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곳, 책이당
동네책방 ㅣ 책이는당나귀
코로나 19가 길어진 요즘은 오랜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찾기 시작했다.
이럴 때 책은 우리를 새로운 곳으로 보내주기도 하고 색다른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책들이 가득한 책방이 동네에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오래된 골목길 사이 작은 책방이 위치해있다. 1층 벽을 가로지르는 큰 창의 책방은 책을 읽고자 하는 이들을 편히 반겨준다.
창문너머로도 언뜻 비치는 짙은 녹색이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확 다가온다. 청록 빛깔의 벽과 붉은 갈색의 책장, 이국적인 소품, 따스한 조명이 어우러져 바깥 분위기와는 색다른 반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있는듯 없는듯 그 자리를 지키는 책방지기님이 있어 더욱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맴도는 책방이다.
"책이는당나귀는 서울 봉천동에 있는 작은 동네서점입니다. 너무 작아서 문 열고 들어온 손님이 깜짝 놀라곤 하죠.
운영자는 여행작가인 ‘골방’이와 도서관 사서인 ‘쫄보’입니다. 맞아요. 둘이 부부예요. 도서관에 출근하는 쫄보는 기획부장 역할을 맡고,
골방이는 책방에 앉아 실제 업무를 처리합니다. 언뜻 골방이가 책방 주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궂은 일을 도맡은 머슴이랍니다.
기획부장인 쫄보는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니 제가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곤 해요. 손님에게 책을 추천한다는 건 매우 까다로운 일이거든요.
모든 장르의 책을 고루 파악하기도 힘들고요. 그런데 사서가 옆에 떡 하니 버티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지요."
-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 골방이님
대형 서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곳이 아주 작게 느껴 질 수 있으나, 책방을 많이 다녀본 에디터에게는 책방이 작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넓은 책상과 한 벽을 가득 채운 책들 그리고 삼삼오오 앉을 수 있는 공간까지 아주 알차게 구성되어있다.
공간을 채우는 이국적인 소품들 뿐만 아니라 곳곳에 있는 책을 지고 있는 당나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책방 이름과 함께 쓰이는 로고 같은데 그 나름대로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남미의 콜롬비아에는 스페인어로 ‘biblioburro’, 한국말로 ‘당나귀도서관’이란 것이 있어요. 콜롬비아는 안데스산맥에 자리한 나라여서 교통이 불편해요. 아이들이 책을 접할 서점이나 도서관도 매우 적고요.
그래서 사서선생님이 당나귀에 책을 싣고 산골마을 아이들을 찾아갑니다. 책에 목마른 아이들에게 지식의 샘물을 전달하는 셈이죠.
쫄보가 이 일화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서점 이름을 ‘책이는당나귀’로 지었어요. ‘문화적 혜택이 부족한 동네에 책을 배달하는 역할을 맡겠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책이는당나귀라는 이름이 좀 생소해요. 자꾸 ‘책 읽는’ 아니냐고 묻는 분도 계시고요. 그래서 동네 지인이 ‘책.이.당.’으로 줄여 부르면 어떻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짧고 귀여운 어감이라 모두 좋아했죠.
제가 여기에 한자로 ‘册以黨’이란 뜻을 붙여 봤어요. 풀이하면 ‘책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란 의미입니다.
포인트는 집당(堂)이 아니라 무리당(黨) 자를 쓴 점이에요.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을 넘어서 ‘책을 매개로 사람과 소통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 골방이님
책을 이고 있는 당나귀 그림 아래에 숨겨진 책방지기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다. 책을 이고 가서 함께 책 읽는 기쁨과 유익을 나누는 일이 참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책방이 있는 이곳은 서울 관악구에서 조금 변두리에 위치해 있고, 대부분의 동네책방은 서울대입구역에 몰려 있어서 이곳 주민들에게는 책방이 오직 이곳 한 곳이었다.
책방의 취지와 맞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지기님이 이곳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가 궁금했다.
"봉천동은 골방이에게 고향 같은 곳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이 동네를 들고나며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제가 사랑하는 동네에 편하게 들러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서점을 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여행전문서점을 열까 생각했어요. 제가 여행작가 생활을 하며 책도 몇 권 냈으니까요.
