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다.
배우가 읽어 주는 오디오북은 역시나 좋다.
배우이자 작가가 읽어 주는 오디오북은 최고다.
대사가 많은 책이다.
배우는 수필을 맛깔나는 대사로 채우는 재능이 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알았다. (머지않아 소설이나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한다 해도 하나도 놀라지 않을 테다)
그리고 코믹하다.
코믹한 대사를 상상의 목소리로 채우는 것도 재미지지만 배우가 리얼하게 연기 - 아니, 본인의 얘니까 회상이라고 해야 맞겠다 - 해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책을 써 낼 때 들인 만큼 오디오북으로 녹음하며 공을 들였다. 그러고보니 출판사 사장님이 되면서 펴낸 김금희 작가의 책(《그 여름, 완주》)도 카세트테이프로 보일 만큼 '오디오북'의 매력을 내세웠다.
박정민 그대는 충실하게, 절실하게, 성실하게 노력하는 천재형 재주꾼. 화면에서 책에서 오래 만나고 싶다.
250721
문가영이라는 배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1부 ‘존재의 기록’은 개인적으로 어렵게 다가왔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었고, 그래서 읽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한편으로는 솔직하게 쓰지 못하고, 나만 알아볼 수 있게 글을 쓰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 문가영 배우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았다.
2부 ‘생각의 기록’은 조금 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앞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궁금한 게 떠올랐고, 나는 GPT에게 물어봤다.
“산문집이 뭐야?”
대답 중에 가장 놀라웠던 건,
‘작가가 독자의 공감이나 반응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글의 형태.’라는 것이다.
나는 다시 질문했다.
“박정민 배우의 『쓸만한 인간』은 직관적으로 와닿았는데,
『파타』는 문가영 배우가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잘 와닿지 않아서 자꾸 생각이 많아져.”
GPT는 곧바로 정리해주었다.
『쓸만한 인간』은 감정을 말로 번역해 설명해주는 책이라고 했다.
그래서 위로받고, 동의하고, 웃고 울 수 있었고, 내게도 쉽게 와닿았던 거라고.
반면 『파타』는 언어를 감정 그 자체로 쓰는 책이라고 했다.
읽으면서 “이 감정, 나도 느껴봤던가?” 하고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는 책이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아, 굳이 모든 걸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파타는 나에게 해석되지 않아도 괜찮은 책이야.
책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아도, 그냥 내가 느낀 걸로 충분한 책.
파타는 나에게 그런 책이다.
책 마지막 뒷표지에는 김이나 작사가가 쓴 글이 적혀 있다.
『아무에게도 걱정을 끼치지 않는, 고요한 아픔의
시간으로 성장한 이들은 위로의 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
그런 아픔은 드러나지 않아 외롭고, 목격자가 없어
나만의 기록으로 남는다. 문가영의 이야기는 그런 이들이
처음 만나는 공감과 위로가 될 것이다.』
파타라는 책을 너무 잘 이해하고 설명해 준 글 같다.
227일 동안 표류하다 살아남은 파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자기연민은 없다. 그저 227일동안 있었던 일만 있을뿐이다.
그런데 들려주는 이야기는 뭔가 진짜가 아닌 것 같다.
227동안 호랑이와 살아남았다고? 그 망망대해에서?
정말 신이 구원해주었다면 가능한 일이려나.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도 들려준다.
배에서 생존을 위해 사람들간의 폭력과 식인이 일어난 이야기,
그리고 결국 모든 사람을 죽이고 살아남은 파이 이야기.
어쩌면 이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고 진짜 있었던 일 같다.
동물들과 살아남은 미화된 이야기와 고통 가득한 현실이야기.
사실 둘 중 무엇이 진짜인지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결국 사람들은 내가 믿고 싶은 결말을 원하고 받아들이니까.
영화나 소설을 읽지 않고 박정민 때문에 연극을 먼저 봤는데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연극을 보고 책을 읽으니까 장면이 다 떠오르고
쉴새 없이 방대한 대사를 내뱉던 박정민의 열연도 떠오르고.
암튼 책도 연극도 다 좋았다.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