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한 책 속 문장]
10P 뚱뚱한 소년도 상대방이 자기 이름을 물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알고 지내자는 제의가 오지를 않았다. 랠프라는 금발 소년은 엷은 미소를 띠더니 벌떡 일어나 다시 초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열등한 외모를 지닌 새끼 돼지는 타인과 연대하기 위해 통성명을 갈구한다. 하지만 우월한 육체 조건을 지닌 랠프는 그를 무시하고 배척한다.
14P 랠프는 새끼 돼지 발치의 모래에 머리를 박으며 깔깔 웃으면서 벌렁 누웠다.
> 새끼 돼지를 비웃는 놀이터가 된 모래사장이 랠프가 사냥개처럼 쫓기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있어야 하는 공간이 되는 미래를 생각하면 극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64P “나는 랠프의 의견에 찬성한다.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야. 우리는 영국 국민이야. 영국 국민은 무슨 일이든 잘 해결해. 우리는 정당한 일을 해야 해.”
> 대영제국주의적 우월감과 '문명인'이라는 허위의식이 투영된 잭의 발언이다. 훗날 잭은 섬의 질서를 가장 앞장서서 파괴하고, 가장 먼저 짐승의 가면을 쓴 채 잔혹한 살육을 주도한다.
108P 한편에는 사냥과 술책과 신나는 희열과 전략의 세계가 있었고 또 한편에는 동경과 좌절된 상식의 세계가 있었다.
> 섬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극심하게 양극화되었음을 선언하는 문장이다
200P 그(잭)는 바위판으로부터 뛰어내려 모래사장을 따라 달렸다.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가 숲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랠프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 랠프의 리더십에 정면으로 도전했다가 소년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실패한 잭이 수치심에 눈물을 흘리며 무리를 이탈하는 장면이다. 잭이 흘리는 눈물은 아직 그에게 남아있던 어린아이로서 마지막 정체성이지만, 잔혹한 폭력으로 얼룩진 세력을 잉태하는 씨앗이 되었다.
202P 이야기를 마친 사이먼은 새끼 돼지가 자기 손에서 소라를 빼앗아드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 오만에 찬 새끼 돼지는 사이먼에 알량한 우월감을 느끼며 그의 손에서 소라를 빼앗는다. 그와 더불어 경험론적 논리와 가시적 현실에만 갇힌 새끼돼지의 소라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03P 가장 위대한 착상은 가장 단순한 법이다. 이제 무언가 할 일이 생겼기 때문에 그들은 열심히 일했다. 잭이 그곳을 떠나서 새끼돼지는 기쁨과 충만한 해방감을 만끽하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기여했다는 자부심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 새끼돼지는 갈등을 일으키는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잠시의 평화는 폭력 집단의 거대한 위협에 쉽게 부숴졌다.
208P 그는 소년들을 하나하나 평가하며 쳐다보았다. 모두들 제각기 떨어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그들은 정연하게 두 줄로 서서 천사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았던가.
> 기독교 질서 안에서 찬양을 부르던 성가대원들은 섬에서 가장 끔찍한 살육을 전담하는 사냥부대로 전락했다. 종교 의례나 사회 규범이 단순히 피상적인 훈련에 불과하면, 그들을 둘러싼 외부 환경에 따라 인간성이 얼마나 순식간에 악으로 추락할 수 있는지 섬뜩하게 고발하는 장면이다.
213P 잭이 낄낄대며 손을 흔들자 아이들은 피투성이가 된 그의 손바닥을 보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 생명 존중과 죄책감이 완전히 증발해 버리고, 동물의 피가 단순한 유희와 놀이로 전락한 광기의 장면이다. 이에 대한 아이들의 맹목적인 웃음은 도덕성의 완전한 마비를 보여주고 있다.
216P 파리 떼는 시커멓고 다양한 색이 섞인 초록색을 띠었고 헤아릴 수 없이 수가 많았다. 그런데 사이먼의 정면에는 파리대왕이 자기의 지팡이에 매달려서 밝게 웃고 있었다.
> 소설의 표제인 '파리대왕'이 그로테스크한 실체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희생당한 멧돼지의 잘린 머리에 파리 떼가 들끓는 모습은 악마 벨제붑을 시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220P 그(잭)는 말을 끊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얼굴에 칠한 가면 덕택으로 수치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소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다.
> 잭은 가면 뒤에 숨어 자아를 은폐하고 수치심을 완벽히 덜어낸다. 그리고 그는 어떠한 죄의식도 없이 대중을 억압하고 조종하는 폭군으로 등극한다.
231P 즈크와 고무가 여러 겹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깨끗이 썩어가야 할 시체가 아직 비참하게 묶여 있었다. 다시 바람이 불어오자 그 시체는 들린 채 절을 꾸벅하고 그를 향해 끔찍하게 악취를 내뿜었다.
> 어둠 속에서 아이들이 맹목적인 공포에 떨며 제물까지 바쳐 숭배했던 미지의 '짐승'이 실은 어른들의 전쟁이 만들어낸 추락한 낙하산병의 부패한 시체였다. 소설 속 어른들의 세계는 아이들의 야만적 무인도와 다를 바 없이 폭력과 살육으로 얼룩져 있다
238P 갑자기 천둥소리가 났다. 우르릉 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아니라 폭발하는 듯한 날카롭고도 충격적인 소리였다.
