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 둘러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풀어가는 방식만으로도 저자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일부는 동의한다. 진실 앞에 겸손하지 못한 인간은 온 세상을 왜곡하기 십상. 비좁은 눈에 비친 비틀린 풍경에 모두를 짜맞추다보면 언젠가는 저 자신조차 비트는 날이 오겠지.
물론 이성도 인간을 배신한다. 퇴행처럼 보이는 것도 진화의 일환일 수 있듯, 오늘 진보라 부르는 것도 절멸에 다가서는 길일 수 있다. 그러나 실패의 위험에도 범주를 짓고 이름을 붙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다가서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므로.
데스조가 비열한 놈인 것과 물고기에 대한 열정은 다른 문제다. 별개의 문제를 관련된 것처럼 의미지은 이 책의 결말이 스스로 비판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분류학적 구분과는 별개로 물고기는 존재한다. 책이 내게 와닿지 않은 건 나는 물고기가 존재하는 이유에 더 관심이 있는 까닭이겠다.
며칠 전 읽었던 단편소설 <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의 작가 유즈키 아사코의 대표 장편소설 중 하나인 <버터>를 읽었다. 사실 이전 독후감을 적을 때, 집에 이 책이 있었기 때문에 뭐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마음으로 ‘조만간 유즈키 아사코 작가의 장편소설도 읽어봐야겠다’고 적었더랬다. 정말 집에 있으니까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두껍고 무거운 책에서 오는 부담감에. 그런데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딸이 이 책을 영차영차 들고오더니 “엄마 책! 엄마 거야. 엄마 읽어.” 라는 거다. 어쩌겠는가. 읽어야지.
이 소설은 일본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해야할지 참고하여 쓰여졌다고 해야할지,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쓰인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수도권 연속 의문사 사건’이라 불리고 있단다. 수도권에서 여러 명의 남성이 비슷한 방식으로 잇따라 사망하면서 시작된 사건으로, 피해자들은 대부분 중년 남성이었고, 기지마 가나에(木嶋 佳苗 키지마 카나에)라는 한 여성과 교제하거나 결혼을 약속한 뒤 갑작스럽게 사망했으며,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그 여성에게서 거액의 돈이나 보험금이 이동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의심이 커졌고, 그녀가 여러 남성과 동시에 관계를 맺으며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만든 뒤 죽음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사건이 큰 논란이 된 결정적인 요인은, 범인인 기지마 가나에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꽃뱀’의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설 주인공은 마치다 리카라는 주간지 기자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수도권에서 여러 남성이 잇따라 의문사한 사건의 핵심 인물로 체포된 여성 가지이 마나코를 취재하게 된다. 리카는 가정적인 친구 레이코의 “원래 요리 좋아하는 사람한테 레시피 물어보면 신나서 시시콜콜 묻지도 않은 것까지 얘기하거든. 이건 절대 원칙이야.”라는 조언을 듣고 가지이에게 편지로 그녀가 체포되기 전에 블로그에 적었던 음식에 대한 레시피를 묻는다. 가지이는 대부분의 기자를 거부하지만 리카에게만 답장을 보내며 면회를 시작하고, 대신 자신이 알려주는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먹어보라는 조건을 건다. 리카는 가지이가 추천한 버터 요리와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씩 듣게 되고, 레이코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가지이의 고향을 방문해 가족과 동창을 만나고, 가지이가 다니던 요리수업에도 잠입해 직접 겪어보기도 한다. 취재가 계속될수록 가지이가 실제로 남성들을 죽였는지, 아니면 사회의 편견 속에서 범인으로 만들어졌는지 점점 모호해진다. 이 과정에서 리카는 자신의 삶과 가치관도 바뀐다.
실은- 엄청 재미있지는 않았다. 뭐랄까, 분명 읽고는 있고 내용을 따라가고는 있는데 이게 내가 지금 제대로 읽고있는게 맞나하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잘 짜여져있긴 하다. 사건 하나를 보고 이렇게까지 모든 등장인물에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 느꼈다. 계속해서 나오는 버터와 꼬마삼보이야기가 잘 녹아들어있고, 제목이 왜 버터인지도 너무 잘 알겠다. 버터에 대한 표현력도 훌륭하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뭐하나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가지이는 정말 남자들을 죽인 것인지, 마지막 네 번째 남자가 가지이 어린 시절 동생을 강간하려던 그 놈이 맞는 건지 말이다.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가지이는 병적으로 허언증을 앓고있을 뿐 살인자는 아니고, 네 번째 남자는 랜덤의 남자일 뿐인 것 같다. 명확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그런 뉘앙스로 느껴졌다.
일단 작가에게 가지이가 살인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실제 수도권 연속 의문사 사건의 가해자가 사건 자체가 아닌 외모로 더 큰 화제를 낳았다는 사실에 더 꽂혔던 게 아닐까. 왜 여자는 살인을 저질러도 얼평이 우선적으로 화두에 오르는 걸까-라는 점 말이다. 주인공 리카가 가지이를 취재하며 버터의 맛을 알게된 후 평생 알게모르게 자제해오던 식욕을 터뜨리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는 10kg나 체중이 증가하는데, 166cm에 58kg이 되었다고 살이 쪘다며 주변에서 눈칫밥을 먹는다. 세상에. 다행인 것은 리카가 이 사건조사를 통해 결국 가치관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왜 먹는 걸 항상 참았지? 왜 남들이 정한 기준대로 살아야 하지? 왜 여성의 욕망은 항상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될까? 이게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핵심인 만큼, 가지이가 범인인지 아닌지보다는 리카의 변화를 더 집중한 것이겠지.
내일 아침에는 아이들과 버터간장밥 먹어야겠다.
ai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가 되고 각각의 노동으로 세금을 내며, 그 세금으로 기존의 인류는 노동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니..
그냥 도구라고만 생각해봤지 하나의 인격으로 탄생될 수 있다고는 못 느껴봤다
군사영역에서도 전쟁윤리에 측면에서 다수의 드론, 무기체계가 스스로 적국의 무기체계 뿐 아니라 군인, 심지어 민간인 까지 무자비하게 학살할 경우(전쟁범죄 등)
이를 해당 ai의 인격 삭제로 처벌은 끝날수 있는가?
언젠가는 인간의 통제가 거의 없이 전투가 진행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개발자나, 운용을 승인한 제대에서 책임을 져야 흐는가? 아니 책임을 질 수나 있는가?
ai는 도덕적 죄책감을 느끼고 이로인해 범죄 및 안전사고에 악용되지 않도록 발전될수 있는가?
이러한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러우전쟁, 최근 미국-이란의 전쟁의 양상,
'아이 인 더 스카이'라는 영화를 보며 교전 승인권은 어디까지 위임될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이 든다.
언젠가는 연애 한 번에 꺄아, 꺄아 하고 소란을 피운 일을 회상하며 ‘그땐 참 젊었네’ 하고 웃어넘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다 능숙해지더라도, 상처 입었을 땐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땐 제대로 꺄아, 꺄아 소란을 피우자. 몸부림치자.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자.
<전남친 최애음식 매장위원회>, 가와시로 사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