대전에서 민간인에게 이루어진 가장 큰 참사 중 하나인 드레스덴을 그려내기에는, 빌리가 너무 저 너머의 인간이라 그 참담함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 전쟁을 표현하는 신선한 시도로 생각해야 할지, 무던하기 위해 노력한 오만 또는 오해의 시선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본인의 문체를 변화한 보니것의 명석한 기획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하략.
👍 인생이 재미 없을 때 추천!
2020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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