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봄꽃이 지나간 자리에는 늦은 봄의 여운과 초여름의 향기가 뒤섞여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이 마음이 설레이는 5월이다.
길가에는 장미가 피어나고 바람에도 여름의 무더움이 슬쩍 묻어나는 5월은 어쩐지 누군가와 어디로든 떠나고 싶고, 마구마구 사랑하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계절인 듯 하다.
햇살 좋았던 5월의 긴 연휴동안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영화에 가슴이 설레이기도 했지만,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그들의 첫만남에 새삼스럽게 설레였던 것 같다.
파리로 돌아가는 셀린과 비엔나로 향하는 제시가 기차에서 통로를 사이에 두고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던 장면, 서로 읽는 책던 책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하던 그들의 그 시작이 왠지 모르게 멋지게 느껴졌던 건 왜일까?
책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만남은 어쩐지 고상하고도 어른들의 연애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속사정을 알길이 없지만 말이다.
영화 <노팅힐> 에서 두 주인공, 아름다운 여배우 안나와 평범한 서점주인 윌리엄의 시작도 책이었다. 그녀가 집어든 여행책을 사지말라고 하는 서점주인.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않는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 윌리엄 곁에 함께 있는 안나. 그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와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 괜히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책은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과 만남과 상상을 우리에게 던져주기도하지만, 누군가와 소통하는 시작 혹은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비포선라이즈>나 <노팅힐>의 주인공들 처럼 서로를 향한 첫 몸짓의 매개체가 되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하는 한 마디를 전하는 선물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책으로 시작하는 사랑은 생각만해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러브레터>에서도 책은 주인공들을 이어주는 중요한 물건이다. 이름마저 같았던(여기서부터가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두 명의 이츠키가 책으로 서로를 알아갔던 그 아름답고 순수했던 날들의 기억들. 자신들의 감정을 잘 알지도 못했고, 표현도 서툴렀던 그날의 중심에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있었고, 책이 있었다.
도서 부장을 하면서 서로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고 책 정리를 하는 그들 사이에서 흐르던 미묘함이란. 아무도 빌리지 않은 책에 이름 쓰는 걸 좋아하던 남자 이츠키는 어쩌면 이름이 같은 그녀를 끊임없이 적어 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가 알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남자 이츠키의 죽음을 알려온 그의 약혼녀와 우연스럽게 편지를 주고받게 되면서 다시 그 시절의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려간다. 학교를 다시 찾은 이츠키에게 후배들이 건네는 책 한 권. 그 책은 그들이 마지막 인사 인지도 모른 체 주고받았던 그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도서 카드 뒷면에 봉인되어버린 그들의 마음처럼. 이미 지나가버린, 그리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그들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닮은 그 책 한 권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듯했다. 잊고 있었던 그 시절 아름답고 순수했던 사랑을 닮은 영화는 물론 그들의 기억을 간직한 그 책이 궁금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