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가오슝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가져 온 세 권의 책 중에서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돈을 걱정하고 경제를 걱정했다는 다양한 이야기와 그들의 삶을 재해석한 책인데 역사책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우리는 흔히 조선 시대를 ‘사농공상’의 견고한 위계 아래 상업과 이익을 천시했던 고리타분한 나라로 기억하곤 한다. 하지만 과학 기술과 역사를 넘나드는 곽재식 작가의 시선으로 포착한 조선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성리학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조선 지식인들의 뜨거운 ‘경제적 분투기’라고 할 수 있다.
책에는 조선을 이끌었던 일곱 명의 선비를 소개한다. 그들은 대부분 우리가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익히 알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들이 경제와 관련된 분야를 연구했고 개혁을 이끌었다는 것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은 그들이 어떻게 국가의 재정을 설계하고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책에서 선비들은 도덕적 명분만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때로는 유통 구조의 혁신을 꿈꾸고,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했던 실천가로 그려진다.
저자는 정도전부터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7인의 인물을 통해 조선 경제사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들을 던진다.
“지폐를 어떻게 믿게 만들 것인가?”
“소비가 줄면 왜 경제가 망하는가?”
“노동의 가치는 신분보다 우선 될 수 있는가?”
책은 정도전과 하륜의 화폐 전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조선 초기,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종이 돈인 ‘저화’를 유통하려 했던 그들의 시도는 현대의 디지털 화폐 도입 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저자는 이를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 다루지 않고, 신용과 가치라는 경제학적 본질을 꿰뚫는 저자 특유의 통찰로 풀어낸다.
아울러 헝가리의 초인플레이션 사태와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의 경제 상황을 아주 재미있게 풀어내어서 경제 개념에 약한 사람도 아주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토정비결’로 유명한 이지함을 ‘가난 구제의 마술사’로 재해석한다. 그는 단순히 점을 치는 기인이 아니라, 버려진 땅을 개간하고 자원을 재활용하여 일자리를 창출한 ‘사회적 기업가’였다. 이 챕터에서는 이지함의 게임화와 공짜 노동의 비밀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시의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도 적용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분 질서를 뒤흔든 노비 해방 사상의 선구자 유형원 이야기에서는 노력해도 빼앗기는 노동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당시 그의 '반계수록'에 담긴 지혜를 엿 볼 수 있었다.
박제가의 ‘우물물 이론’과 유수원의 ‘전문 경영인론’은 조선 후기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자본주의적 싹을 품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박제가가 주장한 소비의 미덕은 조선 후기 화려해진 풍속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물품들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준다. 경제적 풍요가 예술의 수요를 낳고, 그것이 다시 화가들의 창작 동기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가져온다.
다산 정약용에 이르러서는, 이 모든 경제적 논의가 어떻게 ‘시스템의 과학화’로 수렴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공학적 시각을 빌려 정약용의 거중기와 신도시 설계를 단순한 기술적 성취가 아닌, 노동력 절감과 물류 혁신이라는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독창적인 시선이다.
자칫하면 고리타분한 조선 선비의 경제 이야기에 그칠 수 있는 내용을 저자의 탁월한 통찰력으로 현대적 시점의 다양한 경제 이론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특유의 재치 있는 문체로 무거운 경제 담론을 가볍게 풀어내면서도, 그 속에 담긴 묵직한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이익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
“국가는 시장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은 수백 년 전 조선 선비들의 고민인 동시에, 양극화와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이기도 하다.
유교사상이 지배적이던 보수적인 사회 조선에서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치밀하게 고민했던 7인의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는 딱딱하게 생각했던 경제 이론들을 아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경제를궁리한조선의선비들#책스타그램#북스타그램#한국사#역사#독서#독서모임#원앤원북스
재택근무라면 무조건 좋을 줄만 알았는데, 이 책은 그런 환상을 산산이 깨부숴 주었다. 물론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재택근무의 위험성을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펼쳐 보이니 꽤 충격적이었다.
다만 나라별 기업 문화 차이를 고려하면, 책 속의 내용 중 일부는 현실보다는 이상에 가까운 면도 있었다. 거창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 그런 작품이었다.
📖
P. 24
업무가 최우선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실제로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다.
P. 132
경영 관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승진으로 생각되어서 그자리가 갖는 실질적인 중요성이 퇴색되었다. 그것은 권력을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팀이 업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조건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궁리 하는 자리다. 그런 업무는 종종 눈에 띄지 않지만, 회사는 그 일을 매우 중하게 취급해야만 한다.
오래 전, 국사 선생님은 “네가 태어나기 100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는 알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 100년 역사 한 복판에 일제 강점기가 자리잡고 있다. 외면할래야 할 수 없는 그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런 생각조차 건방지다.
한반도, 이 보잘 것없고 한없이 작은 땅덩어리에는 여전히 수많은 욕망이 들끓는다. 100년 전에는 일제 치하에서도 잘먹고 잘살고 싶은 과욕이었거나 끼니라도 챙겨먹으며 살아내고자 하는 소망이, 독립을 향한 열망이 뒤섞여 있었다.
2025년 한국은, 물욕, 권력욕, 명예욕을 모두 다 채우지 못해 안달난 조바심이 넘실댄다. 하나로는 도무지 만족할 수가 없다. 이것들이 채워지지 않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지금 현재에 자족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몇 해전 아주 가까이서 호랑이를 본 적이 있다. 강화유리 한장을 사이에 두고 그와 내가 선 거리는 2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그가 있는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어슬렁거리던 걸음을 일순간 딱 멈췄다. 하필 새빨간 윗옷을 입고간 터라 그랬을까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에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오금이 저렸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흘렀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오줌을 지릴 수도 있을 엇같았다. 거기서 빠져나올 궁리만 해댔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또 쳐댔다.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이다.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추호도 있을 수 없었다, 있어서는 안 됐다. 치부가 드러날 바에야 죽이든가, 죽게 내버려두든가. 어찌됐건 판단의 준거는 ”나“의 명예다.
명예욕은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지위나 평판을 위해 경쟁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오히려 결과보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다.
헷갈릴 수 있겠으나 명예욕은 권력욕과는 다르다. 권력욕은 지배와 통제에 집중한다. 대체로 물욕, 권력욕, 명예욕 중에 명예욕을 제일 끊기 어려운 욕망이라고 명심보감에서는 얘기하고 있다.
인정욕구는 대체로 타인에게 갈구한다. 타인의 시선, 타인의 인정이 나를 발 딛고 서게 하는 힘이다. 평판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체로 권력욕도 없다. 없어야 하나 있는 부류는 참 답답하기 짝이 없다.
무례한 부류는 명예욕이 없어야 할 것같지만 오히려 명예욕이 강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억하심정이 생기고 그러다보니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는 실수를 하고 만다.
자기 만족과 자기 인정을 토대로 일을 하면 한결 마음이 편하다. 누구와 비교하고 경쟁해서 밟고 올라가려 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과 성과를 칭찬하며 부족했을 땐 반성하며 그렇게 한발 한발 디뎌가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
이는 명예욕을 덜어내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누구도 지위와 평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거기에 매몰되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고, 그보다 중한 가치도 가차없이 묵살시켜 버릴 수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방도를 궁리하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집중할 때야 비로소 스스로 자유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