하지만 책방을 이용할 손님들의 니즈를 고려해야겠죠? 이 지역은 평범한 주택가라서 여행 같은 특정 장르보다는 소소하게 읽을 다양한 책을 찾는 편이죠.
그래서 서점 오픈할 때 서가의 반은 제가 추천하는 책으로 채우고 나머지는 비워 두었어요. 동네주민들이 즐겨 찾거나 추천하는 책으로 채우려고요.
책방은 주인 혼자 만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채워가는 곳이어야 하니까요."
-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 골방이님
대화를 나눈 짧은 시간 속에서도 책방지기님의 책과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뚝뚝 흘러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책들을, 내가 어릴 적부터 함께한 곳에서 나눈다는 것이 어느 독립영화에 나올 것 같은 따스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터 이 책방은 시작되었을까?
"쫄보는 평생 도서관 사서로 일해왔고, 골방이는 출판사에 근무하다 여행작가가 됐어요. 해외여행을 가도 서점과 도서관을 빼놓지 않고 둘러보죠. 일종의 직업병이랄까요.
아름다운 서점들을 보면서 우리만의 서점을 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어요. 하지만 서점이 워낙 장사가 안 되니까 10년이 넘도록 시작을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 재작년 여름에 갑자기 적당한 곳에 자리가 나서 그날로 결단을 내렸어요. 오랜 기다림이 있었기에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을 수 있었달까요."
-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 골방이님
"서점의 색상인 짙은 녹색과 브라운은 쫄보의 작품입니다. 외국 서점의 컬러를 따라한 건 비밀이에요!(웃음) 책은 종이로 만들고, 종이는 나무에서 왔죠.
책방을 보시면 책을 진열한 서가부터 모임용 우드슬랩까지 대부분의 집기는 나무로 만들어 졌어요.
청록색은 책과 가구의 재료인 나무를, 암적색은 나무를 키우는 흙을 상징합니다.
‘흙-나무-책’이라는 생명의 연속성을 표현해 봤습니다. 너무 거창해졌네요.(웃음)
시각적으로는 강렬한 색상 대비를 통해 일상생활에서는 못 보던 공간에 들어서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여행지에서 모은 소품이나 엽서 등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도 더하고요.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에 눈뜨는 ‘각성’의 시간을 제공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 골방이님
책이는당나귀는 단순히 책 그 자체만을 소개하는 공간만으로 책방을 정의하지 않았다.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책이 우리에게 ‘각성’의 시간을 전해준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었다. 무엇을 보든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관계와 본질을 살피는 책방지기님이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모일까?
"작년 11월 15일이 서점 오픈 1주년이었어요. 결산을 해보니 나름 다양한 모임을 열었더군요.
온-오프라인 독서모임인 ‘달책’, 초보 글쓰기 모임인 ‘머든지 글쓰기’,
온라인 독서인증 프로그램인 ‘읽기 전에 잠들면 안 돼 클럽’,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머든지 드로잉’, 독서 편식을 고치기 위한 ‘굿바이 편독’ 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어요.
동네에 사는 작가나 예술가와 연계해 ‘시나리오 작가되기’와 ‘드로잉 작가되기’와 같은 수업도 열고, 주변 공방과 손잡고 ‘남미 복돼지 도자기 워크숍’ 같은 원데이 클래스도 열곤 합니다."
-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 골방이님
책을 좋아하는 부부가 만나 함께 꿈꾸었던 책방을 열어 운영하는 모든 순간들이 빛나는 순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순간들 중 책방지기님에게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을 주는 일은 어떤 것일까?
"책이는당나귀를 통해 ‘자발적인 문화 공동체’를 만드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머든지 글쓰기’ 모임을 통해 친분을 쌓은 참가자들이 ‘신춘문예에 소설 투고하기’를 목표로 잡은 적이 있어요.
이에 모임을 ‘소설습작반’으로 전환해 8주에 걸쳐 투고할 작품을 써나갔죠.
참가자가 자발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낙오자가 없도록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가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제가 ‘책이당(册以黨)’을 통해 보고 싶었던 장면이랄까요."
