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권일용, 고나무
최근에 티비 드라마로 제작되어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킨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오리지널 책이다.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의 탄생과 프로파일링이 도입된 강력 사건을 추척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아직 범죄 프로파일러가 없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식과 과학수사에 매료된 경찰이 한 명 있었다. 학비가 공짜인 경찰대학에 1983년, 3기로 입학했다. 그는 경찰대 동기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독서광이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같은 미래학자의 서적도 즐겨 읽었다. 그는 한국의 경제 발전 전망과 미국의 사회 변화를 비교하고, 한국에서도 곧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에프비아이의 수사관 존 더글러스가 논픽션 작가 마크 올셰이커(Mark Olshaker)와 함께 쓴 수사 회고록 《마인드헌터》가 시야를 터주었다.
독서광 경찰의 이름은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웠다. 윤외출이라는 흔치 않은 이름이었다. 외출. ‘외가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윤외출은 1990년 중반에 서울지방경찰청 감식계로 발령받았다. 경찰대학은 경찰 간부를 육성하기 위한 특수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이다. 사관학교와 마찬가지로 경찰대 졸업생은 20대에 경위로 임관한다. 경위는 파출소장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경찰대 3기 동기들이 승진 시험이나 사법 고시 공부에 몰두할 때, 윤외출은 당시 상급자였던 감식대장으로부터 감식과 과학수사의 재미를 배웠다.
그 뒤로 8년 넘게 감식반 근무를 했다. 동기들은 결코 그런 식으로 경력 관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윤외출은 경찰대 동기들보다 경정 승진이 4, 5년 늦어졌다. 경찰대학 졸업 후 경위로 임관하고 1993년에 경감으로 승진한 뒤, 8년 넘게 같은 계급에 머무른 것이다. 윤외출은 재미없는 승진보다 재미있는 업무를 택했다.
윤외출은 1997년 서울지방경찰청 감식계장이 되었다. 그는 ‘감식계’라는 직제 명칭을 ‘과학수사계’로 바꾸자고 건의했다. 아울러 전국 일선 경찰서에 ‘과학수사팀’을 만들자고 경찰청에 제안했다. 그때까지 경찰은 CSI, 즉 ‘범죄현장수사(Crime Scene Investigation)’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감식(鑑識)’이라는 말을 썼다. ‘감식요원’ ‘감식반’ 같은 말에 쓰이는 것처럼 지문, 필적, 혈흔 등을 조사하는 작업에 국한된 용어였다. 반면에 ‘과학수사’는 감식은 물론, 범죄 현장의 모든 증거를 분석하고 범인상을 추정하는 크리미널 프로파일링을 포함한 개념이었다.
윤외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0년 1월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범죄분석팀’이라는 이름으로 사상 첫 프로파일러 직제를 만들었다. 새로운 실험에 대한 경찰 조직 내부의 반발을 의식해 직제에 ‘프로파일링’이나 ‘행동과학팀’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범죄분석팀이라는 모호한 이름을 사용한 것이었다.
범죄의 미래를 예상한 당시 강희락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 등이 ‘돈키호테’ 윤외출의 아이디어에 힘을 실어주었다. 직제 개편은 본청인 경찰청에서 먼저 시작하는 게 통상의 관례인데, 하위 지방청인 서울지방경찰청이 신설 직제를 만드는 모험적인 실험을 하게끔 허락한 것이다.
윤외출은 1999년 말에 동부경찰서의 다혈질 지문감식요원을 눈여겨봐두었다. 그가 메모지의 지문을 채취해 강간범을 잡아낸 것도 알고 있었다. 미국의 범죄심리학자 브렌트 터비(Brent E. Turvey)는 “좋은 범죄 수사관이 좋은 범죄 프로파일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의 책에 쓴 적이 있다. 권일용에게 없는 것은 심리학 석사 학위였고, 그가 가진 것은 과학수사에 대한 흥미와 현장을 발로 뛰는 에너지였다.
