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질수있는 최대한의 우울의 깊이와 삶의 허무함을 경험했다. 살아남기위해 매순간을 익살로 연기하며 발버둥치다 결국에는 파멸로 이르는 모습이 마치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남기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내면에 남은 불편함과 상처는 흉터로 남아 밤마다 고통받는 우리가 연상되었다. 우린 무얼위해 살아가며 사람들을 만나 가식적인 관계를 형성하는걸까? 회의감도 들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문장은 계속해서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그들은 우리 쪽에 서 있다
우리와 함께 분노하고
발구르며 노래하고
저들을 향해 함께 돌팔매질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가는 곳은
우리네의 산동네가 아니다
산비알에 위태롭게 붙은 누게집이 아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찌그러진 알루미늄 밥상 위의
퉁퉁 불은 라면과 누랑물든 단무지가 아니다
병든 아내와 집 나간 딸애의 편지가 아니다
온갖 안락과 행복이 김처럼 서린 식탁에서
그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들의 불행과 가난을 탄식하지만
포도주 향기 그윽한 벽난로 위에
우리의 찌든 삶은
한 폭의 벽화가 되어 걸린다
그들의 아들딸이 박힌 위국의 풍경 옆에
초라한 한 폭 벽화가 되어 걸린다
그들은 우리 쪽에 서 있지만
함께 분노하고 발구르며 노래하지만
함께 노래하며 돌팔매질하지만
- ‘벽화’,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한 사랑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이름은 그럴 듯해서 미니 슈퍼마켓
라면봉지와 화장지가 쌓인
진열대 위에는 먼지가 뽀얗다.
돈궤에서 천 원짜리 두어 장 들고 나가면
사내 저물도록 소식이 없고
아낙은 대낮부터 고스톱판을 벌인다.
가게 앞 빈터에는 진종일 손님 대신
싸구려외치는 어물차에 잡화차
그래도 정월이래서 돌산에서는
마당쇠 쇠가락소리 흥겹구나.
어두워져 아낙 판 치우고 나가보면
그때서야 언덕길 비틀대는 내 사내
한숨 같은 울음 같은 어깨 위로
쟁반 같은 놋쟁반 같은 달이 뜬다.
싸움질 사랑질로 얼룩진 산동네를
놀리면서 비웃으면서 대보름달이 뜬다.
- ‘망월’, 신경림
지금쯤 물거리 한 짐 해놓고
냇가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볼 시간••••••
시골에서 내몰리고 서울에서도 떠밀려
벌판에 버려진 사람들에겐 옛날밖에 없다
지금쯤 아이들 신작로에 몰려
갈갬질치며 고추잠자리 잡을 시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목소리로 외쳐대고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몸짓으로 발버둥치다
지친 다리 끄는 오르막에서 바라보면
너덜대는 지붕 위에 갈구렁달이 걸렸구나
시들고 찌든 우리들의 얼굴이 걸렸구나
- ‘갈구렁달’, 신경림
지난해와 또 지지난해와도 같은 얼굴들
오년 전 십년 전과도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
밖에는 모진 바람이 불고
창에 와 얼어붙는 영하 십오도의 추위
언 손들을 마주잡고
수수깡처럼 야윈 어깨들을 얼싸안고
우리는 이기리라 맹세하지만
똑같은 노래 똑같은 아우성으로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다고 다짐하지만
온몸에 달라붙을 찬바람이 두렵구나
손을 펴본다 달빛에 파랗게 언 손을
다시 주먹을 쥐어본다
마른 나뭇잎처럼 핏기 없는 두 주먹을
- ‘추운 날’, 신경림
소야도 선착장 낡은 함석집 한 채
바다오리 떼 살얼음 바다에
물질을 하는데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이윽고 밤 되어 눈이 내리고
바닷가에 눈이 내리고
쪽마루 방자문 위에 걸린 가족사진에도
눈이 내리는데
갯 떠난 자식 생각하는가
갯바람에 얼굴 긁힌 노부부
밤 깊어가는데
굴봉 쪼는 소리
밤바다에 성근 눈발이 내리고
굴봉 쪼는 소리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밤바다에 눈은 내리고
- ‘소야도 첫눈’, 이세기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 ‘못 위의 잠’, 나희덕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농담’, 이문재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 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고자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맹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빡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 ‘돌멩이 하나’, 김남주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섰을까
아장아장 걸어나온
아침 아기 이파리
우표도 붙이지 않고
나무들이 띄운
연둣빛 봄 편지
- ‘봄 편지’, 박남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낙타’, 신경림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멩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그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꿈자리가 뒤숭숭한 겨울아침
차라리 개꿈이라면 좋겠네
마담이 던져주는 고깃덩어리를 덥석 물고는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꿈에서 깨어나
코를 벌렁거리면서 밥을 찾아 끙끙거리며
세상을 온통 개밥그릇처럼 생각하는
개가 꾸는 꿈이라면 좋겠네
따스한 아랫목이 그리운 겨울저녁
차라리 개꿈이라면 좋겠네
부잣집 동네에 모여 살던 애완견들이 모여
밥그릇을 장악한다는 음모를 꾸미다가 꿈에서 깨어나
개판인지 인간세상인지 구분을 못해 컹컹거리며
사람들을 온통 개새끼들처럼 생각하는
애완견들이 꾸는 꿈이라면 좋겠네
푸른 새순이 돋아나는 봄날 아침
차라리 개꿈으로 끝나면 좋겠네
사육 당하던 똥개들과 부잣집 애완견들이 모여
골목길과 밥그릇을 점령하고 인간들을 감시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에워싸고 으르렁거리며
세상을 온통 개판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개꿈으로 끝나는 꿈이었으면 좋겠네
- ‘개꿈’, 채상근
#발버둥치다 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 청각장애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인 유나의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통역사가 되어야 했기에, 좀 더 어른스웠기에 나다움을 모르고 자라온 유나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성장통을 다룬다. 흔한 청소년 소설같지만 낯선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서 소설을 추천한다. #박하령 작가 특유의 은유가 비유가 있는 글쓰기가 유나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준다. 아쉽게도 부모나 선생님, 친구들은 이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유나는 수어로 부모와 대화하는 게 익숙해서 속 터놓고 말할 수도 없다. 수어 특성상 구어보다는 문장이 짧고, 수어하느라 다른 신체언어를 활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나의 답답함이 극에 달하는 건 바로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는 가족이라는 담장 안에 갇혀있는 일상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가위바위보를 수도 없이 해보지만 자신은 보를 내고, 부모는 가위를 내서 항상 자신이 져야했던 때를 회상한다. 다행히 유나가 발버둥을 친다. 가족의 환상에서 깨어나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