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저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노라고만 쓰자
잠 못이루는 밤이면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잊었노라고만 쓰자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요.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하루도 검푸른 물결에
흐느적 잠기고 잠기고
저 웬 검은 고기떼가
물든 바다를 날아 횡단할고.
낙엽이 된 해초
해초마다 슬프기도 하요.
서창에 걸린 해말간 풍경화.
옷고름 너어는 고아의 서름.
이제 첫 항해하는
마음을 먹고
방바닥에 나딩구오
딩구오
황혼이 바다가 되어
오늘도 수많은 배가
나와 함께 이 물결에
잠겼을 게오.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와짝 떠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빗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