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진리는 없다. 삶은 어리석은 동화일 뿐, 그래서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세상은 내가 틀렸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세상이야말로 내 눈엔 전부 실수와 오류투성이다. 오류와 허위로 둔갑한 것들이야말로 진실이고, 진리와 신성으로 과장된 것들이야말로 진짜 오류다.
옳고 그름 따윈 없다. 다수는 그저 많은 숫자일 뿐, 많다고 정의가 되는 건 아니다. 적음을 무능력하다는 편견으로 뒤집어씌우는 것에 반대한다. 윽박질러도 따라가지 않겠다. 그것이 ‘도덕!’ 이라고 외쳐도 듣지 않겠다. 여기가 내 한계라고 한다면, 한계라는 사물을 결정하는 건 오직 나의 인식뿐이라고 가르쳐줄 테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겠다. 물론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모를 것도 없다.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니까.
현대의 우울함이 두려운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특별한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울의 덫에 빠져도 육체적으로는 힘든 일이 없다. 기술이 문명을 뒷받침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을 핑계로 얼마든지 나태해져도 그 게으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우울하다는 변명으로 얼마든지 무감각해지는 것도 가능하다. 기분이 우울해서 타인의 고통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한마디 툭 던짐으로써 간편하게 면죄부를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함에 취해 있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판단력이 흐려질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불감증이며, 이 단계에서는 사회적 인습 전반에 무기력해져 자기 생각과 감정만이 유일하게 옳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이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망령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우울의 망령에 완전히 정복당하고 나면 사람의 영혼엔 오직 분노만이 남게 된다. 외로워서 화가 나고, 피곤해서 화가 나고, 남들이 행복해서 화가 나고, 마침내 화만 나는 내가 싫어서 미칠 듯이 화가 난다. 그래서 그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이 세계 전부를 희생시켜도 갑싸다는 논리에 봉착한다. 우울의 끝에서 열광이 태어나는 것이다.
열광은 기존의 것들을 부정함으로써 불씨가 지속된다. 과거엔 옳았던 도덕이 오늘의 열광 속에 불법이 되고, 오늘을 있게 한 세계관이 마치 거짓인 양, 모두를 위해 세상이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는 열광이 산불처럼 번지다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꺼져버린다. 왜냐하면, 열광은 우울이라는 씨앗에서 발아된 독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걷잡을 수 없이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가던 주장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열기가 사그라들고, 또 별것도 아닌 사건에 광적인 집착이 일순간에 집중되어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등, 우울과 열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난립하게 된 것이다.
누구의 도전이 가장 영광스러울까?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산꼭대기에 오른 사람에게는 좌절이 없다. 그래서 영광도 없다. 반면에 실패할 때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다시 일어선 사람에게는 영광이 주어진다. 그에게는 좌절을 떨치고 일어났다는 아문 상처가 새겨져 있으며, 절망의 끝이 어디쯤인지를 알고 있는 눈동자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은 우리가 얻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고난의 정체였다.
인내를 그대의 의복으로 삼아라. 의복을 벗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지리라. 인내를 벗지 않는다면 수치를 당할 일도 없으리라.
신념을 그대의 양식으로 삼아라. 육신의 굶주림으로 고통 받지 않게 되리라. 신념을 잃은 인간처럼 불행한 인간은 없다. 실패하고 낙오하는 자들은 대개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신념을 갖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던 사람들이다.
시간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게을리 걸어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날이 오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하루하루 전력을 다하지 않고는 그날의 보람은 없다. 보람 없는 날들의 반복으로 최후의 목표가 달성될 리 없다. 위대한 인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서 위로를 받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서 고통 받기 때문이며, 신을 안다고 말하는 자 중에 신을 사랑하는 자가 극히 적은 이유는 형식과 진실의 거리가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 혼자만을 위한 행복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 인류의 진보, 문명과 예술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다고. 모두 거짓말이다. 그들의 수고는 개인의 야심을 채우기 위한 지극히 사적인 노력이다.
