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5
〔 책방 셰입오브타임 〕
동네책방 ㅣ 서울 서초구
❝
양재천 산책길 끝, 작은 입구를 지나면
천천히 머무는 이들을 위한 책방이 펼쳐집니다.
아트북과 작가의 언어로 채워진 서가 사이,
느슨하게 이어지는 연결 속 셰입오브타임을 소개합니다.
책방 “셰입오브타임”을 소개해 주세요!
양재천을 따라 걷다 보면 조용히 숨은 듯 자리한 책방, ‘셰입오브타임’을 만나실 수 있어요. 간판도 크지 않고, 특별한 규칙도 없지만, 책과 함께 나란히 머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시간의 형태를 주제로 다양한 아트북과 전시, 글쓰기 프로그램 등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책방 셰입오브타임’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책방 이름은 제가 미국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던 시절 읽었던 『The Shape of Time』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원본과 복제,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거든요. 요즘은 유행에 반응하느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많은데요, 저희 책방은 좋아하는 것들의 ‘원형’을 천천히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책방이 아닌 어떤 시간을 수집하고 감각하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을 감각하는 태도라니! 이런 서점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좋아하던 동네 책방이 문을 닫았을 때의 허전함이 컸어요. 한강 작가님이 운영하던 책방 ‘오늘’이 서촌으로 이사를 간 뒤 “이런 공간이 동네에 꼭 필요하구나”라는 마음에서 출발했죠. 원래는 종이나 천을 이용한 디자인 혹은 제품들을 소개하는 브랜드로 구상하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애정하던 책방이 이사를 가며 독립서점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동네에 꼭 하나쯤은 있어야 할 ‘좋아하는 책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셰입오브타임’ 서가에는 꽂혀 있는 책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시나요?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할 말이 있는 책’에 더 손이 가는 것 같아요.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 진심이 느껴지는 책을 선호합니다. 아트북의 경우엔 제가 학부 때부터 수집해온 아티스트 모노그래프가 많은데, 그 책들을 시작으로 아트북 서가의 색이 자연스레 생겨난 것 같아요. 아트북 이외의 책들도 많은데요. 실용서 위주의 책보단, 누군가에게 연애편지를 쓰듯 쓰인 책, 혹은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한 책들을 주로 담고 있습니다.
보기 힘든 아트북까지 있는 서가라니! 공간을 만드실 땐 어떤 점을 많이 고려하셨나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책을 꼭 사지 않아도 앉아 읽을 수 있고, 위층 카페에서 커피를 가져와도 괜찮아요. 이전 행사의 흔적들도 일부러 지우지 않고 남겨두는데, 그런 것들이 셰입오브타임만의 느슨하고 의미있는 연대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지난 흔적으로 보고, 비슷한 취향의 새로운 이들이 들어오는 순환의 고리랄까요☺️
셰입오브타임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저희 행사는 대부분 오시는 분들의 느슨한 연결로 시작됐던 것 같아요. 단골 손님과의 대화, 책방에서 만난 작가님들의 인연으로 글쓰기 모임, 전시, 음악회가 열렸죠. 대표적으로 중세부터 바로크 이전까지의 음악을 당대 악기와 방식으로 재현하는 고음악 연주회, 정기적인 글쓰기 모임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느슨한 연결로 시작되는 모임들이라니! 이런 셰입오브타임을 더 재밌게 이용할 수 있는 책방지기님만의 팁이 있다면?
음.. 지하에 위치해 입구가 조금 헷갈릴 수도 있어요. 위층 카페를 통해 들어오시면 조금 더 편하게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커피를 꼭 안 사도 들어오실 수 있으니 부담 없이 편하게 들러주셨으면 해요.
오! 굉장히 실용적인 팁인데요?😄 공간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책을 읽고 있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가장 뿌듯해요. 책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멋진 일이더라고요. 책을 꺼내 읽고, 그걸 통해 조금 더 넓은 삶의 지평을 만나는 모습. 그런 순간들이 이 공간을 유지할 이유가 되어주고 있어요.
‘셰입오브타임다움’이란 어떤 걸 의미할까요?
딱히 ‘우리 책방은 이렇게 달라야 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다만 책을 밀도 있게 선정하는 것, 우리가 좋아하는 책들을 중심으로 유지하려는 감도는 놓치고 싶지 않아요. ‘셰입오브타임다움’이란 아마도 ‘우리답게 천천히, 그리고 진심으로 머무는 방식’일 거예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셰입오브타임’은 어떤 공간이 되고 싶으신가요?
언젠가는 1층으로 올라가고 싶어요.😄 지금은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공간인데,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되는 책방이 되고 싶거든요. 그리고 지금처럼 책과 전시, 음악이 느슨하게 얽혀, 딱 정해진 방식보다는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책방지기님의 인생 책을 소개해 주세요!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출판사 문학동네
인생책을 하나만 고르기는 사실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강하게 남아 있는 책이 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책은 제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게 해줬던 거울 같은 책인데요. 사람은 종종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잖아요. 무섭고, 부끄럽고, 드러내기 싫고… 그런데 그런 감정들을 꺼내 보는 데 큰 용기를 줬어요. 어떤 감정을 직면하고, 글로 마주하는 데 있어 중요한 촉매 역할을 했던 책이에요. 읽는 내내 괴롭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직면이 필요한 시기도 있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Editor
정재원
jaewon10455@flyboo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