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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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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다산책방 펴냄

작가의 전작 초크맨의 주제가 '비밀'이었다면 이번 애니가 돌아왔다는 '죽음'이다.
죽음을 이야기 하는 소설은 초자연주의의 침범이 쉽다. 개인적으로 미스테리,스릴러,추리 장르에 초자연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현상의 개입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의 복잡한 일들을 꾸며놓고 미지의 영역을 끌어와서 쉽게 이해시키려는게 편법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복잡한 일들이 인간이 이해할수 있는 영역 안에서 풀리길 바라기 때문에 리얼리즘을 선호하는 편이다.
다행히 튜더 작가는 허무맹랑의 경계선을 잘 알고있는듯 초자연적인 장치를 건빵의 별사탕 정도로만 이용했다.

하지만 전작 초크맨을 보고 높아진 기대는 조금 내려놔야 했다. 밝혀지는 비밀들의 맛이 싱거웠고 사채업자들과의 관계는 작위적이었다. 주인공 장기 하나 떼가지 않는 순한 사채업자들이 시시한 반전을 위해 출연하는건 낭비였다. 차라리 그 지면에 스티븐과의 에피소드나 감정교류를 더 넣으면 좋았을 것이다. 주인공과 스티븐 사이의 이야기가 과거든 현재든 설 무르익어서 갈증이 났다.
소설 마지막 장면은 폐광의 저주가 끝나지 않고 어린아이들에게 비극이 되풀이 될 것을 암시한다. 어리고 순수하던 두 영혼이 성불하지 못하고 폐광으로 친구를 부르는 음험한 망령이 되어있는 것은 기분나쁜 사족이다. 작가가 일부러 찜찜한 마무리를 즐기는듯 하다. 그 찜찜함이 초크맨에서는 시원한 뒤통수 마사지였다면 이번 작품에선 그저 기분 나쁘기만하다. 죄없고 순수했던 자가 폐광에서 죽었다는 이유로 영혼이 타락했다는 것은 내 감정 안에서 소화되지 않고 자꾸 에러 사운드를 낸다.
시간 때우기로 괜찮은 소설이지만 전작으로 인한 기대감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도 이 작가의 새 작품이 나온다면 한번 더 찾아볼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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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두의 인생이 그렇다. 희망이다. 확약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 자리가 마련돼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예약만 되어 있을 뿐이다. 그 자리가 경고나 환불도 없이, 얼마만큼 가까이 왔는지에 상관없이 당장이라도 취소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경치를 감상할 시간조차 없이 달려왔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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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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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asoora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전통파 추리소설이다. 사건 해소의 뒷맛이 깔끔하고 주인공이 선해서 기분이 밝아진다.
과거사건에서 공범을 결심하게 된 사연들이 자세했다면 더 재미있었을것 같다.
범인을 비롯하여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이 과장된게 작품 분위기와는 어울렸지만 유치함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심심할때 가볍게 읽기 좋다. 없는 시간을 내서 읽을 책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문제다. 추리소설 마니아들은 극찬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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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에도 그런게 있으면 좋겠네요. 일기예보 같은거 말이에요."
"몰랐습니까?"
"뭘요?"
"사건의 일기예보, 그게 바로 우리의 일이라는 거.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의 정보를 모아 다시 일어날지도 모를 사건을 예측하고,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일 말입니다."

반전이 없다

조영주 지음
연담L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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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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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asoora

기나긴 이별이 1953년에 출간된 책이라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얼마나 한결 같은지 놀랍다. 돈과 권력은 어느시대든 사람을 현혹한다.
현실적인 배경속에 초현실적인 주인공이다.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사람, 권력 앞에 기죽지 않고 위협 앞에 굽히지 않는 사람,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다면 돈도 사랑도 친구도 받지 않는 결벽적인 사람.
이런 사람이 드물긴해도 세상에 존재할것이다. 결혼해서 가정을 지켜야 하는 순간 사라질뿐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반려동물 조차 곁에 두지 않고 사람들과 이별하며 홀로 늙어가는 고독한 탐정이다.

