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에 치여 흔들리고 부딪히는 자갈돌
주인공의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는 큰 미스터리 줄기 아래,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에 휘둘리는 소시민의 삶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미스터리보다는 주인공이 점차 성장하는 성장소설로 느껴졌다.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사소한 사건들을 쌓아올리는 전개를 통해 독자는 주인공에게 이입하며 보다 애달프고 보다 심각하게 작중 사건들을 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마오마오와의 사랑이야기가 가장 애달프게 다가왔다. 여느 커플과 같이 사랑이 식고 이별이 다가온 줄 알았으나, 후반부 마오마오가 떠날 수 밖에 없던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며 어른으로 나아가는 성장판이 된다.
아시아 역사의 흐름 상 전쟁과 관련된 묘사는 피할 수 없다. 특히 이 작품은 전쟁 속 서로 반대편에 서 있던 이들의 자기합리화 성향이 짙게 나타나기 때문에 식민지의 아픔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느끼는 지점이 몇몇 존재했다. 다만 일개 시민으로서 자신이 살기 위해 한 행동의 합리화 과정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다라는 생각도 존재했기에 그 점에 매몰되어 작품을 오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읽었다.
무지했던 대만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무난한 성장소설이었다.
1장
- 2021년 말, 러시아는 미국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와 공격무기 배치 철회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전면 거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또한 나토 가입 의사를 철회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외교적 타협의 공간은 사라지고 군사적 충돌만이 남게 되었다. "나토 가입 의사를 철회하지 않아서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는 뉘앙스"가 드러난다. 이어 세계의 대장은 미국이고 미국의 뜻대로 정리되는 것에 부정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저자의 관점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2020년대 중반 세계를 화약고로 만드는 트럼프의 행태 볼 때는 일리가 있는 지점도 있다. 그리고 20세기 ~ 21세기의 미국의 주도하의 대외정책의 부작용은 여러 국가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장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랍인들에게 독립 국가 건설을 약속한 '맥마흔 선언(1915)'을 했으나, 동시에 유대인 금융 자본의 지원을 얻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민족라를 건설해주겠다는 '밸푸어 선언(1917)'을 발표했다.이 모순된 두 약속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피의 역사의 서막이었다.
3장 아프가니스탄
- 러시아 미국 등 대형 외세를 물러나게 한 국가지만 아이러니하게 세계에서 가장한 나라 중 하나이며 문화적으로도 억압이 강한 문화인 것이 아이러니 하다.
4장 중국과 대만 분쟁
- 중공을 피해서 왔지만 본성인들을 밀어내며 무자비한 독재를 시행한 장제스와 국민당. 38년의 계엄령으로 섬을 억압한 자신의 후신을 쑨원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6장 인도 파키스탄 분쟁
-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분쟁은 영국의 '분할 통치'가 낳은 최악의 비극이다. 영국은 철수 과정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을 부추겼고, 주민 구성(이슬람 다수)과 통치자(힌두교 영주)의 종교가 다른 카슈미르 지역을 화약고로 만들었다. 현재 이 지역은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악사이친)까지 얽힌 복잡한 3파전 양상을 띠고 있다.
7장 튀르키에 쿠르드
- 쿠르드민족은 외세 융화를 철저히 기피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독립을 위해 가장 외세에 이용당해왔다.
9장 미얀마 내전
-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 학살 방관으로 평판이 실추된바 있다. 하지만 그 뒤의 사정은 복잡한데, 로힝야 민족은 미얀마의 식민지 시절 영국의 위세를 입어 버마족과 다른 소수민족 탄압한 전적이 있다. 21세기 영국은 로힝야 족 학살을 비판하지만 그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직접적인 학살은 군부가 주도했고 증인으로 나온 수치가 덤터기 씌어진 면이 있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으로 현재의 로힝야 족이 탄압받아야 한다는 연좌제는 옳지 않다.
