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나는 평소에 잘 읽지 않던 종류의 책, 혹은 읽기를 미뤄왔던 책꽂이 속 책들을 하나씩 꺼내 읽는 중이다. 꽂혀만 있고 늘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두터운 시리즈물을 완독했고, 잔소리 범벅의 육아 서적도 읽었고, 무려 시집까지 읽었다! 완독은 못 했지만 틈틈이 자기계발서도 한 권 읽어내고 있다. 강한 다짐 없이는 시작조차 못 했을 시도들이었는데, 생각보다 즐거울 땐 스스로 놀랐고, 예상대로 재미없을 때에도 ‘그래도 해봤다’는 뿌듯함이 남았다.
그 기세로 이번엔 1년 만에 SF 소설에 도전했다. 가장 최근에 읽은 SF는 1년쯤 전의 『아리아드네의 목소리』였다. 다 읽고도 일기에 한 줄 쓰지 않아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았지만, 내용은 또 강렬하게 남아 있어 챗GPT를 들들 볶아 겨우 찾아냈다. 지진으로 붕괴된 지하도시에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드론을 띄우는 이야기. 지하 도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읽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기억이 난다. 예전 SF책들의 독후감을 다시 봐도 늘 SF는 취향이 아닌데-가 기본 디폴트로 적혀있다. 내 상상의 한계인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 SF 안좋아한다는 말을 늘어놓으며 그동안 읽었던 SF소설들을 떠올리자니 또 내용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게, 내 뇌리가 자극적으로 받아들이긴 했나보네? 싶다. 블랙미러는 좋아하는데.. 나 SF 좋아하나?
여러 작가가 ‘음식’이라는 한 주제로 쓴 에세이집 『요즘 사는 맛』을 읽다가 천선란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다. 좋아하는 작가를 찾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던 터라 SF작가라는데에 조금 망설여졌지만.. 대표작만 읽어보자며 침을 한번 꼴깍 넘겼을 정도로 큰 결심을 하고 책을 펼쳤다. (실은 이북 리더기를 눌렀다.)
SF가 어렵게 느껴졌던 건 배경이 너무 낯설어서였던 것 같다. 지하도시, 우주, 심해, 괴생명체 뭐 그런 것들. 그런데 『천 개의 파랑』은 아주 생경한 세계는 아니다. AI와 로봇이 더 발달한 가까운 미래, 경마장의 기수마저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설정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작 단계에서 인간의 작은 실수로 감성MAX 로봇 기수가 된, 인간 같은 휴머노이드 콜리는 낙마 사고 이후 폐기 직전에 놓인다. 콜리가 타던 경주마 투데이 역시 성적 부진과 부상으로 안락사 위기에 처한다. 인간에게 쓸모가 사라지면 곧 버려지는 세계. 경마장 근처에는 가족의 사고 이후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자매 연재와 은혜, 엄마 보경, 그리고 연재의 친구 지수가 있다. 이 소설은 콜리와 투데이를 살려내려는 그들의 이야기다.
내가 두 딸을 둔 엄마여서 그런가, 보경의 서사만 나오면 눈물이 그렇게 났다. 배우의 길을 차근차근 걷다가 가스폭발사고로 얼굴과 몸이 망가지고, 하지만 그 불의의 사고에서 자신을 살려준 소방관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두 딸을 낳는다. 큰 아이에게 장애가 생기고, 엄마가 암 재발로 세상을 떠나고, 남편이 화재현장에서 순직한다. 갑작스레 홀로 아이 둘을 키워내야했던 보경은 죽기살기로 살다보니 아이들과 멀어졌다. 장애가 있는 큰아이는 아픈 손가락이고, 희생을 강요해야만 했던 작은 아이는 신경이 손상된 손가락이었다는 문장이 아리다. 작은아이 연재와의 관계가 회복되어가는 과정이 특히나 감동적이고 슬퍼서 눈물이 나왔다. 엄마 나오는 영화는 왜 자꾸 보는 거야 연재야- 슬프게!