행복의 수단을 통해 달성되지는 않는다. 어떤 목표를 향해 의지의 실천을 했을 때 길의 중간에서 우연찮게 얻은 물 한 모금 같은 것이다. 깃발이 꽂혀 있는 종점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다. 그 깃발을 손에 넣기 위해 어디선가,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실천하고 있다면, 그의 삶은 진정한 행복을 만끽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결국 인생에서 도망치게 된다. 현재의 상태에서 도주를 선택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이 그릇된 상태를 어떻게든 중단시키는 것이다. 내 마음의 심연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한번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의 눈길은 자연스레 마음의 심연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상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는 날까지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상태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그 수단이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목적은 오직 목적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리석은 선택을 되풀이한다.
앞으로도 나는 현재와 같은 상태에 머무를 테고, 그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게 될 것이다. 책무를 다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연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지만, 이 상태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인내만으로 극복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인내를 통해 견뎌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 앞으로도 계속 분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끝이다. 분개는 나 자신을 공격할 뿐이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 분개할 수는 없다.
나보다 앞서 있는 사람을 굳이 봐줄 필요는 없다. 타인과 다른 것을 소유하면 비교당하거나 비교할 이유가 사라진다. 노력해도 앞지르지 못할 것 같다면, 그래서 질투가 나고 괴롭다면 그들과 다른 길로 가는 게 상책이다. 그 길에는 나를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판단 받고 싶지 않다면 그들이 판단할 수 없는 생활을 하면 간단하다. 그들이 하지 않은 선택을 하고, 그들이 관심을 보이지 안흔 것들에 집착하면 해결될 문제다.
인생은 실수와 우연으로 덮여있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다. 실수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실수 뒤엔 항상 우연이라는 것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우연이 무슨 짓을 저질러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수를 성공으로 바꿔줄지도 모르고, 완벽한 계획이 뿌리부터 틀어지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확신을 가질 필요도 없다. 우연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괴테의 말처럼 그냥 안장을 잘 얹고 말을 타면 된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기대해봐야 소용없다. 불행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태만이나 무모함, 불성실함을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불행은 그 자체로 징계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명백히 저지른 실수에 대해 변명하거나 축소하거나 미화할 필요는 없다. 깨끗이 인정하고 징계를 받고 우연히 생긴 비극으로 인생의 페이지에 적어둔 뒤 책장을 덮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사회에 해악을 끼친 범죄자를 위한 교화시설과 그에 소비되는 비용은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선의의 구성원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회복되기 힘든 질병에 오염된 거대한 병원이다.
요즘은 어린아이들마저 가난을 죄로 여긴다. 가난을 죄로 여기는 사상은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대로 죽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들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이 땅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그것은 죄도 아니다. 무능력과 태만의 결과도 아니다.
가난은 원석과도 같다. 이 돌 속에 어떤 보석이 숨어 있는 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더 이상 원석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 돌이 무거운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멀리 던져버릴 기회만 찾고 있다. 이 돌을 깎고 다듬어 인생을 아름답게 꾸며볼 생각은 하지 않고 아무런 수고도 없이 타인이 깎아놓은 수고를 빼앗는 것만 계획하고 있다.
인간은 비겁해졌다.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된 만큼 인간은 비겁해졌다. 가치를 몇 푼의 금화로 환산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비겁해지고 추해졌다. 가난이 죄로 여겨지는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비겁해진 인간을 이웃과 친구로 둬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윤리적 명제’의 근거란 개인마다 다른데, 그에게서는 윤리였지만 타인에게는 범죄가 되는 일도 있다. 명제는 주관적인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혐오도 때로는 감탄이 되며, 감탄이 때로는 죄악이 되기도 한다. 모든 윤리적 명제를 만족시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상품이 아니다. 진열대에 놓인 물건이 아니다. 고객들의 구경거리가 아니다. 상품은 색깔과 광택으로 고객의 눈을 사로잡고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지만, 나는 그들의 손아귀를 거부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이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음대로 나를 진열대에 전시하고 싶어 한다.
내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으며, 이를 판단하는 도덕적 관점도 나의 것이다. 타인이 자신의 도덕적 개념을 들먹이며 나의 행동을 판단하는 것은 권리에 대한 남용이다. 그런 행위야 말로 비도덕의 핵심이다.
