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란 고민에 심취하였다. 지금도. 존경하고 애정하는 신형철 작가님의 추천에 십년전 책을 중고서점에서 데려왔다.
책을 읽고 나서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얻은 것은 아니다. 다만 분인주의라는 시점이 제법 흥미로웠으며 받아들임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나도 그러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었던 참이었어서. 나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님과 친구, 연인과의 대화. 감동받은 책과 영화들. 여행에서 만난 풍경. 타자에게서 받은 것들이 나를 이룬다. 나는 너희들의 총합체야. 내가 사랑하는 너는 어떨까. 너또한 네가 만난 타자들로서 너를 이룬다. 그런 명칭없는 생각에 분인이라는 단어를 지정하고 설명한 책이 이 책이었다.
여전히 그것만이 나라고 말하기엔 석연치 않지만 그것이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p.87 모든 쾌락에는 대가가 따르고, 거기에 따르는 고통은 그 원인이 된 쾌락보다 더 오래가며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p.87 반복적인 쾌락으로 우리의 신경 설정값이 높아지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바라면서 끝없이 갈등할 것이다.
책을 읽고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용이 참 고급지다.’
‘대화의 수준이 확실히 다르구나.’
‘에커만이 조금 불쌍하다.‘
‘괴테도 약간 꼰데 기질이 있네.’
먼저 내용이 고급지고, 대화의 수준이 다르다고 느낀 이유는 괴테와 에커만이 주고받는 다양한 이야깃거리 때문이다.
두 거장은 여러 문학장르를 필두로 정치, 철학, 종교, 음악, 미술, 건축, 자연과학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데, 놀라운 점은 그들의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지식의 양이 한 사람이 평생 쌓기도 힘들 정도로 깊고 방대하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괴테는 천재였고, 에커만은 그 천재와 대화가 가능한 또 다른 천재였다.
그럼에도 에커만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가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로 살기 보다 괴테의 그림자로 산 것 같아서이다.
에커만은 인생의 주요한 변곡점이 될 선택을 앞두고 언제나 괴테의 의견을 묻고, 괴테의 견해에 따랐다.
결국 에커만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자신이 저술한 가장 유명한 작품의 제목 조차 ‘괴테와의 대화’일 정도로 괴테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괴테에 버금가는 천재였으나 끝내 스스로의 날개를 펴보지 못 한 에커만의 생애가 나는 몹시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괴테에게 약간 꼰데 기질이 있다고 느낀 이유는 그가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색채론에 대해 에커만이 타당한 반론을 제기했을 때 매우 못마땅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에커만은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런 괴테의 태도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에커만이 얼마만큼 괴테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지 느낄 수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의 여정에서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나를 옳은 길로 안내해 줄 멘토를 만난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그러나 한 번뿐인 인생을 오롯이 멘토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섣불리 그렇다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에커만을 탓할 수도 없다.
그저 예수님의 제자들이 후세를 위해 성경을 남긴 것처럼 괴테의 주옥같은 말들을 남긴 에커만에게 고마움을 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