> 잭과 휘하 집단의 광기가 춤과 주문을 통해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증폭되어 희생양을 도륙하기 직전의 긴장감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악천후의 소리는 곧 대지에 흩뿌려질 피를 예고하는 진혼곡이 아닐까.
242P 곧 소년의 무리는 물밀 듯이 그 뒤를 따라 바위를 내려가 짐승에게로 뛰어내렸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고 주먹질을 했다. 물어뜯고 할퀼 뿐이었다.
> 도구조차 내버려둔 채 이빨과 손톱만으로 친구를 살육 행위는, 소년들이 완전한 야수의 상태로 퇴행했음을 단언하는 뼈아픈 비극이다.
287P 바위는 턱에서 무릎을 스치면서 새끼돼지를 쳤다. 소라는 산산조각이 나서 흔적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 민주적 규칙과 제도를 의미하는 소라와 그를 중시하는 새끼돼지가 일거에 파괴되는 장면이다. 이후 남은 것은 오직 힘과 피의 논리가 지배하는 생존 투쟁뿐이었다.
289P 교수형 집행인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섬뜩함이 그(로저)에게 매달려 있었다.
> 바위를 굴려 새끼돼지를 살해한 로저의 폭력은 타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즐기는 순수한 형태의 사디즘이다.
316P 배의 뒤쪽에는 또 한 사람의 해군이 경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 표면적으로는 문명에 의한 구조를 의미하지만, 그들을 데리러 온 순양함의 병사는 대량 살상 무기인 '경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소년들이 섬 안에서 창으로 동족을 찌르는 것과 섬 밖의 어른들이 첨단 무기 서로를 학살하는 것의 본질은 동일하다.
319P 그는 몸부림치며 목메어 울었다. 이 섬에 온 이래 처음으로 그는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온몸을 뒤흔드는 듯한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을 떠맡긴 채 그는 울었다.
> 잭의 오열은 섬에서 경험으로 인간성의 가장 밑바닥을 겪은 랠프가 겪은 PTSD의 발현이다. 잭은 직면한 마음속 어둠과 유년기의 순수성을 완전한 상실한 것으로 평생 고통받을 것이고 그것이 마땅하다.
319P 소년들의 울음에 휩싸인 장교는 감동해 다소 난처해했다. 그는 그들이 원상태로 돌아가 기운을 차릴 시간적 여유를 주려고 외면해버렸다. 멀찍이 보이는 산뜻하기만 한 순양함에다 눈길을 주며 그는 기다렸다.
> 장교는 통곡하는 아이들이 직면한 깊은 비극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영국 소년들이 잠시 이성을 잃고 벌인 철없는 전쟁놀이쯤으로 치부한다. 인간을 찢어 죽일 수 있는 살육 기계인 순양함을 산뜻하게 바라보는 장교의 시선은, 문명사회 역시 파리대왕의 지배하에 있는 또 다른 광기의 무인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과학적 음모와 로맨스, 스릴러가 결합된 장르 소설로, 자가출판으로 시작해 영국 아마존 전자책 1위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은 소설이다. 감기 치료제 연구라는 현실적인 과학 소재를 기반으로, 음모와 추격전이 결합된 이야기로, 주인공의 과거 사랑과 현재의 생존 투쟁이 교차하며 감정적 몰입도를 높이는 소설이다. 연구의 어두운 비밀과 인간관계의 배신을 파헤치는 스릴러 소설이다.
#오독완#독서습관만들기#방구석독서
📚세계에서 가장 불운한 킬러의 여정!
📚질주하는 운명, 멈출 수 없는 아이러니!