※ 책을 읽은 뒤 공유하고 싶은 질문들
Q1 전쟁의 발발 원인
- 저자는 젤렌스키 정부가 NATO 가입 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미국의 입장을 고수한 점을 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합니다. 이는 '주권 국가의 정당한 권리 행사'일까요, 아니면 '지정학적 현실을 무시한 외교적 실패'일까요?
Q2 전쟁의 결말
- 저자는 "한쪽의 일방적 승리보다는 타협이 낫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러시아에 면죄부를 주는 식의 '어정쩡한 휴전'이 과연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잠재적인 화약고를 남기는 것일까요?
Q3 내부의 적, 극우화
- 이스라엘 내 세파르디(이베리아/아랍계 유대인)와 러시아계 이주민들이 오히려 더 극우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을 띠며 네타냐후를 지지한다는 분석이 흥미롭습니다. '사회적 약자'였던 이들이 왜 더 강경한 노선을 택하게 되었을까요?
Q4 영웅의 추락
-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치가 로힝야족 학살을 방관하고 옹호하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를 '현실 정치의 한계'로 이해해야 할까요, 아니면 '인권 감수성의 결여'로 비판해야 할까요?
Q5 소수민족 탄압의 내막
- 로힝야족이 식민지 시절 영국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버마족의 탄압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역사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Q6 통일과 분쟁
- 저자는 "전쟁은 나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휴전 국가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힘에 의한 평화(군비 증강, 동맹 강화)'와 '대화를 통한 평화(외교, 타협)'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스티스의 한 뼘 더 깊은 세계사(중동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육의 역사에 관해 강의를 할 때 종종 세계사를 언급하고 교육과 연결해서 강의를 한다.
교육의 역사는 곧 그 시대 사회의 역사와 연결된다.
올해 상반기 토요일 교육대학원 강의에서 학생들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과 아랍인의 전쟁에 관해 토의를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하마스 간의 전쟁은 2025년 12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가자지구에서 심각한 인명 피해와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나는 그때 학생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 내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이 원래 아랍인들의 거주지였고, 유대인들이 이주를 하면서 영국이 오스만제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두 나라를 이용했던 역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오스만 제국이 제 1차 세계대전 중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영국과 격렬한 전쟁을 벌였던 곳이 팔레스타인 지역이었다. 영국은 당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 전쟁 승리 후 독립을 약속하였고 아랍인들은 영국을 위해 오스만 제국과 싸웠다.
그러나 전쟁 자금이 필요했던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에게도 똑같은 약속을 했다. 전쟁 후 이스라엘 독립이라는!
결국 전쟁 상황이 악화되면서 영국이 미국을 전쟁에 끌여들이면서 전쟁 후 팔레스타인을 유대인들에게 넘겨주겠다는 약속에 힘입어 이스라엘이 먼저 독립국가 선포를 하게 된다.
1922년 팔레스타인 인구는 약 59만 명 이슬람교도와 8만 명의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은 아랍계 사람들이 사람들이 살 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가자지구(하마스가 사실상 통치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의해 국경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어 '세계 최대의 감옥'으로 불리기도 한다)와 이스라엘의 동쪽에 위치한 서안지구에만 현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중동전쟁의 역사를 보면,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의 횡포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분명히 보인다.
이 책을 보면서 예전에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하고 강력했던 식민 제국을 건설했던 영국을 대영제국이라 불렀던 이유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다.
'대(大)'라는 접두사는 단순히 '크다'는 의미를 넘어, 압도적인 규모, 권력, 영향력을 상징하며, 이는 제국주의 시대 영국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1921년 최전성기에는 지구 육지 면적의 약 4분의 1과 당시 세계 인구의 약 5분의 1 (약 4억 5천만 명)을 지배했던 나라가 영국이었다. 캐나다, 호주, 인도, 이집트, 남아프리카 등 전 세계 5대양 6대주에 걸쳐 식민지를 보유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영토가 너무 넓어서 지구 어디에서든 대영제국의 땅에는 항상 해가 떠 있다는 의미로, 그 압도적인 규모를 상징하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니!