나카소네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아 놓쳐서는 안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알았다. 요동치는 환율의 변덕이 없다면, 그리고 공장과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수백만 톤의 석탄과 석유를 수입하는 막대한 비용도 없다면, 일본은 빠르게 회복하고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말년에 “아이젠하워가 원자력을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했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일본은 뒤처질 수 없다. 원자력이 다음 시대를 정의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p.59)
근 1년 사이, 후쿠시마에 관련한 책을 몇 권 읽은 것 같다. 같은 내용을 여러 권 읽으면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기는 하지만, 같은 주제로 모두 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하여(역사서를 읽는 이유 중 하나다. 같은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만나며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달까) 오히려 다채롭다는 느낌이었다. 후쿠시마 폭발 자체를 상세히 기록한 책, 후쿠시마를 둘러싼 세계적 정황에 관해 기록한 책을 읽은 후 만난 이번 '후쿠시마'는 일본 내부의 성장과 상황들을 매우 자세히 기록한다. 원자폭탄 피폭국에서 원자력발전을 통한 에너지자립을 꿈꾸는 일본의 역사와 현재를 매우 체계적으로 기록한 '후쿠시마'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이 책의 저자 앤드류 레더바로우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건의 최고 전문가로 불린다. 나 역시 저자가 기록한 '체르노빌'에 대해 읽었기에 이 책이 더욱 궁금했다. 체르노빌을 참혹할 만큼 생생하게 담아낸 이의 눈에서 바라본 후쿠시마를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인간의 탐욕을 발견하고 암담한 심정이 되었다. 감정이 배제되었으나, 오히려 덤덤해서 더 격앙되게 만드는 그의 문체를 통해 지진과 쓰나미라는 그늘에 가려진 후쿠시마, 사건은 있었으나 책임은 없던 후쿠시마의 민낯은, 어쩌면 전 세계인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거리임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하여 도쿄전력, 노벨상을 받은 니시나 요시오 등 일본의 전력에 대한 욕구와 방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계적 변화를 주시하던 일본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원자력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후쿠시마에 들어선 도쿄전력 자력 1호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고 발전하는 과정이 빠른 호흡으로 기록된다. 이 과정에서 기록된 방사선 피폭 환자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고생은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후에도 일본의 대다수 여론은 '원자력 포기'가 아닌 '원자력의 안전한 발전'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이 놀라웠고, 이로 인해 일본의 원자력이 안전과 발전을 유지하며, 일본의 자긍심을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점 역시 어쩌면 당연한 인과관계를 이루었던 듯하다.
이야기가 절정으로 향하며 표면적으로는 쓰나미와 지진, 그러나 사실은 인간의 욕망이 일본과 후쿠시마를 뒤덮는다. 증거조작을 위해 피폭 노동자들에게 한 장기 적출이나 빗자루로 만들어진 '가짜 뼈' 등은 그들의 '잔혹성'은 우리 민족을 핍박한 '야만인' 시절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고, 그들이 가지는 특유의 '민족 자긍심'은 대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 분노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시절 지난 분노는 아무런 역할을 갖지 못하는 법. 책의 후반부터 기록되는 재난의 복합성, 안전에 대한 인식, 피난민들의 모습과 현실, 정치와 법적 결과 등에 대해서 우리는 더욱 자세히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고, 다른 희생자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견해가 더욱 궁금했으나, 400페이지에 달하는 촘촘히 사건 전개에 간단한 작가의 생각 정리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러나 어쩌면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이 배제된 덕분에 사건이 더 객관적으로 진행되고, 독자는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을 가장 잘 소화하는 방법은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직도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등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후쿠시마 사건을 포함한 대부분의 안전사고가 '인재'에서 비롯됨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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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구명정 20척으로는 1,178명밖에 수용하지 못합니다. 사장님. / 무슨 상관인가. 구명정이 배에서 떠날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타이태닉호는 바다에 가라앉지 않아! (p.9)
다시 4월이다. 나는 망각의 동물이라 때때로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종종 마음이 아프다. 올해 4월이 특히나 마음이 이런 것은, 길을 지나다 우리 아이가 왜 여기저기 노란 리본이 달려 있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그냥 지나쳐보던 것들을, 이제 우리 아이도 유심히 본다는 뜻이겠지. 슬프지만, 알아야 할 이야기를 해주며 코가 시큰했다. 그러다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우회적으로 선박사고에 대해, 안전불감증에 대해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책은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의 사건이나 인물, 장소 등을 각색하여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인데,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그래서 접근성이 좋다. 때로 잔혹한 진실은 너무 아프지 않은가. 아이들이 집중하여 읽을 스토리에, 현실 한 숟가락이 오히려 더 좋다고 느껴진다. 소년 패트릭과 외로운 꼬마 승객 사라가 타이태닉호 안에서 경험하는 이야기는 아이들 시각에서 쓰여 더 몰입감 있고, 타이태닉호를 꽤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현실로 돌아오기”에 기록된 내용은 실제 타이태닉호에 대해 기록하고 있기에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타이태닉호에 대해, 선박에 대해, 선박안전사고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된다.
