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준 벽돌책인 《밀레니엄》 시리즈 총 6권을 장장 열흘에 걸쳐 다 읽어냈다. 범죄 스릴러 소설계의 포르쉐 정도라기에 절판된 책을 중고로 꾸역꾸역 찾아내 캐나다로 배송받은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여태껏 몇 번이나 시도는 했지만 도저히 한 챕터를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엔 딱 100페이지까지만 읽어봐야지 하고 펼쳤다가 제대로 책에 흡입당했다.
지난 열흘간 이 두껍고 긴 시리즈를 읽는 내내, 역시나 나는 너무 괴로웠다. 스웨덴식 이름들 때문에. 등장인물이 끔찍할 정도로 많은데, 게다가 이름들이 다 너무 길고 비슷하고 생소해서 이게 여자 이름인지 남자 이름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사실 다 읽고 난 지금도 주인공들 이름마저 헷갈린다. 이름만 좀 더 알아보기 쉬웠다면 한국에서도 더 인기가 많았을 텐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얘가 누구더라, 얜 또 누구야 하고 헤매고 있자면 갑자기 흡입력이 확 높아지는 구간이 나온다. 질질 끌고 늘어져서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페이지 넘김이 빨라지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짚으며 읽고 있었다. 리스베트 파이팅, 속으로 응원하면서.
재밌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겠다. 으레 진지한 분위기의 장르 드라마가 그렇듯, 재미있다고는 선뜻 말 못 하겠다. 너무 진지하다. 추천도 못 하겠다. 책의 두께와 이름들로 인한 장벽이 너무 높다. 나는 거의 지금 《총, 균, 쇠》라도 다 읽어낸 듯한 느낌이다. 뿌듯하다. 6권 내내 체한 듯 갑갑하던 마음이 《벌집을 발로 찬 소녀》 2권 마지막에서야 다 소화된 느낌이다. 그뿐이다. 물론 방금 전까지는 “너무 재밌어, 너무 재밌어” 하며 4시간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결말까지 읽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읽어보라고 선뜻 추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화도 두 번이나 되었는데, 영화보다는 소설이 훨씬 낫다고는 말할 수 있다.
마무리로 초등학생들도 독후감을 이렇게는 안 쓰겠다 싶게 적어보자면, 리스베트 멋있다. 부럽다. 그녀의 능력이 탐난다. 파이팅.
키몬, 루쿨루스
페리클레스, 화비우스 막시무스
니키아스, 크라수스
알키비아데스, 코리올라누스
리산드로스, 술라
슬슬 낯선 이름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신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1권 보다는 재미있었다.
2권에선 행복하게 천수를 누린 영웅들 보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영웅들이 대거 등장한다.
찬란한 업적과 뛰어난 정치력으로 영광스러운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은 모두 같았지만, 죽기 전까지 부와 명예를 온전히 지킨 사람은 드물었다.
왜 일까?
내가 보기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영웅들은 하나 같이 배후에 강력한 정적이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정적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기보다 영웅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는 점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자만심과 콧대 높은 자존심, 타인을 향한 질투심과 복수심, 그리고 재물과 권력을 향한 끝없는 탐욕 등
정적의 대부분이 스스로의 과오에서 비롯되는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적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쌓았어도 인간 내면의 결함이 외부의 적을 불러들이고, 결국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독이 된 셈이다.
이를 종합하면 한 가지 교훈만큼은 확실해진다.
행복하게 천수를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절대 적을 만들지 말라.