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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독리뷰
〈하다 앤솔러지〉 첫 권 『걷다』는 정말 제목 그대로, ‘걷기’라는 단순한 행위가 삶 속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의미와 감정을 품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었다. 다섯 명의 젊은 작가들이 같은 주제를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며, 걷기라는 동사에 서로 다른 온도와 리듬을 입혔다.
1️⃣ 없는 셈 치고 — 김유담
겉으로는 잊은 듯 살아가지만 마음속 한구석에 계속 남아 있는 ‘없는 셈 치고 싶은’ 존재들. 주인공과 사촌 민아의 어긋난 삶은 걷기보다 ‘기억의 방향’을 따라가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맨발 걷기라는 소재가 단순한 행동을 넘어 심리적 강박과 치유의 지점으로 확장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2️⃣ 후보 — 성해나
뒤로 걷는 행위가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삶을 뒤돌아보는 방식’이 된다. 안드레아와 재즈 바 상수시의 세월이 교차하며, 퇴보가 아닌 ‘후보’, 다시 뒤로 내딛는 걸음이라는 개념이 오래 남는다. 재즈처럼 느리지만 확실하게 감정이 스며드는 작품.
3️⃣ 유월이니까 — 이주혜
불안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밤의 공원, 숨이 차지만 계속 살아보겠다는 마음. 작은 순간의 대화, 한밤의 꽃 냄새, 우연한 만남들이 인물의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4️⃣ 유령 개 산책하기 — 임선우
죽은 반려견이 유령으로 돌아와 주인과 다시 산책을 나선다는 설정이 슬픔보다 미묘하게 포근하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조용히 흐려지며, 걷기가 곧 추억과 애도의 방식이 된다.
5️⃣ 느리게 흩어지기 — 임현
명길의 산책은 외부보다 내부를 더 많이 향한다. ‘사람들은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품고 걷는 하루, 그 리듬 속에서 타인과 자기 자신을 동시에 바라보는 방식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여행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고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불안과 회복, 상실과 기억을 걷기의 속도에 맞춰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들이 많아, 읽고 나면 마음이 조금 고요해지는 책이었다.
어떤 작품은 천천히, 어떤 작품은 빠르게 다가오며, 다섯 편 모두 산책이라는 동사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인물들이 향하는 곳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회상이고, 어떤 이에게는 치유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이었다.
‘나는 요즘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을까?’
그저 하루를 버티기 위해, 혹은 생각을 털어내기 위해,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걷고 있었는데, 그 무의미해 보였던 걸음 하나하나도 나름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섯 작품의 인물 모두 목적지가 아닌 ‘도착하는 동안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에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책을 덮고 난 뒤, 이상하게도 잠깐이라도 산책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더라도, 걷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앤솔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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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독리뷰
열린책들의 ‘하다 앤솔러지’ 시리즈 세 번째 권 『보다』는
다섯 명의 작가가 ‘본다’는 행위를 각자의 감각으로 풀어낸 단편집이다.
보는 자의 불안, 보지 못하는 자의 슬픔,
그리고 시선을 거두는 자의 연민까지.
‘본다’는 말이 이렇게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니, 새삼 놀랍다.
1️⃣ 모토부에서 — 김남숙
쓰지 못하는 소설가의 시점에서 언니의 기억을 더듬는다.
과거를 본다는 건 결국 자신을 벌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문장은 차분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고통이 미세하게 진동한다.
읽다 보면 내 안의 묻어둔 기억 하나가 천천히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다시 보게’ 된다.
2️⃣ 별 세 개가 떨어진다 — 김채원
손녀와 할아버지의 일상 속에서 ‘보지 않음’의 다정함이 빛난다.
응시는 때로 잔인하지만, 시선을 거두는 일은 배려가 된다.
따뜻한 거리감이 오히려 사랑의 온도를 만든다.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부드럽게 데워졌다.
끝까지 보지 않는다는 건, 끝까지 사랑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3️⃣ 왓카나이 — 민병훈
눈보라에 덮인 일본 최북단의 설원.
하얀 세계 속에서 시야는 닫히지만, 감각은 오히려 예민해진다.
세상이 너무 선명할 때 숨이 막히는데,
이 소설은 ‘보이지 않음’ 속에서의 평온을 가르쳐준다.
침묵과 공백이 이토록 따뜻할 수 있다니, 이상할 만큼 위로받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오히려 존재는 또렷해진다.
4️⃣ 하얀 손님 — 양선형
운전석에 앉은 인물이 길을 잃듯,
독자 역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잠시 방황한다.