사실 나는 타이태닉 영화보다 다큐멘터리를 먼저 만났기에 선장에게 보고되지 못한 전보에서부터 마음이 저밋했다. 만약 그 전보다 제때 전달되었더라면, 구명정을 제대로 실었더라면, 승무원들이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110년 전에도, 8년 전에도 가 닿을 수 없기에 그저 마음이 아프기만 한 얘기지만 말이다.
타이태닉호나 세월호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던 아이도 배에 물이 차고, 어수선하게 반도 차지 않은 구명정이, 혹은 너무 넘치게 찬 구명정이 바다로 내려갈 때는 안타까워하며 슬퍼했고, 3등 칸은 왜 탈출하지 못했는지, 연주자들은 탈출하지 않고 왜 연주를 했냐고 계속 물었으나, 정작 계층사회를 설명해야 하는 내가 울컥하여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마지막 장면, 크리스토퍼 성인 목걸이가 툭 떨어지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지더라. 크리스토퍼 성인이 아기 예수님을 어깨에 지고 강을 건넌 분으로, 운전자나 여행자들을 위한 성인이시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작은 편도 아니고, 가볍게 읽어 넘길 이야기도 아니지만,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세월호나 타이태닉호에 대해 직접 알려주기 전에 선박사고에 대한 개념을 이해시켜줄 수 있고, 사전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안전사고에 관한 책을 아이에게 종종 읽어주는 편인데, 안전규칙보다 아이에게 스며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 되지만 혹여나 아이가 위험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안전규칙이 떠오르지 않으면 이런 스토리들이라도 떠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더 다양한 안전동화들이 나오기를 바라며, 많은 아이가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더불어 허리케인 편이나 폼페이 편도 읽어서 하루아침에 일상이 달라질 수 있는 안전사에 대해 인지하고, 대처하는 법을 익히면 좋겠다.
우리는 이렇게 읽었어요.
1. 타이태닉호가 침몰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해보아요.
2. 배 사고가 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보아요.
3. 우리가 살며 만날 수 있는 사건·사고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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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업스트림'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업스트림 사고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현재 하고 있는 경영진단, 내부통제 업무와도 접목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책에서의 사례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이 많고 기업에서의 적용 사례가 많이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번역서지만 읽기엔 부담스럽지 않았다.
#업스트림이란
당신이 친구와 함께 강가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강 쪽에서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어린아이가 물에 빠진 것이다. 두 사람 다 곧장 물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해 강가로 데리고 나온다. 그런데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과 친구는 아이를 구하려고 다시 강물에 뛰어든다. 그게 끝이 아니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아이가 보이고, 또 보이고, 계속 보인다. 두 사람의 힘으로는 다 구하기가 벅찰 정도다. 그때 갑자기 친구가 당신을 혼자 두고 물 밖으로 나간다. "어딜 가는 거야?" 당신이 묻자 친구가 답한다. "상류(upstream)로 가서 아이들을 물속에 던져 넣는 놈을 잡으려고"
#조직을 만드는 이유는 직원들이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는 사실 근시안적으로 일하라고 자격증을 주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처리해야 할 문제가 여기 있다. 그러니 임무를 정의하고, 전략을 세우고, 자원을 조정해서 문제를 해결해라. 그러면 관련 없는 일들은 모두 무시할 수 있는 신성한 권리가 생길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광범위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대응이라는 작은 영역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 그냥 반응하고 대응하는 것. 그게 다다.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신호를 찾아서 그 신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만 있으면 절대 예전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모든 시스템은 특정한 결과를 얻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 - 의료 전문가 폴 바탈덴
#어떤 무의미한 문제 때문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 ' 이봐, 의자를 옮겨야지. 왜 그러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기 위한 내면의 암호다.
