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위야 비불능야 (不爲也 非不能也)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면 더 잘 살기 위해서, 잘 못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잘 살기 위해서 배울 건 배워야 합니다. 그 시작은 세상과 상대방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존중하는 일일 겁니다. 물론 자신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함은 물론입니다. (p.67)
나이를 먹을수록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고전의 맛이다. 사실 과거에는 읽고 싶은 욕심에 꾸역꾸역 읽은 것들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고전들의 매력을 야금야금 맛보는 것 같다. 물론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려놓음에서 오는 깨달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의 나는 신간만큼 고전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는 「오십에 읽는 장자」,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등 나도 읽은 책들을 쓰신 김범준 작가의 신간으로,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골조로 여러 철학가의 사상을 풀이해준다. 사실 평소 명언들을 짜깁기해놓은 책들을 즐기지는 않는 편이지만, 나이가 들어도 배움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필두로 이야기를 하는 작가의 책이기에 고민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라고 이름 붙여진 이 책을 통해 나보다 더 많이 배우고, 앞서 걸으신 분이 바라보는 고전은 어떤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중점으로 두고 이 책을 읽었다.
마음에 가장 많이 닿았던 부분은 노자의 사상을 담은 '비우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채울 수 있다' 편이었다. 요즈음의 세상은 자신의 욕심, 자신의 편의만을 목적으로 무척이나 날카롭지 않나. 이 부분을 읽으며 움켜쥐고 사는 오늘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외에도 순자, 맹자, 공자, 묵자 편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무척 많았던 것 같다. 순자의 사상에서 쉼 없이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는 노력을, 맹자에게서는 타인을 향한 이해를, 공자에게서는 옳고 그름을, 묵자에게서는 발전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다른 책에서도 공자 등의 사상가들이 남긴 진리를 배울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의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사상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준 뒤 두 세 페이지 가량으로 나뉘어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보기도 좋았고, 내 생각을 정리하며 읽기 좋았던 것. 아마 이 책은 공자 등을 한반도 읽지 않은 사람도 아주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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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50의품격은말투로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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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나'밖에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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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한사람의 영혼이 이전보다 더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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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려는 말투를 사용하기 이전에 불행해질지 모르는 말투를 삼가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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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한다'를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바닥을 보여줌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자신감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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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는 영혼의 숨결이며 말은 행동의 그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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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얼굴보다 '마음'에 주름이 더 먼저 생긴다.
늙으면 얼굴보다 '말투'에 주름이 더 먼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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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는 몸보다는 영혼을 먼저 흉하게 만들며, 흉해진 영혼이 말투를 더럽히고 결국 관계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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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비하 말투'와 멀어지되, '자기 낮춤 말투'와 친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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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말하지 못하는 것'임을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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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20대, 30대 중에는 유난히 도망자가 많단다. 학교(선생님)에서 도망치고, 직장(상사, 선배)에서 도망치고, 사업자(갑질 고객)가 됐다가 다시 도망치고... 하지만 나는 그대로 '도망'을 탓하지 않는다. 경험을 통한 삶의 만족감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 도망치는 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라는 뜻이었을 때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도망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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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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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집단행동을 기업 전체로 비유해 볼 수 있다.
기업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성과에 도달하는 길은 무첟 복잡하다. 목표이 도달하는 복잡한 과정을 단순한 업무의 연결사슬로 치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은 우리가 개미에게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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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가 하듯이 구성원 하나의 실패가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연결의 사슬을 설계하는것이 좋다.
즉,구성원 혹은 업무의 연결사슬을 실패를 가정하고, 일부가 실패해도 전체는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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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개미가 일종의 예비 노동력으로 확보되어 있는 개미 집단에게서도 배울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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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가 실패했거나 새로운 업무가 발생했을때, 당장에라도 새로 투입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려면 평상시 각자의 업무 부담이 과도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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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과학#동아시아#김범준#서평#독서스타그램#북스타그램#책스타그램#과학책추천
행동하는자.
멈추어선 자.
또 다른것을 행동하는 자.
한때 같은 사상으로 뭉쳤던 세 사람이, 이데올로기의 충돌에 각자의 신념으로 서로 다른 세 갈래의 길로 걸어간다. 인간다움, 혁명, 투쟁, 시대적인 삶 앞에서 그들은 선택과 행동을 해야 했으며, 민족과 집단, 개인과 집단의 진실, 개인의 허위의 그 미궁 속에서 그들은 각자의 길로 갈라질수 밖에 없었다.