<이별을 할때마다 조금씩 죽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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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나 순진하길래 이러시오, 말로? 세상물정 알 만큼 아실텐데. 법은 정의가 아니오. 몹시 불완전한 체계란 말이오. 눌러야 할 단추를 또박또박 정확히 누르고 행운도 좀 따라줘야 간신히 정의가 실현 될까 말까요. 법은 처음부터 일정한 체계를 마련해보려고 만들었을 뿐이니까.">

<고무밴드 한개를 집더니 양쪽 엄지에 걸고 잡아당겼다. 점점 더 길게 늘였다. 마침내 고무밴드가 뚝 끊어졌다. 그는 끊어진 고무줄 끄트머리에 얻어맞은 엄지를 문질렀다.
"누구나 지나치게 잡아당기면 끊어지기 마련이오. 아무리 강인해 보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지. 또 만납시다.">

<"난 아직 무사해요. 자꾸 겁주려고 하지 마세요. 내가 원하던 대로 됐으니까. 레녹스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스프링어한테 가서 면상에 침을 뱉었겠지만."
"당신이 대신 뱉어줬잖아요. 그리고 이번에는 스프링어도 그 사실을 알아요. 검찰은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옭아매는 방법을 백가지도 넘게 알죠.">

<"잘 가게, 친구. 작별인사는 생략하겠네. 가슴에 사무칠때 벌써 해버렸으니까. 슬프고 쓸쓸하고 영원한 이별이었으니까.">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열린책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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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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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asoora

주인공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지만 사실 좋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걸 느끼고 주인공에게 다가온다. 주인공은 인간관계를 바라지 않고 무심하려 하지만 사람들은 제멋대로 마음을 열고 사연을 들려준다. 주인공의 삶에 난입하는 주변인들이 '침입자들'의 정체다.
주인공은 나무 같은 사람이다. 갖가지 사연으로 지친 새들이 찾아온다. 새들은 충분히 쉬었다가 제 갈 길을 떠난다. 나무 역시 그 이상의 관계를 바라지 않는다. 막지 않고, 잡지 않고, 아쉽지 않고, 무심하다.

주인공은 진지한 것을 가벼운 말투로 말한다. 그러고 보니 모든 질문에 다 진지하게 대꾸할 필요는 없구나ㅋㅋ
의미심장한 말을 해놓고, '그거 무슨뜻으로 하는 말이야?' 하고 상대가 물으면 아무뜻도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넘기는 주인공의 방식이 좋아보였다. 과거를 묻는 질문엔 알코올성 치매라고 능청스럽고도 단호하게 회피한다.
그래도 관계는 망가지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한다(?)

예전에 '독서중독자들'이라는 코미디 웹툰을 중반 정도까지 봤는데, 거기 멤버로 나가면 코드가 딱 맞을듯한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하도 책이나 영화 예술 등을 많이 인용하길래 '뭐지 작가의 아는척을 위한 두번째 자아인가' 했는데, 나중에 작가의 말에서 밝히기를 '좋아한 작품들의 오마주' 였다고 한다. 나도 사람들에게 내 취향을 함께 하자고 조르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고 사니까 이해가 되었다.

표지만 봤을땐 스릴러나 추리소설인 줄 알았다. "택배가 도착하는 순간,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과거를 덮으려는 자, 잃어버린 자, 잊으려는 자. 의문의 남자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숨막히는 이야기." 라는 소개글이 아주 틀린말은 아닌데, 장르 낚시라는 느낌도 지울수 없다;

초반엔 택배기사의 고된 현실을 폭로하는 리얼리즘 소설인가 했지만 뒤로 갈수록 현실 판타지다. 유치함 속에서도 현실에 대입해 볼만한 주제를 품고있기 때문에 그리 나쁘진 않았다. '사람이 상처로부터 자신을 추스르는 이야기. 옳든 그르든 각자의 길을 찾아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아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곁에서 쉬고 떠났듯이 주인공도 택배 터미널에서 쉬고 떠나는 것이다.
택배 동료가 주인공에게 '행운동은 택배기사가 아니다. 택배일을 진지하게 여기는게 아니라면, 택배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택배를 무시하면서 택배일 하는 사람은 싫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 말이 주인공을 돌아가게 만든게 아닐까?
사막에서 집을 지어보려 했지만 도피였을 뿐이다. 슬픔을 시간으로 달랜 뒤엔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결국 육지로 돌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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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라도 날로 먹고 싶은데 그마저도 꼭 비싼 비용을 치르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손에 쥔 건 어쩐지 싸구려 같고. 시간에 사기당한 기분이죠. 어떡하겠어요? 그게 멍청함의 대가인것을. 하지만 누굴 탓할 일은 아니죠. 누구도 그리 살라고 등들 떠민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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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어 오브 드래곤'이라는 영화를 봤습니까?"
"모르는 영화에요."
"거기에서 미키 루크가 이런 대사를 하죠. '난 상처받은 영혼이야'. 그걸 듣고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몰라요."
"젠장, 안 그런 영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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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유를 원하죠. 하지만 실제로 자유를 감당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어요. 왜인지 아십니까?"
...
"자유의 대가는 공포니까요. 생계의 공포. 인간관계에 있어 고립의 공포. 그 공포를 감당하며 살 만큼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흔치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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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다산책방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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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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