#누군가가 그 일을 하겠다고 선택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심리적적격기준 : 단순히 어떤 일이 나에게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다. 그게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가 있으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지위가 생긴다. 데이트 강간에 대한 항의 시위에 동참하기를 꺼리는 남자는 그 문제에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터널링(tunneling) : 한꺼번에 많은 문제를 겪는 사람은 그걸 전부 해결하려는 노력을 포기한다. 그리고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은 제한적인 시야를 받아들인다. 장기적인 계획도 없고 사안에 대한 전략적인 우선순위도 없다. 터널링 증후군은 업스트림 사고의 세 번째 장벽이다. 우리를 단기적이고 반응적으로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터널 안에서는 오로지 직진만 가능할 뿐이다.
#결핍과 터널링 증후군은 특히 사무실 청소나 대장내시경 검사, 유언장 작성처럼 중요하지만 아주 다급하지 않은 일을 미루게 한다. 그것들은 즉각적이고 불가피해 보이면서도 미루기 쉬우며, 그 이익은 터널 밖에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긴급한 일이 모두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린다.
#직원들이 터널에서 나와 문제를 시스템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구조화된 느슨함'이라고 한다. 이것이 갖추얼질 때 업스트림적인 행동이 일어난다.
#업스트림으로 나아가기 위한 7가지 행동 전략
1. 꼭 필요한 사람을 모집해 문제의 심각성을 가인시켜라: 인재
2. 문제를 유발하는 구조를 재설계하라 : 시스템
3.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지렛대를 찾아라 : 개입 지점 탐색
4. 위험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라 : 경보 시스템 구축
5. 데이터를 의심하라 : 허깨비 승리 방지
6. 코브라 효과를 경계하라 : 부작용 방지
7. 결국, 문제는 돈이다 : 비용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목표와 자신들의 진척 상황을 측정할 수 있는 유용한 실시간 데이터를 제공한 뒤 실무자들이 알아서 하게 놔두면 최고의 성과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확률을 결정하는 기계다.가장 훌륭하게 설계된 시스템 하에서는 (기대수명이 가장 높은 지역처럼) 성공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고 유리하다.
#업스트림 작업은 문제가 발생할 확률을 줄이는 행위다. 그러므로 그 작업을 통해 결국 시스템을 변하시켜야 한다. 시스템은 확률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곧 우리를 지배하는 규칙이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를 바꾼다는 것이다.
#사업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때로는 환경을 약간만 바꿔도 문제가 해결된다. 어떤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는 손님들이 음식을 받아온 플라스틱 쟁반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자 매장은 쟁반이 들어가지 않는 작은 원형 구멍이 있는 쓰레기통을 설치했다. 이로써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됐다.
#법은 그저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일련의 규칙일 뿐이다. 규칙을 바꾸려면 투입되는 힘을 바꿔 결과가 달라지게 해야 한다.
#문제에 접근해 가능성 있어 보이는 지렛대와 받침대를 발견했을 때 그게 자기가 찾던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공 가능한 개입 지점을 찾는 첫 번째 단계는, 자기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위험 요소와 보호 요소가 무엇인지 고려하는 것이다.
위험 요소와 보호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특정한 소집단을 지렛대로 삼을 수도 있다.
#물론 가까이 있다고 해서 발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그건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업스트림적인 변화는 머뭇머뭇 앞으로 나아가며 무엇이 효과적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알아내는 과정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런 맥락에서 보면 패배도 사실은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를 찾아다니면서 뭔가를 배울 때마다 지도의 빠진 조각을 하나씩 채워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누가 상품을 해지할 것인지를 얼마나 빨리 예측할 수 있을까?' 그들의 생각은 이것이었다.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다면 그만큼 문젱 빨리 개입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고객을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모든 자원을 고객이 상품에 익숙해지도록 돕는 데 투입하기로 했다.