다혈질의 감식요원이 막 신설된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의 전화를 받은 것은 1999년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돈키호테’ 윤외출은 또 다른 돈키호테 권일용을 2000년 2월 9일 한국 경찰 최초의 프로파일러로 인사 발령했다. 이 실화는, 이 돈키호테들이 어떻게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링 팀을 만들고 그들이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봄날이었다. 2001년 5월 10일, 낮 최고기온이 21도까지 올라갔다. 서울 성동구 중랑천 둑길 놀이터는 오후 6시에도 날이 좋았다. 중랑천 상류 근처는 저지대다. 예부터 홍수 때 범람이 잦았다. 1990년대 말 여름 수해를 입은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하류인 군자교 근처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2001년경에도 봄이면 꽃이 많이 피었다.
그날, 네 살 지연(가명)이는 주변의 다른 주민들처럼 아버지, 오빠와 산책을 나왔다. 목요일 오후였지만 사람이 많았다. 잠시 아버지가 지연이에게서 눈을 뗐고, 여섯 살 오빠는 또래 친구들과 놀았다. 지연이는 아버지, 오빠와 떨어져 혼자 놀았다. 그때 어떤 곱슬머리 남자가 다가왔다.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사줄까?”
왼손에 손가락 두 개가 없는 남자는 중랑천 산책로에서 50미터 떨어진 군자교 근처 주택가 슈퍼에서 지연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그리고 그곳에서 50미터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현관과 창문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집이었다. 그날 그 시간 이후 아빠와 오빠는 지연이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밤새워 찾았으나, 결국 파출소에 미아 신고를 했다.
5월 19일 오전 8시경, 60대 고물 수집상이 군자교 근처 주택가 골목을 걷고 있었다. 지연이가 실종된 장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였다. 토요일이었고, 노인은 언제나처럼 폐품을 찾았다. 그러다 골목에서 등산용 배낭을 발견했다. 배낭 안에 담긴 것은 폐품이 아니었다. 어린이의 머리와 팔다리가 잘린 채 뒤엉켜 있었다. 발에는 발가락이 없었다.
놀란 노인은 경찰에 신고했다. 동부경찰서 서장과 형사과장 등이 오전에 현장에 도착해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치는 등 초동수사를 했다. ‘초동수사’는 범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행하는 긴급 조치다. 배낭 속 토막 난 시신이 일주일 전 실종된 지연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연이 사건은 곧바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날 저녁 KBS는 “여아 토막 살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동부경찰서는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의 짓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한 종합 일간지는 다음 날 “돈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가 없었던 점 등에 비춰 정신병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 종로구에 소재한 서울지방경찰청 본관 3층에 과학수사계 범죄분석팀 사무실이 있었다. 권일용 경사가 회의 소집을 받은 것은 지연이 사건 보도가 나고 3일쯤 지난 뒤였다. 사체 발견 뒤 동부경찰서에 수사본부가 설치됐다. 상위 기관인 서울지방경찰청도 수사를 지원했다. 그때까지 동부경찰서는 아직 수사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무실에 여러 남자들이 둘러앉았다.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과 강력계장이 있었고, 한편에 현장감식반장과 권일용이 있었다. 현장 수사를 맡은 동부경찰서 형사들도 있었다. 이들은 ‘범인이 누구이며, 왜 이런 짓을 저질렀나’라는 어려운 퍼즐을 함께 풀어야 했다. 회의실에 흐르는 긴장감은 꼭 지연이 사건의 잔혹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날 권일용이 느낀 또 다른 긴장감을 다른 참석자들은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긴장감은 전통적 수사 방식과 새로운 수사 방식의 만남 가운데 생겨났다. 과학수사계 범죄분석팀 요원 권일용이 곧 새로운 수사 방식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 참석한 나이 많은 형사와 경찰들에게는 여전히 ‘과학수사’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보통 살인의 동기는 둘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원한이나 이해관계. 따라서 통상적으로 수사할 용의자도 이 두 가지 이유와 관련이 있는 사람, 보통 피해자의 지인 가운데서 추리게 마련이었다.
