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했던 생각에 질문을 던지는 곳 에포케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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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했던 생각에 질문을 던지는 곳, 에포케 책방

에포케 책방 인터뷰 | vol. 93 | 앱
VOL. 93

에포케 책방

철학·문학 전문 책방 · 서울 강북구 수유동

에포케 책방 대표 사진
Photo by @by.bean_

❝
서울 수유동, 익숙한 생각을 잠시 멈추고
다시 한번 질문해 보는 책방이 있습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철학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나고,
책과 대화를 통해 생각의 폭을 넓혀가는 곳.

철학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나는 동네 책방,
에포케 책방을 소개합니다.

Q. 01
에포케 책방을 소개해주세요!
에포케 책방은 서울 수유동에 자리한 철학·문학 전문 책방이에요. 주로 철학책과 인문 고전, 문학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모여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독서모임도 꾸준히 열고 있어요. 앞으로는 철학 강의나 북토크처럼 조금 더 다양한 인문학 행사도 마련해보려고 합니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철학과 인문학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동네 책방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02
철학을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군요. ‘에포케 책방’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에포케(epoché)’는 ‘판단 중지’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인데요. 철학에서는 보통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판단을 잠시 멈추고 다시 바라보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저는 철학이 정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학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우리가 정답이라고 여기는 것이 정말 정답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작업에 가깝죠.

만약 내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더 이상 탐구할 이유도 없겠죠. 철학하는 태도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정말 그런가?”, “내가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에포케’라는 이름에는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내려왔던 판단을 잠시 멈추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책방에서도 그런 대화가 많이 오갔으면 좋겠고요.
에포케 책방 사진 2
Photo by @by.bean_
Q. 03
이름에 담긴 의미도 인상적이에요. 서점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책방은 정말 우연과 운명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해요.

시작은 2022년이었어요. 동업자 친구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백승영 교수님의 번역본과 해설서가 나왔던 때라 같이 읽어보자고 한 게 시작이었죠.

당시에는 독서모임이라기보다 철학 스터디에 가까웠어요. 친구도 철학을 전공했고 저도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이왕 하는 거 우리 둘만 하지 말고 지인들도 불러 정기적으로 해보자”고 해서 작은 독서모임을 만들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광진구에 있는 ‘날일달월’이라는 책방을 빌려 지인들과 인문 고전을 읽었어요. 이후 참가비를 받고 외부 참가자도 받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대부분 지인이었던 모임이 어느 순간 처음 만나는 분들로만 채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유료 독서모임으로 자리 잡았고, 어느새 200회를 훌쩍 넘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강연이나 외부 프로그램도 진행하게 됐고, 생각보다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일도 연구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대학에는 오랫동안 한 분야를 공부한 연구자들이 정말 많지만, 그 지식이 대학 밖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그러다 길을 가던 중 우연히 현수막을 보고 서울시 로컬 청년창업 지원사업을 알게 됐어요. 별 기대 없이 지원했는데 덜컥 선정됐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책방을 만들려고 독서모임을 시작한 게 아니라, 독서모임을 계속하다 보니 책방까지 생긴 셈이에요.
Q. 04
독서모임에서 시작된 책방이라니! ‘에포케 책방’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시나요?
문학책은 동업자 친구가 전적으로 고릅니다. 영상 시나리오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았고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던 친구라, 이야기나 문학을 보는 감각은 저보다 훨씬 뛰어나거든요. 그래서 그쪽은 아예 믿고 맡기고 있습니다.

철학책은 제가 고르는데, 기준은 딱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철학에 처음 관심을 가진 분에게 권하기 좋은 책인가’, 두 번째는 ‘안 팔려도 내가 읽을 책인가’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철학사 전체를 따라 모든 책을 구비해 두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잘 팔리지 않을 책을 전부 들여놓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안 팔려도 나중에 연구할 때 읽으면 되겠다” 싶은 책들을 가져다 놓습니다.

예전에 교수님이 책방에 오셔서 제가 읽으려고 들여놓은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을 사 가신 적이 있어요. 팔려서 좋긴 한데, 사실 안 팔렸어야 하는 책이라 조금 난감했어요. 저도 봐야 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이후로 제가 보려고 가져다 놓은 책들이 팔리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시간과 이야기』나 『고백록』 같은 책은 몇 달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결국 제가 읽고 있습니다.
에포케 책방 사진 3
Photo by @by.bean_
Q. 05
공간을 만드실 때 어떤 점을 많이 고려하셨나요?
사실 공간을 만들 때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저도 동업자 친구도 인테리어나 공간 디자인에 특별히 감각이 있는 편은 아니고, 아는 것도 거의 없어 굉장히 막막했거든요.