*염상진 (행동하는 자)
아리랑의 송수익을 연상케 한다. 그에게 마르크시즘은 종교화 된것처럼 맹신적이다. 확고한 신념의 야성적인 행동파. 큰 키에 맵고 차지고 단단한 체격을 가졌으며, .남로당 보성군책, 나이 이십구세, 광주사범 졸업, 교사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농사를 지었다, 일정때 적색농민운동 주도, 소작쟁의로 징역을 살았으며. 출옥후 강제징용을 피해 잠적했다가 해방후 나타나 하대치가 속했던 소작회를 이끔, 혁명의 날이 도래할 때까지 용맹스러운 투쟁을 전개하는 것만이 자신이 해야 할 임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손승호 (행동하기를 멈추어선 자)
남국민학교 선생, 김범우 친구, 염상진, 김범우와 죄익활동하다 회의를 느껴 그만둠. 세상의 그 어떤 주의든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사상의 실현을 위해서 인간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회의를 느껴 행동하기를 멈추어 선다. 인간을 위한 주의가 아니라 어떤 주의를 위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변질을 그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사상보다는 차라리 원시상태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회주의를 벼렸을 뿐 그 반대개념의 사상을 취한 것이 아니었다. 사상의 공백상태로 스스로를 회색주의자라 말한다. 글재주가 좋으며 소작인들의 일에 발벗고 나선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주장 한다.
*김범우 ( 또 다른것을 행동하는 자)
지주의 아들이면서 양반과 지주들의 탐욕스러움에 경멸을 느끼며, 소작인들의 편에서서 모든 사건에 해결사이며 중재자 이다. 일제치하에 학도병으로 끌러갔다 탈출, 태평양 산타카탈리나 섬에서 연합군으로(OSS 해외전략 첩보훈련원) 활동. 일본의 항복으로 한때의 동지에서 포로로 전락 샌프란시스코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해방 맞아 귀국(형 김범준 독립운동가)- 175센치의 헌칠한 키에 균형잡히 키,말재주가 좋음. 순천중학때 염상진과 사회주의에 빠짐, 학병에서 돌아와 미군정의 통역관 요청을 거절, 사회과 선생으로 정하섭을만남. 학교내의 학생세력을 지배하고 있는 사회주의 이념을 조종하는 세력을 파괴 함. 그 세력의
주동인물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정치의식을 버리고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이 될 것을 설득함. 그의 설득으로 그 학교의 조직이 흔들려 학생조직으로부터 '파괴분자, 반동분자'라 낙인 찍힘. 그러나 극력한 행동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 들어간 학생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학교의 구분을 두지 않고 노력, 좌익조직에서 보면 그는 눈의 가시였지만 그렇다고 증오스러운 적도 아니었다. 불필요한 말은 거의 하지 않는 무게감, 세상의 이치를 훤히 아는 것 같은 해박함, 그누구도 무시하지 않을것 같은 겸손함과 거의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진행해가는 꾸준한 행동성, 그 어딘지 우울한 듯하기도 하고, 쓸쓸한 듯 하기도 한 범접하기 어려운 사색적이고도 지성적인 분위기를 가졌다.
염상진, 김범우, 손승호는 태백산맥의 케미, 브로맨스 이다. 서로 다름을 존중해 주고, 서로를 애틋해 하며,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신념 앞에서는 강하고 끗끗한 인물들 이다. 이데올로기 앞에서 강철같은 굳건한 신념을 가진 염상진과 대조적으로 손승호는 혼란스러워하고 심약함을 보이지만 그 또한 자신의 신념에 부합되는 선택과 행동이었다. 마르크시즘의 맹신적 종교화와 자본주의의 추악한 물신주의에 신물을 느낀 김범우의 선택은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찾고자 함 이었다. "민족의 발견" 김구식의 민족주의 통일노선을 실현 시키고자하는 것이다. 지주의 아들로서 소작인들에게 자책과 죄의식을 느겨 인간다움의 삶을 영위할 수있는 이상적 평등사회를 이룩하려 필연적으로 봉건 계급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김범우와 자책과 죄의식의 과정은 아예 생략되었고 이상세계의 빠른 실현을 위해 지주계급이나 경제적 지배세력을 타도할 수 있는 무산자들의 힘의 조직화를 강조하는 염상진. 그들의 행보를 보면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손승호. 행동의 선택은 다르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바는 동일하다. 귀천이 없는 평등한 사회. 굶주리는 이가 없는 풍요로운 세상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