📚이사카 고타로 저자 ' 불릿 트레인'
🚆초고속 열차에서 펼쳐지는 고스펙 킬러들의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선로이탈 추격적! <불릿 트레인>은 일본 신칸센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얽히고 설킨 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블랙코미디와 스릴러가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마리아비틀로 출간된 바 있는 작품으로, 2022년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불릿 트레인' 으로 개봉된 바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2022년 영국추리작가협회상 번역 부문 최종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저자의 대표작이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액션, 그리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지는 유머들, 인간의 폭력과 악에 대한 근원적 이야기까지! 이만큼 좋은 엔터테인먼트를 가진 소설이 있을까 싶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 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웃긴 대사까지! 쾌감이 짜릿한 액션 소설로, 읽는내내 지루할 틈 없을 정도로 페이지터너인 작품이다. 킬러 시리즈 두번째인 이 작품은 우연히 신칸센에 올라탄 킬러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적을 그린 작품으로, 기차라는 폐쇄된 공간과 속도감을 극대화시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잘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인간의 본성과 악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냈다. 아들을 해친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칸센에 탑승한 전직 킬러, 그리고 납치된 아이의 몸값 트렁크를 회수하라는 임무를 맡은 쌍둥이 킬러, 세계에서 가장 불운한 킬러, 각자의 목적을 가진 킬러들이 한 열차안에서 충돌하면서 사건은 점점 꼬여가는 상황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잔혹한 상황을 그려냈지만, 그 안에서 유머와 풍자가 잘 섞여 있어서 읽는내내 긴장감과 웃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단순한 액션만 있는게 아니라, 각 인물들의 성격과 불운, 욕망이 맞물리는 이야기, 그리고 신칸센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사건이 압축적으로 진행되는데, 읽는내내 몰입감이 최고인 작품이다.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라, 이 작품은 운명, 불운,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담아낸 작품이다. 폐쇄된 공간인 신칸센 안에서 킬러들이 서로의 목적과 계획이 충돌하고, 결국 운명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블랙코미디와 스릴러 요소로 잘 풀어낸 작품으로,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추격적에 넋 놓고 읽게 되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나오(일명: 레이디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불운한 킬러이다. 단순한 임무조차 꼬여버리는 ... 그의 불운은 인간이 운명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다. 각 인물들은 돈, 권력, 가족, 복수 등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지고 열차에 오르는데, 이는 서로 충돌하게 되고, 결국 모두를 파멸을 불러오게 되는 결과가 된다. 신칸센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인간의 갈등으로 극대화 시키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는 시간의 긴박함과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그려낸다.잔혹한 상황에서도 유머와 풍자가 끊임없이 나오는데, 폭력과 죽음도 우스꽝스럽게 소비되는 지금 현대 사회를 풍자하기도 한다.원작소설과 영화의 차이는 원작에서는 인물들의 내면과 불운의 아이러니를 더 깊게 그려냈고, 운명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가 강조되는 반면에, 영화는 액션과 블랙 코미디가 강조되고, 오락성이 높지만, 운명과 불운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잔혹한 킬러들의 대립 속에서도 유머와 풍자가 끊임없이 그려내어, 읽는내내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불운한 킬러, 복수에 불타는 아버지, 철학적인 킬러 형제 등 각 인물들의 개성을 뚜렷하게 그려내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신칸센이라는 제한된 공간, 그리고 시간 속에서 사건을 압축적으로 그려내어, 읽기 시작하면 손에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이 강한 작품이다. 인간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라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블랙코미디적 방식으로 잘 풀어낸 작품으로, 단순한 오락을 넘어 생각할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스릴러와 코미디, 철학적 요소까지! 가볍게 즐기면서도 여운을 주는 작품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영화 <불릿 트레인>을 봤다면 소설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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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환대란 가능한가.
내 집의 대문을 활짝 열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한다면,그 이방인이 남자든 여자든 영국인이든 중국인이든 그 누구든 간에, 난 더 이상 그 집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가?
주인 아닌 상태에서의 손님맞이란 불가능하다.
우선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근 상태여야만, 누군가를 맞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환대(hospitalite) 하기 위해선 우선 적대(hostilite) 해야 하는가.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냐고 묻는다.
그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나는 그에게 질문해야 하는가.
그가 어디서 왔으며 몇 살이며 직업은 무엇이며 어디로 향하는지를 질문해야 하는가.
혹은 철저히 침묵한 채 그를 이방인인 채로 맞이해야 하는가.
어떤 것이 옳은 환대인가.
환대란 그를 들이는 것인가 혹은 나를 내주는 것인가.
(그것이 불가능할지라도)나를 모조리 내버리는 그리스도적 환대와 질문하고 선별하여 검증된 이방인을 맞이하는 조건부적 환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서서히 우리는 집을 잃어간다.
메신저, 통화, 이메일 등의 사적 통신은 더 이상 비밀리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감청되고 또 유출된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내밀한 일상을 sns에 업로드하며 고도로 조작된 자신의 내면으로 타인을 초대한다. (그 타인 역시 원본과는 전혀 다른 누군가이다.)
이방인은 말한다. 보인다. 들린다.
그러나 모든 정보는 왜곡된 것으로, 어디선가 말해졌고 이미 들려진 것들 뿐이다.
일종의 메아리처럼 존재는 저곳에서 내 안으로, 다시 이곳으로 정처없이 떠돌며 어느 순간엔 묻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알고 있다.
환대란 이제 그 의미 자체를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맞이함 없이 우린 타인의 안으로, 타인은 내 안으로 너무 쉽게 드나든다.
한 세기 전에는 이것이 로맨틱한 연결망처럼 보였을진 몰라도 지금은 그저 피로한 불법침입의 연속, 질문해야 함과 대답해야 함의 의무 속에서 바스라져가는 존재의 실타래일 뿐이다.
그럼에도 묻는다면, 묻는 것을 고민한다면.
고향을 떠나 헤매는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라 묻는다면.
영원한 이방인인 당신을 적대->초대하기 위해 당신의 안녕을 묻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내가 당신에게 물어도 된다면.
아직 내 집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환대는 집주인의 권리가 아니다.
환대는 집주인으로 있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내가 나로 있기 위해 당신에게 물어야 한다.
물음으로써 내 집은 점점 공고해진다.
물음은 적대로부터 비롯되어 집과 문을 만들고 그제서야 비로소 당신을 맞이하고 환대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묻는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