다만 기준은 명확했어요. 첫째, 여러 사람이 모여 독서모임을 할 수 있을 것. 둘째, 편하게 책을 볼 수 있을 것. 셋째, 오래 앉아 공부하기 좋을 것. 생각해 보면 굉장히 실용적인 기준으로 만든 공간이에요.

그래도 소파만큼은 꼭 두고 싶었습니다. 제가 소파에 푹 잠겨 책 읽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한쪽에 카펫을 깔고 소파를 두어 집의 거실 같은 공간을 만들었어요.
에포케 책방 사진 4
Photo by @by.bean_
Q. 06
에포케 책방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나 행사 등을 소개해주세요!
지금 가장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건 역시 독서모임입니다.

매주 모임을 열고 있는데요. 한 주는 고전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모임을, 다른 한 주는 철학이나 문학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책방을 연 지 아직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생각보다 빠르게 모임 규모가 커져서, 지금은 프로그램 일정을 조금 더 늘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철학이나 문학 연구자들을 모시고 강연이나 북토크도 더 많이 열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인 방식은 고민 중이지만, 단순히 책을 읽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에포케 책방 사진 5
Photo by @by.bean_
Q. 07
에포케 책방을 더 재밌게 이용할 수 있는 책방지기님만의 팁이 있다면?!
책방지기들에게 말을 걸어주시면 좋습니다.

책 추천이나 영화 추천도 좋고, 철학 이야기를 해주셔도 좋고, 그냥 잡담을 하셔도 좋아요. 특히 “철학을 잘 모르는데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같은 질문은 언제든 환영이에요. 오히려 뭘 읽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을 때 찾아오시면 더 재밌게 추천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포케 책방 사진 6
Photo by @by.bean_
Q. 08
공간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한 번 오셨던 분이 다시 찾아와 책을 읽고, 또 다른 책을 추천받아 가실 때 가장 좋습니다.

처음 오시는 분이 많은 것도 물론 감사하지만, 다시 찾아오시는 분들을 보면 “그래도 우리가 아주 잘못하고 있지는 않구나” 하는 작은 확신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중고등학생들이 찾아와 철학책을 둘러보고 이것저것 물어볼 때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저도 처음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가 떠오르거든요.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이나 나눈 대화 하나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관심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뿌듯합니다.
에포케 책방 사진 7
Photo by @by.bean_
Q. 09
‘에포케 책방’다움이란 어떤 걸 의미할까요?
저희의 모토는 항상 ‘즐겁지만 가볍지 않은 인문학’입니다.

철학이나 인문학이 꼭 심각한 표정을 짓고 어렵게 말해야만 진지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농담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철학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잖아요.

부담스럽지 않지만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고,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즐거울 수 있는 것. 그런 분위기가 ‘에포케 책방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포케 책방 사진 8
Photo by @by.bean_
Q. 10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에포케 책방’은 어떤 공간이 되고 싶으신가요?
책방 하나가 잘되는 것보다, 에포케를 통해 작은 철학 공동체들이 계속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에포케책방도 하나의 예시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로컬에서 인문학을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공간 중 하나가 되고, 저희를 보고 비슷한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기 동네에서 철학자를 만나고 인문학 모임에 참여하며, 책이나 삶에 대해 조금은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그런 공간을 만나려면 일부러 검색하고 멀리 찾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언젠가는 동네마다 자연스럽게 작은 인문학 공동체가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에포케책방이 그중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에포케 책방 사진 9
Photo by @by.bean_
Q. 11
마지막으로 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책방지기님의 인생책을 소개해주세요!
소크라테스의 변명 표지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지음 · 문예출판사
저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참 좋아해요.

어떻게 보면 ‘나는 알지 못한다’에서 시작해 ‘나는 알지 못한다’로 끝나는 책인데, 그 모습이 제가 생각하는 철학과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엇보다 『변명』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좋습니다. 철학자라고 하면 보통 논문을 쓰고, 공부를 많이 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그보다 앞서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묻는 사람이에요.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고, 알아가는 일에 굉장히 진지한 사람이죠.

그런데 동시에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무언가를 알게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다시 묻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저는 철학에 진지하다는 게 그런 것 같아요.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계속 궁금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무언가를 알게 됐다고 해서 멈추지 않고 다시 질문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철학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도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추천하고 싶어요. 철학이 어떤 내용을 공부하는 학문인지 알려주기보다, ‘철학한다는 것’이 어떤 태도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ditor 정재원 · Photo @by.bean_
에포케 책방 프로필
에포케 책방 @epoche_book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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