-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 골방이님
책이는당나귀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같은 공간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길어진 코로나-19의 여파로 공간을 더욱 빛내 주던 모임이 쉽지 않다. 만일 코로나가 끝이 난다면 이곳에는 어떤 새로운 모임이 열릴까?
"‘여행글쓰기’ 모임이요! 제가 지금은 서점에 발이 묶여 꼼짝 못하지만 전에는 여행작가였거든요. 물론 시간이 나도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갈 상황이기도 하네요.
모두들 속으로 ‘코로나 끝나기만 해봐! 엄청 여행가 주마!’하고 이를 갈고 있잖아요?
떠나지 못했던 갈증까지 담아 여행지에서 느낀 경험을 공유하는 ‘여행글쓰기’ 모임을 열어보고 싶어요.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겠어요!"
-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 골방이님
함께 모여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책방에서는 책을 매개로 대화와 소통이 시작이 된다.
책에 대한 수많은 영감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며 더 나은 자신과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이곳 책이는당나귀는 한 벽면 가득 책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영업비밀인데… 흠흠(웃음) 사실 저는 인문과학서를 좋아합니다. 특히 종교와 과학에 관심이 많죠. 하지만 이런 책은 찾는 분이 적어요.
가벼운 에세이나 신간 소설을 주로 찾으시죠. 그래서 손님들이 자주 찾거나 추천하는 책을 중심으로 서점에 들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 고수해온 원칙이 있어요.
‘직접 살펴본 책만 소개한다.’입니다.
추천하고 싶은 책은 매일 1권씩 SNS에 소개하고, 메모지에 손글씨로 소개글을 써 책에 붙여둡니다. 좋은 책을 소개하는 게 책방 주인의 임무 아니겠어요?
제가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본 책에 대한 가장 인상깊었던 글귀가 있었어요.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저희 책방이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정의를 잘 품고 있는 문장이에요."
-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 골방이님
책은 사람이 만든 발명품 중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을 수 있고 그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뛰어넘어 오래전에 살았던 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참 가치 있는 일이다. 수많은 동네책방들은 각자의 개성과 의미를 담으며 우리 곁에 함께 있다.
다른 책방과는 다른 ‘책이는당나귀’ 다움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콜롬비아에서 책을 이고 가는 당나귀를 보면 무척 힘들어 보여요. 책이 무게가 많이 나가잖아요. 가끔은 다리 아픈 사서님도 등에 타니까 고생이 말이 아니죠.
당나귀도서관은 전적으로 작고 강인한 당나귀의 노동력으로 유지되는 셈이죠. 그런 당나귀를 본받아 ‘당나귀처럼 고집스럽게 책과 문화를 전파한다.’는 우직한 자세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서점을 오픈할 때 목표는 ‘일단 3년을 버틴다.’였습니다. 어느새 일년이 됐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라 얼떨결에 지나간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계획한 일들을 맘껏 펼치지 못해 아쉽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서점의 내실을 다지며 오래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자세로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좋은 책을 추천하면서 봉천동의 ‘문화의 발신지’가 되고자 합니다."
-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 골방이님
책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 책들이 모여있는 책방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함께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동네책방은 여행이 어려운 요즘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껏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서로 한 공간에 마주하기 어려울 때, 이곳 책이는당나귀를 통해 새로운 만남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책이는당나귀 책방지기의 책 추천>
김훈 작가님의 <흑산>입니다. 대부분의 독자가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에 주목하지만, 저는 <흑산>에서 더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작가님의 빼어난 문체로 그려낸 조선 민중들의 애환이 가슴 시리게 다가오죠.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천주교에 투신한 인물들의 고난이 펼쳐집니다. 이 책은 오래 전 다른 동네서점에서 손님 사이로 만난 ‘황소저’가 추천해준 책이라 의미가 더욱 깊군요.
책이란 이렇게 사람에서 사람으로 퍼져가는 것인가 봅니다.
책이는당나귀
위치 | 서울특별시 관악구 당곡6길 6
홈페이지 |
@check2dang
영업시간 | 월-토 12:00 - 20:00 브레이크: 16-17시
플라이북 에디터
한예지
dpwl10004@flyboo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