시야의 가장자리에 나타난 ‘하얀 손님’은 죽음이자 세계의 이면이다.
불명확함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의 감각이 묘하게 오래 남는다.
시선의 끝자락에서, 세계는 가장 낯설고 진실하게 빛난다.
5️⃣ 이사하는 사이 — 한유주
새집으로 이사한 ‘나’는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마주친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시선의 구조가 붕괴한다.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먼저 바라보는 듯한 섬뜩한 순간,
그 깨달음이 오래 머문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보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다섯 편을 다 읽고 나니까,
‘본다’는 게 그냥 시선을 두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끝까지 보려 하면 아프고,
외면하면 미안하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겨우 사람으로 산다.
완벽히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꾸 다시 보게 되고,
그 불완전함 덕분에 아직도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제 ‘본다’는 말을 함부로 못 하겠다.
조금 더 조심히, 조금 더 따뜻하게
그게 이 책이 내게 남긴 감정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열린책들의 아주 얇은 판으로 읽었다. 4년만에 독서모임 때문에 읽은건데 다시 읽어도 아주 쓰레기같은 인간상을 그렸다. 그냥 저 인간이 한심하다는 생각 외에 별다른 생각은 안 든다. 대체 얼마나 잘 생겼으면 돈도 없이 저런 짓을 해도 주변에 여자가 끊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시민이 범죄가 자행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막은 것이 법에 저촉된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한 행동이 바로 그렇죠. 하지만 변호사님은 읍내 사람들에게 하나도 숨김없이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게 제 의무라고 말씀하시겠죠.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제 아내를 포함하여 메이콤에 사는 모든 여자들이 에인절 케이크를 가져와 그 집 문을 두드릴 겁니다. 편치 변호사님, 제 사고방식으로는, 변호사님과 이 읍내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 저 부끄럼 많은 사람을 백일하에 끌어낸다는 건... 제게는 죄악입니다. 그건 죄악이라고요. 그리고 전 절대로 그런 죄악을 저지를 순 없습니다. 저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사정은 달랐을 겁니다. (p.508)
배경이란 단순히 오래된 가문만을 말하는 건 아냐. 집안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p.419)
20살 무렵, 아빠가 물려주신 『앵무새죽이기』를 읽었다. 꽤 묵직한 두께였지만 당시에도 양심에 대해, 편견에 대해 생각이 많았으나, 책을 덮고 얼마 지나지않아 잊어버렸다. 그런데 최근, 열린책들에서 특별판을 출간해주신 덕분에 무려 20년만에 『앵무새죽이기』를 다시 읽었다. 장례식 등이 곂치는 바람에 읽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으나, 오히려 더디 읽으며 한 줄 한 줄 곱씹어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많은 생각을 안겨준 읽기였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앵무새죽이기』는 반세기동안 40개 국어, 전 세계 4천만부 이상의 판매를 올린 초고의 베스트셀러다. 미국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영향력을 가진 책이라 알려질만큼 오래 사랑을 받아온 책. 이 책을 다시 읽고서야 비로소 이 책의 깊이를 제대로 느끼고, 그때의 내가 얼마나 ‘안전한 울타리’에 살고 있었는지를 느끼게 하기도 했다.
『앵무새죽이기』를 읽으며 책 속 모습들이 여전히 현실에 가득함이 안타까웠다.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인종차별이나 권력의 빈부가 곧 사회적 편의를 좌우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또 사회의 부조리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 왜곡이 가득한 세상으로 인해 『앵무새죽이기』가 픽션으로 느껴지지 않는 점이 가슴아팠다. 또 어느새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내가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우리집의 분위기나 사상이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우리 아이의 태도가 세상에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생각해보게 했고.
그저 흑인을 변호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의 비난을 받아야했으나 신념와 정의를 굽히지 않는 단단한 모습에서 진짜 용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또 나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나 비난, 가족을 향한 위협 등을 감수하며 신념을 세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또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자신보다 훨씬 약한, 죄없는 아이들을 공격하는 비열한 어른의 모습에서 과연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확답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했고.
어쩌면 ‘의인’으로 불리는 수많은 이들은 주변의 시선이나 비난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이고. 반세기가 흐른 지금에서도 여전히 『앵무새죽이기』가 던지는 과제가 많다. 우리는 과연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는지, 법은 정말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는 테두리가 맞는지,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책임은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 생각해봐야한다. 더불어 어른들의 태도와 양육 등이 아이들의 삶에,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