과거의 역사는 미래가 심판 한다는 말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범이란 세력과 이스라엘 간의 충돌은 앞으로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이 될 수도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전후, 영국이 취한 이중적인 약속과 제국주의적 분할은 중동 지역의 민족, 종교, 영토 갈등을 폭발적으로 심화시킨 근본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향후 중동 지역의 전쟁에 대한 책임도 또한 영국에 있다고 본다.
모순된 약속으로 오늘날 중동 전쟁의 최고의 근원을 제공한 영국은 현재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전쟁으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세계사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 분야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또한 나의 책임이다.
고대 바빌론에서 시작해서 오늘날의 유럽, 미국, 러시아 등의 강대국이 성장한 배경을 중동의 역사와 함께 연결해서 읽는 재미는 흥미로움 그 자체다.
다음 학기 부교제로 학생들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역사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 만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세계사를 알고 앞으로의 정세를 파악하고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계획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책이 너무 흥미로워 대학생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음 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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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림호 옆 깊은 숲 속에 자리한 오래된 적산가옥.
어린 시절 그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겪었던 규호는, 세월이 흘러 큰아버지에게서 그 집을 유산으로 상속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교도소 근무 중 징계와 감봉, 그리고 아픈 딸의 치료비로 삶이 기울어가던 규호에게 이 집은 다시 시작할 기회처럼 느껴진다. 그는 아내 수현과 쌍둥이 실비·실리와 함께 그 집으로 이주하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도착한 지 오래지 않아 집은 이상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밤새 들리는 발소리, 벽과 천장을 타고 흐르는 기척, 아이들을 향해 뻗는 보이지 않는 손길, 집안 곳곳에 스며 있는 숨결 같은 체온. 환영인지 실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존재들이 가족을 뒤흔든다.
그 와중에 수현은 집 안의 낡은 책상에서 1945년에 이곳에 살았던 여성 ‘나오’의 실험 기록과 편지들을 발견한다.
식민지 조선 시절 지방 병원으로 부임해 고립된 채 살아가던 의사 나오가 남긴 흔적.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매달리고, 죽음을 뒤집고, 생명을 다시 잇고자 했던 절박한 시도들.
규호의 가족이 집에서 겪는 기이한 사건들이 계속될수록, 나오의 기록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깨어나고 있는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집은 단순히 흉가가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을 품고, 기다리고, 선택한다.
그리고 80년 전 억눌렸던 욕망과 슬픔, 집착과 사랑이 2025년의 현실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공포 소설이라 해서 소름 돋는 자극적 장면을 기대했는데, 읽다 보니 더 두렵고 잊히지 않는 것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집’이었다.
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을 품고 기다리고 선택하는 존재다. 읽는 동안 나는 한 채의 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집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1945년, 1995년, 2025년. 세 사람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로 다른 시공간이 한 지점에서 연결될 때마다 공포가 차곡차곡 쌓여 올라간다.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는 속도보다, 누군가의 절박함과 상처가 기어 나오듯 드러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집이 사람을 붙잡는 이유.
누군가가 그 집을 떠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이유.
그리고 떠돌아다니는 환영들의 정체.
공포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오히려 더 서늘하고 더 안타깝다.
특히 인물들 살아 있는 사람, 이미 떠난 사람,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걸친 존재들
모두가 무섭고 불길한 동시에 이해되고 짠했다.
되돌리고 싶은 마음, 잃은 것을 다시 붙잡고 싶은 마음은 너무 인간적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 마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끝에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는지 바라보는 과정이 이 책의 진짜 공포다.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욕망과 상처, 기억과 죄를 품고 이어가는 생명체다.
그 생명은 길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이어진다.
공포 장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당연히 추천하고,
공포를 즐기지 않는 분들도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서늘한데 따뜻하고, 무서운데 슬프고, 잔혹한데 아름답다.
이런 소설은 흔하지 않다.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이야기 정말 그 말 그대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