#우리가 성공을 측정하는 방식과 세상에서 보고자 하는 실제 결과(성공)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실패를 감추고 표면만 성공으로 두르는 '허깨비 승리'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첫번째 유형의 허깨비 승리는 '밀물은 모든 배를 뜨게 한다(A rising tide lifts all boats)'는 엣 속담을 반영한다. 한창 사업이 잘되고 있다면 그것이 밀물 때문인 것은 무시한 채 성공했다고 선언하고픈 유혹을 느낄 것이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그보다 쉬운 부분에 답을 하곤 하는데, 이때 자기가 어려운 문제를 쉬운 것으로 대체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신들의 이론이 성과를 내는지 확인하기 위해 4년을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이끌어가면서 계속 조정할 기회를 주는, 좀 더 현재와 가까운 지표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일정한 숫자를 달성한 것에 보상을 받고 실패 시 벌을 받게 된다면 그들은 부정 행위를 할 것이다. 통계를 왜곡하고, 대충 넘어가고, 사건을 다운그레이딩할 것이다.
#이중측정법 : 수량을 중심으로 기준을 정하면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양적 측정기준과 질적 측정기준의 균형을 확실히 맞췄다. - 인텔의 전 CEO 앤디 그로브 (Andy Grove)
#업스트림 활동 전에 필요한 질문
1. 밀물 테스트
2. 정렬 오류 테스트
3. 게으른 관료 테스트
4. 목표 훼손 테스트
5. 의도치 않은 결과 테스트
#시스템에 대해 생각할 때는, 애초에 그 시스템에 집중하게 만든 문제뿐만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기에 좋은 위치에서 시산을 보내야 한다.
#업스트림 활동을 계획할 때는 자신의 업무 범위 바깥을 봐야 한다. 렌즈를 줌아웃하고 좌우를 살펴야 한다. '적절한 수준에서 시스템에 개입하고 있는가? 지금 진행 중인 활동의 2차 효과는 무엇인가?' 만약 특정 요소를 제거한다면 그 공백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특정한 문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투자할 경우 결과적으로 관심이 줄어드는 부분은 어디이고 그런 무관심은 시스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2차적인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면 재앙이 발생한다. '코브라 효과'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 방법이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걸 뜻하는 말이다. 이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 영국의 어느 행정관이 델리에 코브라가 창궐하는 걸 우려하던 사건에서 유래됐다.
#열린 공간이 대면 협업을 장려할 것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
#먼저, 어떤 계획을 세웠든 간에 그게 잘못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피드백 메커니즘과 측정 시스템을 갖추는 것뿐임을 알아야 한다.
#NFP는 공인 간호사와 처음 임신한 저소득층 임산부를 일대일로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임산부가 아이를 가지게 됐을 때부터 아이가 태어난 지 2년이 될 때까지, 똑같은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자신과 연결된 여성의 집을 방문한다. 간호사는 엄마가 양육에 따르는 불안감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 역할을 한다.
#업스트림 활동과 돈에 대한 문제는 결국 세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가 어디에 존재하는가? 누가 그런 문제를 예방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그 일을 하도록 유도할 동기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선지자의딜레마 : 무엇가를 예측함으로써 예측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스스로의 실현을 방해하는 예측이다. 실은 비관론자들의 경고가 실제로 하늘이 무너지는 걸 막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Y2K 버그는 선지자의 딜레마의 한 예다.
#개인은 어떻게 업스트림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자신의 문제 불감증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실 금방 해결할 수 있는데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 문제가 있는가?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업스트림 사고는 조직만을 위한 게 아니라 개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살면서 자꾸 반복되는 문제가 있다면 상류로 가자. 그리고 아주 오래된 문제라도 단념하지 말자. 이런 옛말이 있다.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때는 20년 전이고, 두 번째로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
#사회의 더 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면
1. 행동은 서두르고 결과는 인내하라.
: 행동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다. 다운스트림 활동은 좁고 빠르다. 업스트림 활동은 넓고 느리다.
2. 크고 중요한 일도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기억하라.
3. '알약'보다 '득점판'을 선호하라.
#'네가 처음 왔을 때보다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라.' - 보이스카우트 창시자 로버트 베이든 파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