2001년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에 소속된 2만 4,000여 명의 경찰관 가운데 권일용은 유일무이한 보직을 맡은 이였다. 아니, 당시 전국의 9만 600여 명 경찰관 가운데에서도 그 보직을 맡은 사람은 권일용 한 사람뿐이었다. 2000년 1월, 권일용 등 네 명이 처음 만들어진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팀으로 발령받았다. 이 중 세 명은 범죄 통계를 분석하는 요원이었다. 오직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만이 현재 대중들이 ‘크리미널 프로파일링’이라고 부르는 ‘범인상 추정’ 작업을 담당했다. 크리미널 프로파일링은 범죄 현장의 법과학적 조사를 토대로 범인의 성격, 심리, 지능, 직업, 특징 등을 추정해 피의자군을 좁혀 수사에 도움을 주는 기법이다.
경찰 직제에 과학수사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2년 전인 1999년부터다. 일선 경찰들에게 과학수사라는 용어는 낯설었고, ‘범인의 성격과 특징을 분석하는 것이 수사에 도움이 된다’는 개념은 더욱 낯설었다. 권일용과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실장이었던 이동환은 이 새로운 개념과 기법의 효용성을 증명해야 했다.
이날 회의 후 권일용은 퍼즐을 현장 수사팀보다 먼저 풀어야 했다. 그것도 무대 위에서 바둑을 두는 것처럼, 동료들의 시선을 받으며. 권일용이 현장 수사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를 통해 얻어낸 사실의 조각들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 시체는 냉동 후 절단됐음
— 시체의 절단면 끝이 거침
— 시체를 담은 검정 비닐 봉투
— 실종 장소와 시간대
— 토막 시신이 유기된 추정 시간
— 시체가 담긴 모양 사진
그러던 중 5월 21일 낮, 권일용은 급한 연락을 받았다. 경기지방경찰청이었다. 수원시의 한 여관에서 “아이 시신 일부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는 소식이었다. 방에 있던 손님이 사라진 후 변기에서 물이 넘쳐흐르는 소리가 들려 직원이 변기를 열어보니 무언가가 변기를 막고 있었다. 변기에서 나온 것은 어린아이의 시신 일부였다. 놀란 여관 주인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박상선 서울지방경찰청 현장감식반장, 동부경찰서 형사들 그리고 권일용이 여관 현장을 조사했다.
현장을 조사한 후 권일용은 보고서를 수사팀에 건넸다. 당시에는 언론도 대중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최초의 프로파일링 보고서가 최초로 현장 수사팀에 전달된 순간이었다. 크리미널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이 여전히 낯선 수사팀도 이 보고서 내용 일부를 수사에 참고하게 될 것이었다.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권일용은 동부경찰서를 직접 찾아가 수사팀 형사들에게 보고서 내용을 구두로 설명했다. 수사팀은 미성년 성범죄 전과자 네 명의 집을 찾아갔고, 그 중에서 유력한 한 곳을 찾아냈다. 서울지방경찰청의 권일용도 연락을 받고 바로 차에 올랐다.
들어간 집 안 풍경은 권일용의 프로파일링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낡은 흰색 냉장고가 오른편에 있었다. 검은색 3단 가구함 위에는 TV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접이식 상과 아이스박스가 있었다. 볼품없고 낡은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것이 권일용의 눈에 띄었다. 양말도 더러웠지만 가지런히 널린 채였다. 그곳에서 형사들은 칼과 톱을 발견했다. 5월 29일 오후 5시, 수사팀은 여관에 있던 조현길(가명)을 체포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일용의 프로파일링이 실제 조현길의 특징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범행 당시 조현길의 나이는 마흔 살 언저리였다. 초등학교만 겨우 다닌 조현길은 10대 중반에 상경해 육체노동을 주로 했다. 그 과정에서 생선 장사도 했다.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두 개 잃고 대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서 정상적인 이성 관계를 맺지 못했고 성매매가 아니면 이성과 성관계도 갖지 못했다.