콜리는 생각하는 것도 어느정도는 인간 같은 휴머노이드지만 결국에 기계는 기계라, 아주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데 그것들이 굉장히 명언집이오 교훈덩어리다.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연재는 실수가 기회와 같은 말이래요.“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신경 쓰지 마요, 저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굳이 들을 필요 없어요. 모든 것을 듣고 살 필요 없어요.” 등등 띵언이 너무 많아서 아마 종이책으로 읽었으면 형관펜으로 너덜너덜해졌을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왜 제목이 천 개의 파랑인지 알게되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읽기 전에는 작가가 천씨여거 천 개의 파랑인가 했는데. 바보같지만. 백씨였다면 백 개의 파랑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합리적 의심이 조금은 들긴한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콜리야 투데이야 외치겠지만.. 나는 보경아 하고 부르며 울고 싶다. 약간 보경의 러브스토리를 읽은 기분이기도 하고. 보경아- 앞으로는 꽃길만 걸어-.
아무래도 내 힘만으로는
아니지싶다.
누군가 등을 밀었거나
앞에서 손잡아 이끌었지 싶다.
어찌 내 능력만으로 내 공덕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p.196, '봉화행' 중에서)
요즈음 내가 하고 있는 기도가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이를 구분하는 지혜도 주소서”라는 기도다. 사실 마음의 평정이 필요해 시작한 기도인데, 나태주 시인의 신작 여행시집,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를 읽는 내내 내가 이 기도의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며 나이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를 읽으며, 이 책이 단순히 그가 탄자니아를 여행하는 것, 후원하던 소녀를 만나기 위해 탄자니아를 방문한 여행기만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순간 순간의 소중함과 감사함까지 담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 역시 내 삶에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되고, 가지지 못한 것을 욕심내지 않는 평온을 추구하자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
탄자니아의 붉은 흙과 바람, 그리고 햇빛 속에서 느낀 생명을 134편의 시와 62점의 연필화로 표현한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는, 현지에서의 감상, 지나온 삶과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감사, 그의 몸과 마음이 머물더 장소들을 차례로 떠올린다.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라는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 사실 우리의 모든 순간은 빛나고, 소중한 시절들이었다는 깨달음을 독자에게도 슬쩍 전해준다. 또 여행과 독서, 실패와 질병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을 읽으며 어쩌면 이 조차도 순간순간을 읽고, 여행하고, 배우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추며 살으라는 가르침은 아닌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분명 시인이 선함을 나누어준 탄자니아 소녀를 만났으나, 독자인 내가 내 주변인들과 나의 환경, 나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아마 나태주 시인 역시, 그 소녀에게 그저 주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은 나누었으나, 그로인해 스스로의 마음이 더 따뜻해지고 행복해졌을 터. 이런 생각을 하며, 인간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태주 시인의 시들은 언제나 잔잔하게 아름다웠다. 그런데 오늘의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는 “잔잔한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덤덤한 일상의 감사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결국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 한잔의 커피, 볼을 간지럽히는 바람, 책 한 장의 문장 등이 아닌가. 나도 매일매일을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하고 말할 수 있도록 내게 주어진 매일매일을 만족하고,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가고, 더 감사하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알로하나의엄마들#이금이
일제 강점기, 사진 결혼으로
하와이로 간 세 여성의 이야기
❝포와로 시집가면 공부할 수 있다는 말 참말이지예?❞
✔ '사진 신부' 뒤에 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코끝 찡해지는 '엄마'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다면
✔ 역사를 바탕으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님의 팬이라면
📕 책 속으로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버들, 홍주, 송화는 사진 신부가 되어
천국 같은 새로운 삶을 꿈꾸며
포화(하와이)로 가게 된다.
공부하고, 자유롭게 사랑하며
새로운 삶을 꿈꿘던 세 친구는
각기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머나 먼 이국땅에서 펼쳐지는
험란하고 고된 이민 생활 속에서도,
고된 하루를 견디며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껴주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하와이 이민 1세대 여성들의 이야기
📕 한 줄 소감
영화 한 편을 본 듯 생생하다.
+ 세 여성의 인생 이야기
+ 일제 강점기 하와이 이민자들의 삶
+ 하와이 한인 사회 내 독립단의 분열
미처 알지못했던 아픔을
이제서야 생생하게 느꼈다.
슬프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
이렇게 꼿꼿하고 우아하며 씩씩한
여성 인물들이 또 있을까.
🌿<디아스포라 3부작> 중
이제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만 남았다.
읽기도 전에 또 강추할 것 같은 예감!
[추천합니다] [강추]
#디아스포라#슬픔의틈새#거기내가가면안돼요
[2026_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