사건 초기 언론의 추정과 달리 조현길은 정신병자도 아니었고, ‘과시욕이 있는 뒤틀린 고학력자’도 아니었다. 언론도 앞다투어 검거 사실을 보도했지만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대한민국의 첫 범인상 추정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수사팀에 전달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기자는 없었다. 권일용의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입수했다면 특종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조현길 면담은 권일용이 경험한 최초의 진짜 ‘그화되기’였다. 동부경찰서에서 눈썹이 짙고 입술이 두꺼운 조현길을 마주한 권일용은 입을 열었다.
“유치장에서 밥은 잘 먹습니까?”
“그렇습니다.”
살려달라고 울며 애원하는 네 살 여자아이를 죽이고 토막 낸 남자가 답했다. 권일용은 이어 ‘왜 아동에게 성적인 흥분을 느끼게 됐는지’ ‘평소의 여성관은 어떻고 이성과의 교제 경험은 있는지’ ‘왜 시체를 토막 냈는지’ 등을 물었다. 면담이 끝난 뒤 백반을 주문해 조현길과 함께 먹었다. 권일용은 면담 내용을 바탕으로 ‘범인을 통해 확인한 최초 프로파일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작성했다. 조현길을 체포하기 전에 작성한 프로파일과 실제 조현길은 상당 부분 일치했다.
방송에 많이 나오셔서 이미 유명해지신 권용일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재미있다. 책은 후반부로 유영철의 사건, 정남규 사건, 강호순의 사건의 추척과 프로파일링 이야기가 재미있게 이어진다. 드라마를 본 후에 읽으면 해당 장면들이 떠 올라서 더윽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람은 당연히 “면역력이 떨어져있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사망한 사람들 대부분이 고령층이거나 기저 질환자 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또 질환이 있을수록 면역력이 낮아 코로나 19에 감염되었을 때 치명적인 상황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p.45)
코로나19. 아마 2020년의 가장 큰 화두는 코로나19였을 테다. 아마 꽤 오랫동안 사회경제 이야기에 코로나가 빠지지 않을 것이며, 한동안은 우리 생활과 경제를 오래도록 쥐고 흔들,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일 테다. 나 역시 그 코로나19로 생활에 많은 타격을 받았고, 생활의 흐름이 바뀌었으니 이 얼마나 세상에 큰 타격을 주었는가. 그래서 이럴 때 이런 책은 더욱 간절히 읽혀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읽지 않는 분야가 의학관련 서적인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이 책도 집중하여 읽었다.
- 갑자기 피로감이 심해지는 경우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종합검사입니다. 피로를 유발할 만한 질병을 찾아내 치료하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입니다. (p.54)
- 항셍제를 남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생제는 유익균이 포함된 세균층을 망가뜨리는 폭탄과도 같습니다. 물론 항생제를 꼭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써야 하지만,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은 세균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주치의와 상의해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p.81)
-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움을 느낄 때 뇌졸중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지만, 사실 뇌졸중은 전조 증상이 거의 없습니다. (p.174)
사실 개인적으로 최근 뇌질환에 대한 공포를 느낀 적이 있다. 매우 가깝게 지내는 이의 가족이 아팠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이 너무 힘들어했기에 나 역시 뇌질환에 대해 공포를 느꼈던 터였다. 그 사람이 종종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나는 불안했고, 무서웠다. 그 사람도 혹시나 아프기라도 할 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뇌질환에 대해 기록된 부분을 매우 열심히 읽었고, 꼼꼼히 기록했다. 또 읽으며 기록된 부분들을 체크하며, 내용을 줄여 전송해주기도 했다.
앞으로도 한참이나 우리 몸을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 몸을 너무 몰랐다. 그저 내가 몸이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느끼기만 했을 뿐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 내 몸이 표현하는 것들을 어떻게 귀 기울여야 할지 몰랐으니까.
물론 나는 여전히 의학적 지식도 없고, 큰 관심도 없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내 몸이 보내는 신호들에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 몸은 시스템이다.
당신의 몸은 오늘 호신호를 보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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